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의 변신과 감정기술
방사선 쬔 다이아몬드 형형색색 조화
수정·토파즈 등도 예쁜 색으로 가공
천연보석 빼닮은 색깔로 가격은 저렴
은갈치색 둔갑한 진주 감별법도 개발
방사선 쬔 다이아몬드 형형색색 조화
수정·토파즈 등도 예쁜 색으로 가공
천연보석 빼닮은 색깔로 가격은 저렴
은갈치색 둔갑한 진주 감별법도 개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는 지난해 11월13일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8300만달러(913억여원)에 팔린 59.6캐럿(약 12g)짜리 분홍빛 다이아몬드 ‘핑크 스타’다. 다이아몬드는 대부분 흰색(실제로는 무색)이지만 ‘핑크 스타’처럼 색깔이 있는 다이아몬드도 자연 상태에서 채굴된다. 다이아몬드 원석은 갈색이 가장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갈색을 선호하지 않아 보석으로서는 무색이나 황색이 주로 이용된다. 드물지만 핑크 스타처럼 분홍색(핑크)이나 청색(블루) 다이아몬드도 있다.
다이아몬드가 색깔을 띠는 것은 불순물 때문이다. 순수한 탄소로 구성돼 있는 다이아몬드에는 미량의 질소, 붕소, 수소 등이 들어 있기도 하다. 보석학계에서는 질소가 있고 없고에 따라 다이아몬드 타입을 크게 둘로 나눈다. 또 미량의 원소들이 쌍이나 그룹으로 존재하는지 고립돼 있는지, 붕소가 들어 있는지 등의 조건별로 다시 네가지 타입으로 나눈다. 일반적으로 질소가 포함되면 황색을, 붕소가 포함되면 청색을 띤다. 청색 다이아몬드는 뛰어난 전기전도성을 보여 반도체로 쓰이기도 한다. 짙은 색의 다이아몬드는 ‘팬시 다이아몬드’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결혼 예물로는 주로 무색 다이아몬드가 쓰이지만 젊은층에서는 팬시 다이아몬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천연 팬시 다이아몬드는 희귀성 덕분에 무색 다이아몬드보다 비싸다. 다이아몬드 색깔을 맘대로 바꿀 수 있다면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다이아몬드 색깔을 바꾸는 ‘연금술’에 방사선이 쓰인다. 방사선으로 다이아몬드 변색을 처음 시도한 사람은 영국 과학자인 윌리엄 크룩스(1832~1919)다. 그는 1904년에 무색 투명한 다이아몬드에 라듐을 쬐니 청록색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다이아몬드는 표면만 색깔이 바뀌었을 뿐으로 그마저도 450도로 가열하니 색이 사라졌다.
1940년대에는 다이아몬드에 듀테론(중양성자·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수소 동위원소인 중수소의 핵)이나 양성자를 쬐는 방법이 개발됐다. 이들 방사선을 쬐면 다이아몬드가 암녹색으로 바뀌고 다시 800도 정도의 고온으로 가열하면 다양한 갈색이 나타났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는 다이아몬드에 아메리슘 산화물을 삽입하는 공정도 개발됐지만 본격적인 상업용 유색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방사선 조사(쪼이기)에는 중성자 반응기나 전자 가속기가 주로 쓰인다. 최근에 방사선을 쬐어 만든 팬시 다이아몬드는 색이 고르게 분포해 천연 유색 다이아몬드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방사선을 맞은 다이아몬드가 색깔을 띠는 원리는 간단하다. 석정원 동신대 보석귀금속학과 교수는 “방사선을 쬐면 다이아몬드를 구성하고 있는 탄소원자의 일부가 자리를 이탈해 빈 자리(홀컬러센터)가 생기고 이 공간이 빛의 일부를 흡수한다. 특히 빨간색(적색)을 주로 흡수하기 때문에 청색이나 녹색으로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또 방사선을 조사한 다이아몬드에 열을 가하면 다시 색이 변하기도 한다. 방사선 조사로 다이아몬드 결정의 격자에 결함이 생기고 열을 가하면 이 격자 결함들이 이동해 다른 격자 결함들과 결합해 새로운 격자 결함이 생겨나 다양한 색깔로 변한다는 것이다.
감마선이나 양성자 등을 쬐어 가공하기도 하지만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김귀영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주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 운영관리팀장은 “몇년 전 양성자를 값싼 다이아몬드에 쬐어 양성자 양에 따라 황색에서 녹색, 다시 청색으로 변하는 실험을 했다. 하지만 양성자 조사기를 가동하는 비용이 커 실험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천연과 인공 팬시 다이아몬드를 구분하는 데도 방사선이 쓰인다. 방사선으로 가공한 다이아몬드와 천연 다이아몬드는 현미경이나 굴절계, 비중계 등으로는 감별할 수 없다. 최현민 한미보석감정원 첨단보석분석연구소 연구팀장은 “블루다이아몬드는 전기가 통하는지로 천연과 인공을 구분할 수 있지만 다른 색깔의 다이아몬드는 엑스선형광분광기나 라만분광기 등을 사용해 감별한다”고 말했다.
인위적으로 방사선을 쬐어 색을 변화시킨 보석은 다이아몬드뿐만 아니라 토파즈나 진주, 수정, 투르말린 등 여러가지다. 무색의 토파즈에 코발트-60(Co-60)이나 중성자를 쬐면 갈색이나 청색이 섞여 나타난다. 여기에 열을 가하면 갈색은 사라지고 청색만 남는다. 시중에 팔리는 아름다운 청색의 토파즈는 대부분 방사선을 조사해 가공한 것이다.
양식 진주는 대부분 노란색이나 크림색을 띤다. 진주에 방사선을 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은갈치색(푸른빛이 감도는 은색) 진주를 만들 수 있다. 원래 생산될 때부터 은갈치색인 진주는 다른 진주보다 3~4배 비싸다. 문제는 방사선으로 가공한 진주가 원래 은갈치색 진주로 둔갑해 팔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방사선을 쬔 것인지는 양식 진주 안에 들어 있는 핵을 보면 알 수 있다. 방사선을 쬐면 핵에 들어 있는 탄산망간(MnCO₃)의 산화수가 바뀌어 색깔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로몬의 판결처럼 감별을 위해 진주를 쪼갤 수는 없는 일이다. 한미보석감정원 첨단보석분석연구소는 2년 전 진주를 쪼개지 않고 진주 가공 과정에 나오는 미량의 가루만으로 방사선 조사 여부를 감별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방사선 조사 식품의 식별에 쓰이는 여러 방법들을 원용해 실험한 결과 ‘전자상자성공명법’(EPR)이 방사선 조사 진주를 감별하는 데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김영출 한미보석감정원 원장은 “이 방법을 이용하면 0.3~1kGy(그레이·방사선흡수선량)의 아주 낮은 조사선량으로 처리한 진주도 식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이 방법을 미국보석학회(GIA)에서 발행하는 보석감정 분야 국제학술지 <보석과 보석학>에 논문으로 공개하자 주로 일본에서 가공해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던 방사선 조사 은갈치색 진주가 시장에서 사라졌다. 최근에는 중국 국영보석감정센터(NGTC)에서 한미보석감정원 연구팀을 초청해 자세한 기술을 청취하기도 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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