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칸타빌레’의 한 장면. 한국방송 제공
차유진 대 설내일의 절대음고
선천·후천성 구분 모호
피아노 보급률과 비례
음악인 좌우 연결 뇌량은
일반인보다 크지만
7살 이후 음악교육으론 변화 없어
선천·후천성 구분 모호
피아노 보급률과 비례
음악인 좌우 연결 뇌량은
일반인보다 크지만
7살 이후 음악교육으론 변화 없어
<한국방송>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의 두 젊은 주인공 차유진(주원)과 설내일(심은경)은 ‘절대 음고’ 소유자들이다. 특히 설내일은 눈으로 악보를 보는 대신 귀로 음악을 들어 외우는 ‘괴짜 피아니스트’다. 차유진이 먼저 연주를 해 들려준 뒤에야 협연을 할 수 있을 정도다. 절대음고는 유전적으로 타고난 재주인가 아니면 후천적 훈련으로 얻어지는 능력인가?
‘절대음고’는 기준음이 주어지지 않아도 어떤 음의 높이를 맞히거나 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낙숫물 소리만 들어도 ‘도’(정확히는 C)인지 ‘미’(E)인지 정확하게 맞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꾸로 “C”라고 불러주면 그 음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사람이 있다. 눈으로 표준 스펙트럼 없이 파란색을 구별해내는 능력에 비유할 수 있지만 인류의 2%만이 색맹인 데 비해 절대음고 능력을 가진 사람은 0.01%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작곡가라도 메시앙은 절대음고를 지닌 반면 바그너, 차이콥스키, 스트라빈스키 등은 절대음고를 가지지 못했다.
이석원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는 “과거에는 절대음고를 지닌 사람의 수가 적어 ‘천부적 재능’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음대생의 절반 정도가 절대음고여서 신비로운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절대음감이라고도 하는데 음감은 높이, 크기, 길이, 음색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어서 음의 높낮이만을 정확하게 짚는 절대음고와는 다르다. 이 교수는 “절대음고는 음을 듣고 음 이름을 문자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음악을 들으며 A, B, C#과 같은 글자들을 떠올리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절대음고 보유자들이 음악을 들으면 뇌의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에서 언어 영역이 활성화한다. 메니에르병이나 윌리엄신드롬 등 일부 유전병 환자군에서 절대음고 보유율이 높아 유전적 요인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아직 절대음고 유전자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천부적인 설내일의 절대음고보다는 3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워 대학 때까지 밤낮없이 연습을 해온 차유진의 절대음고가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때 일부 유전학자들은 절대음고 비율이 동아시아에서 높게 나타나는 데 주목했다. 하지만 후속 연구들에서 이 역시 조기 음악교육과 연관이 있다는 점이 증명됐다. 일본 니가타대학의 미야자키 겐이치 교수는 2012년 <미국음향학회지>에 보고한 논문에서 연구 대상인 일본 학생들의 절대음고는 30%인 데 비해 폴란드 학생들은 7%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학생들은 폴란드 학생들보다 평균 2년 일찍 피아노와 노래 공부를 시작했으며, 조기교육을 받은 비율도 일본은 94%인 데 비해 폴란드는 72%였다. 미야자키는 도쿄의 야마하음악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 7살이 절대음고 향상의 임계치임도 밝혀냈다. 그는 한 나라의 절대음고 비율이 피아노 보급률과 비례한다는 사실도 발표했다.
이 ‘절대음고 7살 임계치’는 음악에 의한 뇌의 변화와도 일치해 주목된다. 음악을 하면 사람의 뇌가 변한다. 소뇌와 운동피질이 커진다. 이석원 교수는 “뇌는 많이 쓰는 쪽에서 용적을 차지하도록 변하는 가소성을 지녀 시각장애인은 청각이나 촉각 영역이 넓어진다. 마찬가지로 양손을 쓰는 연주자는 일반인에 비해 운동피질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양손을 조화롭게 쓰려면 좌뇌와 우뇌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이때 뇌의 두 반구를 연결하는 뇌량이 통신원 구실을 한다. 독일 하인리히하이네대학의 헬무트 슈타인메츠 교수 연구팀은 전문음악인 30명과 연령·성별·손잡이(왼쪽·오른쪽)가 일치하는 비음악인 30명의 뇌량을 조사한 결과, 음악인들의 뇌량이 비음악인에 비해 8% 정도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이한 것은 음악인 가운데 7살 이전에 음악교육을 시작한 사람은 비음악인보다 뇌량이 11.6%나 큰 데 비해 7살 이후 음악을 시작한 음악인의 뇌량 크기는 비음악인보다 오히려 작았다. 성굉모 서울대 명예교수(음향학)는 “음악은 뇌와 신체의 상호작용이어서 기계체조 선수처럼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실력이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의 지은이인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한 나라의 헌법과 국가(노래) 중 어느 것을 만들겠느냐고 했을 때 국가를 선택한다고 갈파했을 정도로 음악은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밝힐 수 있는 부분은 아직 한계가 많다. 사람이 음의 높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달팽이관에 고음과 저음을 담당하는 영역이 나뉘어 있고 마찬가지로 뇌의 청각 영역에도 주파수를 식별하는 세포지도(토노토피)가 존재해서다. 정천기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절대음고 보유자는 토노토피가 굉장히 예민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뇌 영상장비로는 세포 단위까지 관찰할 수 없다. 신경세포는 15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미터) 단위인데 기능성자기공명영상의 해상도는 밀리미터 단위밖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악 정보를 처리하는 체계에도 미지의 영역이 많이 남아 있다. 이전에는 음악 정보 처리가 측두엽의 청각피질에서 처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측두엽의 청각피질이 모두 손상된 사람한테 음악을 들려주면 두 곡의 멜로디는 구별하지 못하면서도 슬픈 곡인지 즐거운 곡인지를 구분해냈다. 연구자들은 대뇌피질보다 훨씬 먼저 진화한 대뇌변연계가 작동해 음악이 지닌 감정은 느끼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중앙정보처리 장치는 변연계보다 먼저 생성된 뇌간계의 핵심구조에 있을 것이다. 다만 청각피질이나 변연계 등은 에너지 소모가 많아 그 변화량을 측정해 뇌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는 반면 뇌간은 에너지를 거의 안 써 변화량을 측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굉모 교수는 “인간의 청각기관은 비선형성이 강하다. 곧 콩 심은 데 콩만 나는 게 아니다. 엠피3와 엘피(LP) 음악의 스펙트로그램(시간에 따라 주파수 성분을 나타낸 음향분석도)을 보면 완전히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음악으로 인식한다. 인위적 가공을 싫어해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예술가가 있지만 그도 두 음악을 구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만큼 청각은 신비한 기관”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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