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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무엇이 그들을 ‘아픈 사람’으로 만들었나

등록 2014-09-16 19:16수정 2014-09-16 19:53

지난 2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지난 2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살며 연구하며
지난봄, 인지심리 실험에 참여한 학부생들의 설문 응답을 정리하다가 놀랐다. 사회공포증이나 우울증 등을 이유로 치료와 처방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답한 경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눈 대화를 떠올릴 때 그들은 별다른 치료나 처방 기록이 없는 ‘정상적인’ 학생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정말 그들은 모두 아픈 학생들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아픈 학생으로 만들었을까? 작지만 마음속에서 쉽게 지울 수 없는 의문이었다.

오진은 오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 제5판>(DSM-5)의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심리학자 앨런 프랜시스는 그의 저서에서 정신장애의 과잉진단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심리학자 게르트 기거렌처도, 실제로는 질병이 없는데도 질병이 있다는 판정을 받은 환자가 치러야 하는 심리적 비용에 대해 경고했다. 암이나 자폐증 같은 육체적·정신적 질병은 사회적 낙인과 그에 따른 심리적 고통도 함께 초래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신장애가 지닌 사회적 성격 탓에 무엇이 ‘장애’인지 아닌지를 쉽게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심리학적 지식에 근거할 때, 비정상과 정상, 혹은 장애와 능력의 이분법은 생각 외로 모호한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충분한 논의와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섣불리 경계를 나누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일찍이 푸코는 ‘권력/지식’(power/knowledge)이라는 개념을 들어 지식을 통제하는 권한은 곧 타자에게 가하는 권력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누군가를 정상 혹은 비정상으로 지칭하는 일은 상대의 사회적 지위를 정해주는 ‘권력’의 행사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누구의 무엇을 가리켜 비정상 혹은 장애라 판단을 내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쉬워서도 안 된다.

문득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이 신문 칼럼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겨냥하며 했던 말, ‘감정조절 장애에 함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는 말과 그에 따른 논란이 떠오른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마주할 때 개인은 죄책감, 무력감, 우울증 등 심한 심리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고통에서 회복돼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며, 그 기간은 생각 이상으로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런 심리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내려지는 이런저런 사회적 판단과 낙인은 도리어 마음의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다.

너무나 멀쩡해 보이던 학부생들이 설문지에 기록한 우울증과 사회공포증 병력을 보며 놀랐던 일을 다시 떠올린다. 정신장애 진단이 어쩔 수 없이 수반하는 사회적 낙인에 대해, 또한 비정상 혹은 장애라는 단어의 남발이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에게 입힐 크고작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그들을 아프게 만들었을까? 정말 그들은 모두 아픈 사람들일까? 혹은 무엇이 그들을 아픈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김서경 미국 어배나-섐페인 일리노이대학 박사과정(인지신경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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