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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등록 2015-01-11 17:26수정 2015-01-11 20:04

헌혈인 300만명 시대
혈액 4대 구성 성분별로 보존기한 달라
냉동혈장 1년, 적혈구 35일, 혈소판 5일
성분헌혈 2주마다 참여하면 수급 도움
희귀혈액형 위해 표준검사실 구축해야
헌혈 300만명 시대가 왔다. 지난 12월31일까지 한해 동안 헌혈에 참여한 사람은 305만3424명이다. 전체 인구(5042만3955명)의 6.05%로 선진국들과 비슷한 정도의 참여율이다. 헌혈자가 300만명을 넘어 혈액 공급 자급률 100%도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해에는 일부 혈액을 수입해 혈장 자급률이 94.9%였지만 올해는 국내 수요량을 채우고 남을 전망이다. 자급률이 높아진 것은 헌혈자가 많아진 덕분이지만 혈액 수요가 줄어서이기도 하다. 수술 방식이 개복에서 내시경으로 바뀌고 수혈을 적게 하고도 치료하는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는 덕이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미국의 지난해 수혈량이 2010년보다 33%가량 줄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도 2년째 줄어드는 추세다.

그럼에도 헌혈의 중요성은 작아지지 않는다. 아직 인공혈액이 개발되지 않아 수혈은 헌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서영익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안전관리팀장은 “여전히 적극적인 헌혈 참여가 필요한 이유는 혈액도 식품처럼 유통기한이 있어 헌혈자가 많아졌다고 필요한 혈액이 적시에 공급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헌혈은 크게 전혈과 성분헌혈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된다. 전혈은 피를 구성하는 적혈구·백혈구·혈소판·혈장 등 4가지 성분을 모두 빼내는 것이고, 성분헌혈은 채혈한 뒤 혈장이나 혈소판만 빼내고 나머지는 다시 몸속에 넣어주는 방식이다. 전혈 채혈을 한다 해도 바로 성분별로 분리해 보관하기 때문에 결과물은 똑같다. 수혈은 환자의 질병이나 상태에 따라 성분별로 이뤄진다.

채혈과 수혈이 성분별로 이뤄지는 이유는 기능이 달라서다. 적혈구는 보급병이다. 산소를 나르고 폐기물(이산화탄소)을 걷어온다. 세포에선 핵이 뇌 구실을 한다. 그러나 적혈구에는 핵이 없다. 뼛속 골수에서 만들어질 때는 핵이 있는데 성숙해서 혈관으로 나올 때는 핵이 없어진다. 핵이 남아 있는 백혈구가 면역거부반응 탓에 다른 사람한테 이식하기 어려운 반면 적혈구는 수혈이 가능한 이유다. 백혈구는 전투병으로, 해군·육군·공군처럼 호중구·호산구·호염기구·단핵구·림프구 등 다섯 종류가 있다. 외부에서 침투하는 모든 이물질을 공격한다. 이런 성질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수혈할 수 없다. 혈소판은 의무병으로, 피를 응고시켜 혈액의 유출을 막는 구실을 한다. 혈소판도 핵이 없다. 혈장은 수분과 알부민, 글로불린 같은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다른 세포와 마찬가지로 적혈구와 혈소판은 영구히 살지 못한다. 적혈구는 생존기간이 평균 120일, 혈소판은 평균 4일이다. 따라서 혈액에도 유통기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적혈구는 채혈 뒤 유효기간이 35일이다. 혈장은 전혈로 채혈해 분리했을 때 영하 18도로 바로 얼리면 유통기간이 1년까지 늘어난다. 반면 혈소판은 5일에 불과해 늘 재고량이 부족하다.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났어도 바로 상하는 것이 아니면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혈액은 바로 폐기한다.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단기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헌혈을 하는 바람에 엄청난 양의 피가 버려지기도 했다.

헌혈의 어려움에는 헌혈자의 건강을 고려해 너무 자주 할 수 없다는 점도 있다. 적혈구의 주요 성분이기도 한 철분은 인체의 생리기능을 유지하려면 외부에서 반드시 보충해줘야 한다. 그런데 400~500㎖의 피를 뽑으면 남자는 평균 236㎎, 여자는 213㎎의 철분이 소실된다. 식사로 하루에 섭취하는 철은 2.8~6.0㎎으로 헌혈(전혈) 한번 한 뒤 철분을 보충하는 데는 평균 50일 정도가 걸린다. 전혈 헌혈을 두 달에 한번 할 수 있도록 한 이유다.

혈소판과 혈장은 회복기간이 짧지만 성분헌혈 간격도 2주일로 제한하고 있다. 헌혈할 때 채혈 키트에 남는 혈액과 감염이나 혈액형 검사를 하려고 쓰는 혈액 손실 등을 고려해서다. 1년에 24회 정도 성분헌혈을 하면 전체 혈액손실량이 전혈을 채혈했을 때 혈액량과 비슷해진다.

최근에는 헌혈 횟수를 좀더 보수적으로 제한하는 추세다. 영국의 경우 전혈 횟수는 연간 3회, 성분헌혈도 연간 15회까지로 줄여 연간 손실되는 혈액량을 1500㎖로 제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한국도 헌혈자 증가와 수혈량 감소 경향을 반영해 현재 연간 전혈 5회, 성분헌혈 24회로 돼 있는 제한을 각각 4회와 20회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헌혈량이 충분해지자 혈액의 질을 높이는 노력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헌혈을 하면 최우선으로 하는 검사가 혈액형이다.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항원에 의해 생긴다. 1900년 오스트리아 생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ABO 혈액형을 분류한 것이 효시다. 수혈 때 피가 응고되는 현상에 대한 해석과 해법을 찾아낸 것이다. 같은 혈액형들로만 이뤄졌다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실제로 중남미 원주민들은 모두 O형이어서 500년 전에 이미 아무 문제 없이 수혈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적혈구 표면에는 ABO형 항원만 존재하지 않는다. ABO형 다음으로 유명한 혈액형이 Rh형이다. 하지만 이 Rh형만 해도 50여가지 항원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적혈구 항원은 500가지가 넘는다. 혈액형 종류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수혈이나 임신으로 특정 항원(혈액형)에 대해 항체가 형성된 혈액은 다른 사람한테 수혈하면 안 된다. 특정 항원을 가진 사람에게 수혈되면 그 항체가 적혈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상치 못한 항체를 ‘비예기항체’라 한다. 헌혈한 혈액에 비예기항체가 들어 있으면 폐기한다.

양진혁 대한적십자사 혈액수혈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현재 더피(Duffy), 키드(Kidd) 등 15가지의 희귀혈액형에 대해서도 정밀한 검사체계를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비교적 단순한 혈액형 군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인구 구성이 다변화하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대비 차원에서도 국가혈액표준검사실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주/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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