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세포의 활성을 보여주는 영상기법들은 뇌와 신경을 이해하는 데 기여해 왔다. 예쁜꼬마선충이 기어가기 동작을 할 때 머리, 배, 꼬리 등 온몸의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영상기법. 네이처
[사이언스 온] 신경망 시각화 어디까지 왔나
‘유유히 기어가는 투명한 몸에서 밤 하늘 별처럼 작은 빛이 반짝인다. 길이 1㎜ 남짓한 실험용 모델 동물인 예쁜꼬마선충의 몸에서 커졌다 꺼지는 빛들은 302개 신경세포들이 내는 활동 신호다. 신경세포 네트워크의 작동이 반짝이는 빛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 연구팀이 과학저널 <네이처 메소즈>에 발표한 동영상은 꼬마선충이 기어가는 동안 몸에서 어떤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깜박이는 빛으로 신경세포의 작동을 보여주는 신경세포 영상 기법이다.
개별 또는 일부 영역의 신경세포를 관찰하는 이전 연구들과 달리, 이 동영상은 움직이는 작은 생물의 몸에 있는 전체 신경세포들의 연결된 활동을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 연구에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한 윤영규 매사추세츠공대 박사과정 연구원은 이메일에서 “뇌처럼 큰 3차원 대상의 신경망을 충분히 빠른 속도로 촬영하는 데에는 현재 기술적 어려움이 있는데, 이번 연구는 전체 신경세포 간의 신호처리를 좀더 자세하게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했다”며 의미를 전했다.
신경세포와 그 기능을 보려는 오랜 시도들
사실 이런 영상 기법이 주목받기 훨씬 전부터 마음과 행동의 기반인 신경세포와 그 연결망을 눈으로 관찰하려는 연구는 계속돼 왔다. 신경과학이 태동하던 100여년 전에도 관찰 대상의 시각화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현대 신경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1852~1934)이 신경과학의 토대를 제시한 것도 바로 이런 시각적 관찰에서 비롯했다. 그는 노벨생리의학상 공동수상자인 카밀로 골지(1843~1926)가 개발한 세포염색법을 이용해 현미경으로 신경세포 조직만을 염색해 관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뉴런 원리’(neuron doctrine)를 처음 설파했다. 뉴런 원리는 신경계를 ‘수많은 신경세포(뉴런)가 접속해서 이루는 거대 네트워크’로 바라보는 신경과학의 핵심 패러다임이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의 신경과학 실험실에선 전자현미경이나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같은 장비뿐 아니라 ‘형광 유전자’ 같은 기법이 속속 개발돼, 이제 신경계는 훨씬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대상이 됐다. 지난해에는 한국인 과학자 정광훈 박사(현 엠아이티 교수)가 실험용 쥐의 뇌를 투명화해 뇌 속을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법을 개발해 신경과학계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신경세포와 연결망을 눈으로 보려는 이런 시도로, 우리는 행동과 마음의 바탕에 대해 얼마나 더 이해할 수 있게 될까?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은 바이올린 자체를 뜯어보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똑같은 바이올린이라도 연주자와 연주법에 따라서 음악과 소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신경계 연구도 이와 비슷하다. 뇌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해부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뇌의 구조이다.
신경과학자들이 신경계 구조를 밝혀 궁극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신경계의 기능이다. 어떻게 신경계가 외부 자극을 받아 감각 정보를 생성하고, 몸 안팎의 수많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마음은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지 탐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신경 자체의 모양을 넘어 신경의 활동을 시각 정보로 관측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먼저 신경생리학자들은 일찍부터 신경세포에 전극을 꽂아 신경 활동으로 인해 생기는 전기장 패턴의 변화를 측정했으며, 이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래프로 변환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뇌파 측정술은 또한 뇌 전체의 전기적 패턴인 뇌파를 시각화해냈다. 요즘 널리 쓰이는 자기공명영상은 활성을 띠는 신경세포에는 혈류량이 증가한다는 점을 이용해 혈류량을 측정함으로써 활성을 띠는 뇌 부위가 어디인지 식별하는 시각화 기법을 써서 뇌 기능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신경활성 일으키는 칼슘의 영상화 기법
근래에는 칼슘과 빛을 결합하는 ‘칼슘 영상기법’이 떠오르고 있다. 이 기법은 기본 개발 단계를 넘어서면서 이제는 점차 신경과학자들 사이에서 신경계의 ‘연주’를 이해하는 도구로 널리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칼슘’일까? 그리고 칼슘을 어떻게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칼슘은 우리 몸에서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기본 원소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칼슘의 중요한 쓰임새는 또 있다. 칼슘은 신경망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매개 물질로도 꼭 필요한 구실을 한다. 신경세포가 활성화할 때 칼슘이 신경세포로 쏟아져 들어가 신경세포 간의 신호 전달, 학습과 기억 같은 다양한 신경 활동 과정에서 신호 전달자로서 기능한다. 신경 신호가 전달될 때엔 신경세포 안의 칼슘 농도가 순식간에 수십 배로 폭증하기도 한다.
자 이제 신경세포에 나타나는 칼슘의 변동량을 추적한다면, 지금 어떤 신경세포가 활성을 띠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칼슘의 변동량을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그동안 여러 연구자들 사이에서 개발돼 왔다. 어떤 방법이 이용됐을까? 힌트는 자연에 있었다. 50여년 전 시모무라 오사무는 해파리에서 ‘에쿼린’(aequorin)이라는 형광 단백질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이 단백질은 칼슘 원소와 결합할 때 푸른 빛을 낼 수 있었다.
연구자들은 에쿼린 외에도 칼슘 변동량을 빛의 변화로 바꾸어 눈으로 확인하는 다양한 형광 단백질(칼슘 지시체)을 개발해왔다. 이런 단백질은 흔히 ‘칼슘 결합 부분’과 ‘빛 발생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칼슘과 결합할 때 일어나는 화학구조의 변화가 형광을 발생시킨다는 게 기본 원리다.
1990년대 들어 유전공학을 통해 새로운 형광 단백질들이 만들어지고 개량됐다. 이런 업적은 오사무와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로저 첸의 연구실이 주도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것 중 하나가 널리 쓰이는 ‘카멜레온’ 단백질이다. 카멜레온은 서로 다른 색깔을 내는 두 가지 형광 단백질이 결합돼 있는데, 칼슘 결합 여부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마치 주변 환경에 따라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말이다.
카멜레온 같은 형광 단백질이 신경세포들에서 발현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 유전공학 기술과 결합하면서, 이제 실험실에선 적절한 조건에서 신경세포들이 활성을 띠는 순간을 빛으로 포착해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 형광은 곧 칼슘 증가를 보여주며 칼슘 증가는 곧 신경세포 활동을 보여주니, 형광이 곧 ‘신경세포 활동’의 신호등인 셈이다.
마음의 작동을 실시간으로 보다?
하지만 칼슘 영상기법엔 여전히 커다란 난관이 있다. 신경세포의 형광을 포착하려면 주변이 투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연구팀도 이런 한계 때문에 새 영상기법을 투명한 몸을 지닌 예쁜꼬마선충, 그리고 갓 태어난 제브라피시 유생의 투명한 뇌에만 적용해 관찰 결과를 제시했다. 쥐 같은 동물의 불투명한 뇌에서 칼슘 영상기법을 이용하기는 어렵다. 최근 연구자들은 어두운 곳의 빛도 잘 검출해내는 기술(‘2광자 현미경 기법’ 등)을 개발하고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직 한계가 뚜렷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작은 생물 전체에 있는 302개 신경세포를 모두 한눈에 관찰하며 신경세포들이 활성을 띠는 1000분의 몇 초 순간들을 실시간 동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는 점은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개별 또는 몇몇 신경세포를 자세히 관찰하는 기존 연구에 비해, 신경세포의 전체 연결망에서 정보가 어떻게 흐르며 어떻게 행동을 일으키는지 관찰하는 데 새로운 단서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신경 네트워크 전체를 관찰할 수 있다면, 예컨대 특정 뇌 질환과 관련해 예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신경세포를 찾아내거나, 어떤 자극이 가해질 때 반응에 관여하는 신경망 전체를 추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주 작은 벌레가 지닌 302개 신경세포 전체의 작동을 관찰하는 데 성공한 인간이 과연 극도로 복잡한 다른 동물의 뇌, 그리고 우리의 불투명한 마음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는 날이 올까?
이대한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오철우 기자
살아 있는 사람 뇌 속에서 신경섬유 가닥이 얽히고설켜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보여주는 뇌 영상기법(DSI). <한겨레> 자료사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은 활성을 띠는 뇌 부위에 몰리는 혈류량을 측정해 특정한 인지 기능의 활성 부위가 어딘지 보여준다.
휴먼 커넥톰 프로젝트(H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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