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대, HIV 독성 약화 확인
작년 사망자 5년전보다 22% 줄어
작년 사망자 5년전보다 22% 줄어
인류가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이하 에이즈)의 공포에서 해방될 날이 멀지 않은 걸까?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인체의 면역체계에 순응하면서 맹독성이 약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장기적으로는 인체에 무해한 바이러스가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연구팀이 아프리카 지역의 감염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임상 관찰을 한 결과 문제의 바이러스가 점차 덜 치명적이고 감염력도 약한 쪽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1일 전했다. 이 날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기도 하다.
연구팀을 이끄는 필립 굴더 교수는 “에이즈 바이러스는 인간의 면역 저항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돌연변이를 거듭하는 변신의 귀재인데, 변신에는 ‘복제능력 감퇴’라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복제를 통한 자기증식이 줄면 바이러스의 감염성이 떨어지고, 에이즈 발병까지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독성이 약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숙주인 인체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런 진화 경로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에이즈에 가장 오래 시달려온 보츠와나의 경우, 그보다 10년 뒤에 에이즈가 전파된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 바이러스 복제율이 10%나 낮았다. 굴더 교수는 “20년 전만 해도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발병하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 지난 10년새 보츠와나에선 발병기간이 12.5년으로 늘었다”며 “이는 급속한 변화”라고 말했다.
에이즈의 위력 감소는 사망자 추세로도 확인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세계 에이즈 감염자는 3500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며 지난해에만 약 150만명이 숨졌다. 지난해 사망자 수는 2009년에 견줘 22%, 2005년보다는 35%나 줄어든 수치다. 조너선 볼 노팅엄대 의대 교수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지금 추세대로 진화하면 인류의 저항력이 더 커지고 궁극적으로는 감염이 거의 무해한 수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프리카의 빈곤·질병 퇴치 운동 단체인 원(ONE) 캠페인도 이날 “지난 1년간 에이즈 바이러스의 신규 감염자수가 보균자 수보다 적었다”며 “에이즈와의 싸움에서 마침내 전환점을 지났다”고 평가했다. 이 단체는 그러나 지속적인 에이즈 퇴치 노력과 보건투자 확대를 호소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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