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교수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의장 재선된 이덕환 서강대 교수
국외빈국 참가비 기금 마련과
과열경쟁 누그러뜨리는 게 목표 한국 학생들 전엔 비행기서 공부
요샌 춤·노래로 ‘팔방미인’ 인기
베트남선 케이팝 스타처럼 대접
한국 위상 높아져 재선출돼 “올림피아드를 왜 나가느냐?”는 물음에 이 교수는 “왜 올림픽에 나가느냐고 묻는 것만큼 싱거운 질문”이라고 일축했다. 올림픽의 취지가 국제 규모의 공정 경쟁과 화합이듯이 과학 올림피아드도 ‘과학’을 매개로 청소년들이 모여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친구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국제올림피아드는 1968년 소련에 점령당한 체코가 당시 주변 두 나라와 함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시작한 대회가 효시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류가 많이 생겨 정보통신(IT)올림피아드에 중등올림피아드까지 등장했다. 게다가 한국·중국·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문제도 어려워졌다. 이 교수는 “지난번 의장을 맡았던 2009~2011년 3년 동안 학생들의 과도한 훈련 등 과열 양상을 누그러뜨리고 제재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나라마다 교육제도와 과정이 달라 일률적인 처방은 어려워 권고하는 선에 그치고 말았다”며 아쉬워했다. 과열 경쟁이 메달리스트들에게 주어지는 특혜 때문만은 아니다. 옛 소련권 일부 국가를 빼고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학과 외 활동 정도로 인정한다. 우리나라도 올림피아드 경력을 입시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올림픽에서처럼 메달 색깔로 등위를 매겨 발표해 학생과 교사로 꾸려지는 대표단의 부담을 크게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올해 우리가 8위를 했다고 발표했지만 메달 수로만 집계하는 미국 방식으로 하면 여전히 1위”라고 말했다. 국제올림피아드 대회에 진출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수도권의 과학고 출신인 것도 난제 가운데 하나다. “화학올림피아드 참가자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선발하기 시작하는데 학교 차원에서 준비할 수 없어 정부 예산을 받아 학회가 운영합니다. 그 안에서 경쟁하다 보니 개인적 노력, 부모의 능력과 인식, 사회적 환경 등이 작용할 수밖에 없어요. 화학·물리를 좋아하는 집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활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국제대회에 나가는 4명을 뽑기 위한 선발대회에 머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많이 변했다. “이전에는 우리 학생들이 비행기에서 공부만 했어요. 대회장에서도 시험이 끝날 때까지 책만 들여다봤죠. 그런데 몇년 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영국 대회 때는 한 한국 남학생이 다른 나라 학생 10여명을 이끌고 다니며 ‘우상’이 됐다. 올해 처음 연 장기자랑 때는 한 한국 남학생이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불러 환호성을 받더니, 한 여학생은 현란한 케이팝 댄스를 춰 스타가 됐다. “시험 기간 중간에 참가 학생 300여명이 베트남 과학고를 방문했는데 한국 대표 학생 4명을 마치 케이팝 스타처럼 대접해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함께 찍느라 정신없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변화가 2009년 이 교수가 유럽계 이외의 국가에서 처음으로 의장에 뽑히고 이번에 재선출된 배경인 것 같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이 교수는 일부에서 문제로 제기하는 국제올림피아드 출신들의 의대 쏠림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역대 생물올림피아드 참가자의 60%, 화학올림피아드 참가자의 40%가 의대에 진학했다. 그는 “화학올림피아드 출신으로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을 추적해보니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워낙 똑똑한 아이들이라서 임상으로 만족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의대에서는 기초과학의 발전 여지가 크기 때문에 역량 있는 학생들이 필요하다”고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이 교수의 의장 임기는 1년이지만 운영위원 임기 기간에는 연임하는 것이 상례여서 2년 동안 의장직을 맡을 확률이 높다.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참가가 어려운 나라들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이다. 그동안은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에서 해마다 1만달러의 후원금을 희사해 3~5개국의 대회 참가에 도움을 줬지만 지난해부터 지원이 끊겼다. “후원을 받아 참가했던 학생들이 자라서 그 나라에서 중요한 인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올림피아드 참가가 학생들 본인과 국가의 명예이기도 하지만, 참가자들이 세계가 공동으로 잘 활용해야 할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작은 지원이 큰 빛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이근영 선임기자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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