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오보카타 하루코 연구원이 지난 1월 말 고베에서 자신이 만들었다는 스태프 줄기세포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획기적이고 새로운 줄기세포는 그에게 찬사와 영예를 가져다주었지만, 이내 연구부정이 드러나 그는 불명예 과학자로 추락했다.
[사이언스 온] 일본 ‘STAP 줄기세포’ 스캔들이 남긴 것
“쉽게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연구”라는 찬사는 이제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충격과 실망으로 바뀌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분화능력이 매우 뛰어난 이른바 ‘스태프(STAP) 줄기세포’를 간편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세기의 발견’이라는 평까지 받았던 ‘오보카타 논문’에 오류와 부정이 있다며, 지난 2일 관련 논문들을 모두 취소했다. 1월30일 논문 발표 이후 153일 만이다. 이번 사태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의 논문 조작 사건에 이어 ‘스타 과학자의 극적인 도약과 추락’을 보여주며 세계 과학계와 사회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스태프 논문조작 사태는 무엇을 남겼나? 황우석 연구팀 논문조작 사건의 제보자였던 류영준 강원대 교수와 현재 일본 연구 현장에 있는 최승원·김연주 박사의 글을 싣는다.
‘세기의 발견’ 찬사받던 과학영웅
의혹·논란속 153일만에 ‘없던 일’로
2005년 황우석 사태 겪은 우리로선
어디서 본듯한 낯설지 않은 상황
스트레스 높은 연구환경 개선해
또다른 연구부정 싹트지 않게 해야 안타깝다. 2014년 과학계에서 한때 ‘과학 영웅’으로 솟아오르던 연구자 한 명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30살 오보카타 하루코. 이미 조작이 드러난 연구부정만 보아도 그는 더 이상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가 속한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리켄)의 개혁위원회도 최근 “윤리와 과학에 대해 연구자의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가 결여돼 있다”고 그를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논문의 오류와 부정을 밝힌 리켄 조사 결과를 부정하며 이의를 제기한 것도 모자라, 여전히 공저자인 와카야마 데루히코 교수(야마나시대학)에게 분화능력 검증용으로 스태프(STAP) 세포를 건넸지만 이후에 누군가에 의해 바꿔치기됐는지는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어디에서 많이 본, 낯설지 않은 상황 아닌가? 이렇게 불행한 연구부정의 역사는 오늘 또 되풀이되었다. 버칸티 교수와 오보카타의 운명적 만남 약산성 용액에 담가둔 세포가 초기 상태로 역분화해 분화능이 매우 뛰어난 ‘스태프 세포’가 된다고 밝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번 스캔들은 2005년 한국 사회가 겪은 인간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즉 황우석 스캔들과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국민적 자긍심의 상징인 서울대학교와 일본 이화학연구소가 조작의 장소가 되었다. 이공계 기피 사회에서 과학 부흥과 국익 창출이라는 염원을 짊어진 두 주인공의 끝 모를 비상과 추락도 닮았다. 와세다대학 출신인 오보카타와 함께한 공동 책임저자(교신저자)의 면면은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과학계의 선배들이다. 세계 최초의 마우스 복제를 성공한 와카야마 교수, 유명 줄기세포 연구자인 사사이 요시키 리켄 부센터장, 재생의학계의 대가인 미국 하버드대학 찰스 버칸티 교수가 그들이다. 하지만 다른 면이 있다. 황우석처럼 나이 지긋한 연구책임자가 조작의 주체와 객체가 된 한국의 경우와 달리, 실무 연구자인 제1저자가 조작을 주도했다는 점, 공저자를 섭외하고 역할을 나누는 코디네이터와 공동 교신저자의 역할까지 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치밀하고 정교했다. 초점이 오보카타에게 쏠리지만, 사실 스태프 세포의 개념을 처음 만든 이는 버칸티 교수였다. 오보카타는 그저 박사과정 교환학생으로 이역만리의 하버드 연구실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버칸티 교수가 제시한 새로운 줄기세포의 분화능력을 입증하는 중책을 맡았다. 버칸티 교수의 오랜 숙원을 해결해준 오보카타는 그에게는 혜성처럼 나타나 해결사가 된 애제자였던 것이다. 연구부정, 심연에서 싹터 자기기만으로 지난 몇 달 동안 조작 증거가 속속 드러나던 와중에도 오보카타와 버칸티는 “실수는 있었지만 스태프 세포의 존재는 의심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논문 발표 이후에 국내외 과학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재현 실험을 직접 해보니 초기 단계 실험에서 ‘약산성 용액에 세포를 담근 뒤 이틀 뒤 분화능을 보여주는 유전자(Oct-4)의 발현이 확인됐다’는 얘기도 더러 들려왔다. 오보카타와 버칸티가 눈으로 확인한 것은 여기까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현상을 본 것과 실제 재현할 수 있게 증명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오보카타는 이 첩첩산중의 먼 간극을 조작으로 메운 셈이다. 왜 이런 참담한 사태가 빚어졌을까? 오보카타는 박사학위를 받고서 스태프 세포 현상을 저명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으나 실패를 거듭 맛보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당시 리켄 소속이던 와카야마 박사에게 물었고, 이어 리켄에 연구원으로 입성(?)한다. 나는 이때가 오보카타 자신이 이번 연구에서 독립적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시점이었으리라고 본다. 이후 오보카타는 추가 실험을 거치며 2년에 걸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지속적으로 논문을 투고했다. 2012년 4월 <네이처>에 논문을 냈다가 거절됐고, 석 달 뒤 <사이언스>에 논문을 냈으나 역시 거부됐다. 당시 <사이언스>의 논문 심사 과정에선 ‘사진 잘라 붙이기’에 대한 지적을 받았지만 그는 그대로 <네이처>에 다시 투고했다. 조작에 조작을 거치며 논문 게재가 성사될 때까지 돌진하는 그곳엔 그 자신도 믿어 의심치 않는 일종의 자기기만도 자랐으리라. 이 얼마나 처절하고 섬뜩한 추진력인가. ‘고립된 경쟁’ 실험실 문화 이젠 바꾸자 충격적인 사건은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과연 논문 검증을 강화하고 공개토론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연구부정을 막을 수 있을까? 실험실을 보자. 체계가 잡힌 훌륭한 실험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실험실도 많은 게 현실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내가 몸담았던 옛 실험실은 체계 없이 주먹구구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연구 성과를 저명 학술지에 발표하고 싶을수록, 자신의 실험 진행을 다른 이들한테 얘기하지 않는다. 심하면 경쟁자를 방해하기도 한다. 이런 열악함은 실험실이 클수록,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심해질 수 있다. 서로 반목하기 쉽고 아직 어린 나이의 그들 사이에선 갈등 해소도 쉽지 않다. 실험 결과는 본래 잘 나오지 않는다. 사실 날마다 실패의 연속이다. 자신이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연구자의 자존감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심하면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지긋지긋하지만, 논문을 내야 졸업하고 졸업해야 더 나은 곳으로 나갈 수 있다는 초조함에 몰린다. 연구자를 고립시키며 극심한 성과 경쟁에 내모는 연구 환경은 지금도 제2의 오보카타, 제2의 황우석 스캔들을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벼랑 끝의 현장 연구자들을 위해 지금은 정말 무언가 해야 할 때 아닌가. 검증 체계 강화만이 아니라 실험실 삶의 문화에 더 큰 관심을 가질 때 아닌가.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스태프(STAP)란?
‘자극 촉발에 의한 다분화능 획득’을 뜻하는 영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연구팀이 붙인 용어. 약산성 용액의 ‘자극’을 주었더니 갓 태어난 쥐의 세포가 분화 이전의 초기 세포 상태로 되돌아가 여러 기능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다분화능’을 획득했다는 뜻이다. 유전자 조작이나 체세포 복제 없이 간편한 자극과 배양 처리로 매우 뛰어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고 연구팀은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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