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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백설공주는 과연 반듯하게 죽어있었을까

등록 2015-06-12 17:38


사체의 변화
반듯하게 누워 양손을 가슴에 모은 ‘백설공주 자세’
일곱 난쟁이들이 곱게 단장해 연출한 것
몸이 유연했다는 것 자체가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증거
맑고 청명한 초여름의 하루, 하늘하늘한 흰색 실크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맨발로 초원을 거닌다. 하늘은 맑고 햇빛은 찬란하며, 연한 새싹과 부드러운 흙은 맨발을 기분 좋게 간질이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엔 달콤한 과일향이 난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형형색색의 꽃들이 활짝 만개한 들판에 이르렀다. 아름답게 지저귀는 산새 소리와 그윽한 꽃향기에 취해 화려한 날개를 반짝이며 꽃들 사이를 바쁘게 팔랑거리는 나비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자연의 모습이란 이렇듯 환상적일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럴까. 일단 초여름의 한낮에 그늘 하나 없는 들판을 걷는다는 건, 그 자체가 충분히 고역이다. 햇살은 따가워 살이 익는 듯하고, 등줄기를 타고 땀이 줄줄 흐른다. 옷은 땀과 흙먼지와 풀물로 얼룩지고 구겨져 후줄근해졌고, 맨발은 흙투성이에 상처투성이가 된 지 오래다. 바닥에는 이름 모를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그늘진 바위틈에는 구더기가 들끓는 들쥐의 사체가 썩어간다. 짝을 찾는 매미와 개구리의 합창은 소음 공해 수준으로 귓전에 울려대며, 모기의 공격으로 울퉁불퉁해진 팔과 풀독이 올라 벌겋게 부풀어 오른 다리가 가렵고 쓰라려 미칠 지경이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저것은? 분명 벌떼다. 나도 모르게 벌집을 건드렸나보다.

‘자연스러운 풍광’의 이면

생물학자이자 박쥐전문가인 댄 리스킨은 저서 <자연의 배신>을 통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안전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자연스러운 풍광’이라고 떠올리는 장면들은 사실 정교한 인위적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으며, 실제의 자연은 성경에서 말하는 ‘7대 죄악’이 정교하게 얽힌 연옥의 이미지에 가깝다는 것이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이미 앞선 칼럼에서 이야기했듯 사람들은 있는 것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보는 특징을 가진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골라서 보는 수준을 넘어 상상한 대로 만들어서 보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죽음이다.

사람들이 시신을 상상할 때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 굳게 닫힌 두 눈과 입술, 반듯하게 누워 양손을 가슴에 모은 일명 ‘백설공주 자세’를 취한 시신의 모습 말이다. 하지만 법의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건 사망 직후 주변인들이 연출해준, 지극히 인위적인 자세다. 그러고 보니 ‘백설공주 자세’도 실은 독사과를 먹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진 백설공주를 일곱 난쟁이들이 곱게 단장해 연출한 것이었지 백설공주가 발견된 자세는 아니었다. 사망 순간, 온몸의 근육은 일시적으로 이완되었다가, 점차 그 자세 그대로 사후 경직이 일어나 굳어 버린다. 백설공주가 진짜로 죽었다면 바닥에 엎드려 쓰러진 그 자세 그대로 굳었을 테니, 유리관에 똑바로 눕히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죽기 직전 독사과를 한입 가득 물고 있었다면 입도 벌어진 상태여야 했겠지. 결국 백설공주가 아무리 죽은 것처럼 보였더라도 두 손 모으고 입 다물게 해서 똑바로 눕힐 수 있을 만큼 몸이 유연했다는 것 자체가 아직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증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곱 난쟁이들은 이를 알지 못했기에, 결국 아름답긴 하지만 시체-라고 생각한-에 한눈에 반해버리는 다소 의심스러운 성적 취향의 왕자님과, 주면 주는 대로 입고 쓰고 먹어버리는 다소 유아스러운 심성의 백설공주와의 만남에 일조한 셈이 되었다.

문득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메리 로치의 <인체 재활용>(원제 ‘STIFF: The Curious lives of human’)이 떠오른다. 사람이 죽은 이후, 그 몸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가 궁금했던 그녀가 장의사의 작업실에서 본 장면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보기 좋게 비껴나간다. 그녀가 그곳에서 본 것은, 직접 고인의 얼굴을 보며 장례식을 치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자연스러운’ 시신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실시되는 온갖 ‘인위적인’ 조작들이었다.

생태계의 근본은 순환이다. 생산자인 식물은 땅에서 자라나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며 포도당을 합성해 살아간다.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동물은 식물 혹은 다른 동물들의 몸을 먹고 이를 자신의 몸으로 바꾸면서 생태계의 소비자로 살아간다. 그리고 생태계 순환의 마지막 고리인 분해자들은 생명체의 생명 활동에서 만들어지는 배설물과 죽음 이후에 남겨진 몸을 부수고 녹여서 다시 땅으로 되돌리고 식물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포도당을 만들어내며 순환의 고리를 이어간다. 따라서 가장 자연스러운 죽음은 누군가의 먹이가 되어 다른 몸의 일부로 옮겨가거나 산산이 바스러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적어도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만큼은 자연의 분해자들도 예의를 갖춰 활동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세상일이 모두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라, 시신은 숨이 다한 순간부터 자연의 법칙에 따라 변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일부 장의사들은 시신에 엄청난 양의 방부제와 탈취제를 사용해 시신이 장례식 도중 -심지어 땅에 묻힌 뒤에도 한참 동안- 썩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시신을 방부 처리 한다. 또한 자체적인 수분 손실과 효소에 의한 분해 작용으로 눈꺼풀이 움푹 꺼지거나 코와 귀에서 분비물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솜뭉치를 채워 꼭꼭 틀어막는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시신의 턱을 꿰매는 것이었다. 사망 이후의 변화로 턱 근육이 수축되면 입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장의사들은 시신의 턱 안쪽-겉으로 실밥이 보이면 안 되므로-에서 바느질을 해 입을 꼭 다물도록 고정시키곤 한다. 로치는 자신의 책을 통해 이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사람들이 상상하기에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시신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부자연스러운 시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정말로 자연스러운 건 어떤 걸까?

사체 위 벌레들의 연회

태양이 머리 위에 뜬 지난달 말 어느 날 낮. 서울에서 차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경기도의 한 시골길. 온통 여름을 맞이하는 초록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농장이었다. 탁 트인 깨끗한 하늘과 물을 가득 댄 찰랑찰랑한 논에 초록색 모들이 줄을 맞춰 늘어서 있고, 저 멀리 날갯짓을 하는 황새의 하얀 몸은 물론이거니와 날개의 검은 깃털까지도 반짝거리는 듯하는 화창한 날이다. 마치 귀농을 장려하는 팸플릿의 표지 사진으로 쓰일 법한 목가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 너머 저쪽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온몸 가득 죽음을 품고 썩어가는 돼지의 사체다.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다랗고 잡초가 우거진 논두렁길을, 법곤충학자인 신상언 선생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순간, 눈보다도 코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법곤충학자의 야외 실험실에 도착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선 단어인 법곤충학(Forensic entomology)이란 곤충의 생태와 성질을 이용해 사건 해결에 응용하는 법의학의 한 분야다. 법곤충학은 주로 시신의 사망 시각을 추정할 때 이용되지만, 벌레가 발견된 식재료의 오염 시기라든가 사건 현장의 위치 등을 구별할 때 이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부패’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곰팡이나 미생물을 먼저 떠올린다. 누구나 한번쯤은 냉장고 구석에 놓아두고 잊어버려 퍼렇게 곰팡이가 슨 빵이나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부패한 반찬과 마주한 적이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곰팡이와 미생물도 훌륭한 분해자이기는 하지만 자연에서 특히나 커다란 동물의 사체를 분해하는 일에서 가장 주된 역할을 맡는 이들은 단연코 곤충, 그중에서도 사체를 먹는 ‘시식성’ 곤충들이다.

시식성 곤충의 대표주자는 파리다. 이들에게 있어 갓 사망한 신선한 사체는 사랑스러운 자식들-구더기-을 위한 최고의 만찬이기에 이들은 사체가 발생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날아와 사체 위에 알을 낳는다. 파리의 ‘죽음 탐지기’는 매우 민감해서 보고에 따르면 사체가 발생하면 1시간 내외로 파리가 나타난다. 특히나 사체는 임자가 없기에 먼저 알을 낳는 파리가 시신의 주도권을 차지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따라서 여러 종류의 시식성 파리 중에서 가장 먼저 알을 낳는 파리종이 우점종이 되어 시신 전체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전체 사체의 70% 정도에서 한 종의 파리만이 발견되며, 3종 이상의 파리가 사이좋게 사체를 나눠 가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파리는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는 시간을 줄여서 사체를 먼저 차지하고자 뱃속에서 알을 부화시켜 1령 구더기를 낳기도 한다. 이런 구더기를 ‘쉬’라고 하는데, ‘쉬파리’라는 이름과 ‘쉬슬다’라는 표현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파리가 자식들의 미래를 축복하고 날아간 뒤에는 또다른 시식성 곤충인 딱정벌레와 그들의 애벌레, 이 어린 벌레들을 자신의 자식들의 먹잇감으로 삼는 기생벌과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을 노리는 개미 등등 다양한 곤충들이 모여들어 사체는 서서히 벌레들의 연회장으로 변모한다. 사람들이 왜 장례식에서 ‘자연스러운’ 시신을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하는지는 이곳에 잠시만 서 있어도 명백하게 이유를 말할 수 있었다. 정말로 자연스러운 사체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리하고픈’ 존재였기에.

돼지 사체는 몇 주 전부터 이곳에 놓여 있었기에 이제는 부패할 대로 부패해 곁에만 서 있어도 역한 냄새에 눈이 시릴 정도였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체에 바짝 고개를 대고 꿈틀거리는 벌레들을 잡아 한 마리씩 조심스레 플라스틱 튜브에 넣는 데 여념이 없었다. 마치 냄새 따윈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듯.

외국선 1960년대부터 법곤충학 시작

항온동물과는 달리 체구도 작고 변온동물인 곤충들은 주변의 환경에 의해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시신이 발견된 주변의 기온, 습도, 밀봉 상태 등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달라지는데, 이런 정보들과 시신에서 발견된 벌레들의 발달 단계를 교차 비교해보면 시신이 언제부터 거기에 놓여 있었는지를 역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비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체가 놓인 곳의 기온 및 사체의 체온, 습도, 강수 여부, 햇빛의 비침 정도, 실내와 야외, 옷의 두께, 매장의 여부 및 매장된 깊이 등에 따라 시신에서 발견되는 시식성 곤충의 종류와 성장 속도에 대한 데이터들이 미리 축적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외국의 경우에는 이미 1960년대부터 법곤충학이 시작되어 실제 사람의 시신을 이용하여 각각의 상황에 대한 데이터들이 상당량 축적되어 있지만, 국내의 경우에는 역사도 짧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데이터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기에 그는 앞으로도 여러 차례 동일한 작업을 반복해 데이터를 축적할 것이다. 그가 냄새나고 역겨운 사체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이 상황을 즐겨서가 아니라 시신이 그처럼 자신의 몸을 녹여내면서까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읽어내고자 하는 열망 때문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 온몸에 밴 악취가 내가 조금 전에 보았던 강렬한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게 방해한다. 죽음과 부패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이 불가한 그 냄새와 함께 홀로 운전하다 보니, ‘본다’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짧은 기간 이루어진 해부학 실습(부검)과 사체 변화 관찰의 경험을 거치며 내내 이어진 의문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많은 것을 본다. 그것도 눈을 들어 똑바로 응시하는 것도 아니라 그저 슬쩍 곁눈질을 하는 정도로만 말이다. 그러고는 보았으니 그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는 것은 결코 아는 것으로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똑같이 슬픔에 빠진 부모들을 보지만 누구나 그들의 눈에서 아픔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혼란스러움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라도 그 혼돈 속에서도 초점을 잃지 않고 본질을 볼 줄 아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어쩌면 세상의 많고 많은 복잡한 문제들은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동굴에 갇혀 어른거리는 그림자만 보고서는 ‘보았으니 알았다’고 자신하는 그 편협한 몰이해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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