사람의 성염색체 ‘엑스’(X·왼쪽), 그리고 이보다 훨씬 작은 ‘와이’(Y)의 영상. 미국 애리조나대학 제공
요즘 과학
포유류 동물에선 부모한테서 물려받는 성염색체 엑스(X)와 와이(Y)의 짝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남녀 성이 결정된다. 성염색체의 짝이 엑스-엑스일 땐 여성이, 엑스-와이일 땐 남성이 된다. 와이 염색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성이 결정된다. 그런데 사람의 성염색체 중 와이 염색체는 엑스 염색체에 비해 몸집이 매우 작아, 2002년 일부 과학자들은 와이 염색체가 포유류 진화 과정에서 영장류를 거치며 급속히 쇠락했으며, 이런 쇠락 속도로 볼 때 1000만년 안에 와이 염색체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예측을 학계에 제시하기도 했다.
‘와이 염색체의 종말’ 예측에 대한 반박은 계속돼 왔는데, 이런 반박에 힘을 보태주는 연구 결과가 다시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화이트헤드 생명의학연구소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에 낸 논문에서, 사람을 비롯해 포유류 동물 8종의 와이 염색체 안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을 비교해보니 남성의 고환을 만들고 성호르몬을 분비하는 데 관여하는 성 결정 유전자 외에도 다른 중요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들이 발견됐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중요한 기능의 유전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사람의 와이 염색체가 상당한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이 연구에선 사람과 침팬지, 붉은털원숭이, 소, 주머니쥐, 생쥐 등 8종의 와이 염색체 염기서열이 비교됐다.
비교연구에선 이전 연구 결과와 비슷하게, 동물 종 분화의 진화 시간을 고려할 때 와이 염색체가 애초에는 엑스 염색체와 비슷한 규모였으나 진화 과정에서 ‘엄청난 유전자 소실’을 겪은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침팬지와 원숭이가 진화의 길에서 서로 갈라진 2500만년 전 이후에 와이 염색체의 쇠락이 거의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와이 염색체의 붕괴가 2500만년 전 무렵부터 정체한 이유는 뭘까? 연구팀은 사람의 와이 염색체에서 새로 발견한 유전자들의 기능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새로 찾아낸 12개 유전자는 와이 염색체에 자리잡고 있지만, 심장, 폐, 혈액 세포 등 몸 전반에서 발현해 다른 단백질 합성이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기능에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새로운 의미를 던져준다. 와이 염색체의 유전자들 중에 성 결정 유전자와 별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유전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남녀의 질병 차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한다. 예컨대, 자폐증은 남자한테 많고 자가면역 질환은 여자한테 많은 것처럼 질병에도 남녀 차이가 나타나는데 이런 차이가 와이 염색체의 유전자들과 연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녀의 신체 차이를 만드는 데에 성 호르몬 외에도 이런 유전자들이 어떤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어, 와이 염색체 유전자들은 남녀 연구에 또 하나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와이 염색체의 종말을 예측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자 제니퍼 그레이브스는 <네이처> 뉴스에서 “지난 2500만년간 나타난 안정상태는 일시적 휴지기일 수 있다”며 “이미 몇몇 포유동물에선 (성 결정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로 이동하고) 와이 염색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관찰된다”고 반박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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