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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빛의 복면을 벗자 행성의 몸이 드러났다

등록 2015-09-25 19:41수정 2015-09-26 10:02

‘케플러-11’은 지구에서 2000광년 떨어진 나이 80억년의 항성계로, 중심의 항성이 6개의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 2010년 8월 케플러 우주망원경에 의해 3개의 행성이 항성을 가리는 현상이 관측됐다. 당시의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그린 이미지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제공
‘케플러-11’은 지구에서 2000광년 떨어진 나이 80억년의 항성계로, 중심의 항성이 6개의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 2010년 8월 케플러 우주망원경에 의해 3개의 행성이 항성을 가리는 현상이 관측됐다. 당시의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그린 이미지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제공
[토요판]
식현상과 천문관측
▶ 이번 추석에는 달의 겉보기 크기가 큰 슈퍼문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월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달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면서 마음속의 달을 가려보면 어떨까. 달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지구에 벌어졌을 온갖 현상을 상상하는 건 어떨까. 슈퍼문에 월식이 겹친 특별한 한가위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대신 올해는 잠시 그것을 가려서 다른 진리를 찾아보는 게임을 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달이 더 소중해질 것이고 한가위 보름달은 더 풍성하게 느껴질 것이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은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출연하는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예쁘기만 하다’고 평가받던 아이돌 가수는 가창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고, 래퍼가 부르는 달콤한 발라드는 감미로움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가수와 그 가수의 흉내를 내는 모창 가수가 함께 숨어 노래하는 <히든 싱어>도 노래를 노래 자체로 듣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며 인기를 끌었다. 심사위원들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보지 않고 의자를 뒤로 돌린 채 목소리만 듣고 평가하는 <보이스 코리아>를 통해선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실력 있는 가수들이 배출됐다. 모두 하나를 드러내기 위해 다른 것을 가린 결과다.

달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일직선으로 놓여 태양을 가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을 일식이라고 한다. 달은 태양에 비해 400배가량 작다. 지구와 달 사이 거리도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 400배 작다. 물론 우연이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지구-달 시스템이 생성된 이후 계속 멀어지고 있으니 이 숫자도 당연히 변해왔다. 하지만 이 우연으로 지구에서 달과 태양을 보면 그 겉보기 크기가 비슷해 보인다. 비슷한 크기의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것을 ‘개기일식’이라 한다. 반면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지 못하고 마치 고리반지처럼 보이는 현상은 ‘금환일식’이라 한다. 지구 주위를 타원으로 돌고 있는 달이 지구에 좀 더 먼 위치에 있어 그 겉보기 크기가 태양보다 작을 때 금환일식이 일어난다. 태양과 달과 지구가 정확하게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은 상태에서 배열됐을 때는 ‘부분일식’이 일어난다.

일식 때만 보이는 것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들처럼,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태양으로부터 수백만 킬로미터를 뻗어 나오는 수십만에서 수백만도의 온도를 갖는 코로나가 바로 그중 하나다. 태양 표면의 온도가 6000도 정도인 것을 생각해 보면 코로나는 엄청나게 뜨거운 태양의 플라스마 대기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이 밝게 빛나는 동안에는 밀도가 낮은 코로나를 볼 수 없다. 일식이 일어나 태양 빛이 가려지면 코로나는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다. 천문학자들에게 일식은 코로나를 연구할 절호의 기회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몇 분 동안은 그 지역에 햇빛이 전혀 닿지 않기 때문에 낮이지만 밤하늘처럼 온 하늘이 깜깜해진다. 당연히 낮에는 볼 수 없던 별들이 보인다. 파란 하늘 뒤편에 숨었던 별들이 밤하늘에서처럼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은 일식이 일어난 낮하늘의 별들을 관측해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어떤 물체가 놓여 있으면 그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지는 현상이 일어나야만 한다. 일식이 일어나면 그 주변의 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에딩턴은 일식이 일어나는 순간에 태양 주위의 별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일식이 일어나기 6개월 전에는 일식이 일어날 때 태양 주위에 보이는 별들이 밤하늘에 떠 있었을 것이다. 에딩턴은 미리 그때 별들의 사진도 찍어놓았다. 6개월 전 밤하늘의 별 사진과 일식이 일어나던 때의 별 사진의 차이는 태양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태양이라는 물체가 존재한 낮하늘의 경우 태양 주변 공간이 휘어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태양보다 더 먼 곳에서 지구를 향해서 오는 별빛들이 태양 때문에 휘어진 시공간을 이동해야만 할 것이다. 편평한 시공간을 직선으로 이동하는 것과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차이가 날 것이다. 지구에서 보기에 별의 위치가 달라져 보일 것이다. 태양의 질량을 알면 그 주위의 시공간이 얼마나 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주변의 별빛이 태양이 없었을 경우와 얼마나 다른 위치에서 보이는지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에딩턴은 대중들 앞에서 마치 쇼를 하듯 자신이 찍은 두 장의 사진을 비교하는 작업을 라이브로 진행했다. 결과는 이론적으로 예측한 그대로였다. 별들의 위치가 변해 있었던 것이다. 시공간이 태양 때문이 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 사건으로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은 뉴턴역학을 무너뜨리고 중력에 대한 표준이론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은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었다.

달이 태양을 가릴 때
‘코로나’를 볼 수 있다
개기일식 때 뜨는 낮별
일반상대성이론 증명했다
어두울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별은 잘 보이지만 별이 동반한
외계행성 관측은 쉽지 않다
행성이 별빛을 잠깐 가릴 찰나
케플러망원경에 행성을 담는
천문학자들의 ‘복면가왕전’

2009년 미국 항공우주국이 발사한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태양계 밖의 외계행성을 찾고 있다. 생명체 거주가능 영역이라고 불리는 ‘골디락스 행성’을 찾는 게 주요임무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2009년 미국 항공우주국이 발사한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태양계 밖의 외계행성을 찾고 있다. 생명체 거주가능 영역이라고 불리는 ‘골디락스 행성’을 찾는 게 주요임무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식현상 때 외계행성 관측

가려서 드러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태양계처럼 별과 행성으로 이뤄진 시스템을 행성계 또는 항성계라고 부른다. 태양계 이외의 행성계나 항성계에 속한 행성을 외계행성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확정된 외계행성의 수는 2000개에 이른다. 확정되기를 기다리는 외계행성의 수는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불과 20년 동안 이룬 성과다. 외계행성은 별에 비해 아주 작고 별의 빛을 반사해서 존재를 드러내고 있어 아주 어둡다. 이런 외계행성을 발견하는 관측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최근에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 가려서 드러나는 ‘식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외계행성 탐색은 2009년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발사되면서 본격화됐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은하수가 지나가는 백조자리 근처의 하늘을 고정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많은 별들을 동시에 반복 관측을 해서 외계행성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어느 행성이 별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가 우리가 보는 방향에서 별 앞을 지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일식 때 태양과 지구 사이에 달이 지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시에 많은 별들의 밝기를 관측하고 있는데 행성이 별 앞을 통과하기 시작한 어느 별의 밝기는 아주 작은 양이지만 어두워질 것이다. 식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행성이 별 앞을 다 지나고 나면 그 별은 원래의 밝기로 회복될 것이다. 또 다른 행성이 지나가면 또 다른 정도의 밝기 변화를 겪을 것이다. 다른 별에서도 이런 현상이 반복해서 일어날 것이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이런 식현상을 관측해서 외계행성의 존재를 찾아내는 임무를 갖고 있다. 행성이 별 앞을 지나갈 때 행성의 크기만큼 별이 가려질 것이다. 그만큼 별이 어두워질 것이다. 별이 어두워진 정도를 통해 행성의 크기를 추론해 볼 수 있다. 행성이 별 앞을 통과한 시간을 측정해 공전 주기를 알아낼 수도 있다. 이런 정보들을 종합해 행성의 질량도 추정할 수 있다. 식현상을 이용해 외계행성의 존재뿐 아니라 물리적인 특성까지도 알아내는 것이다. 심지어 외계행성 주위를 돌고 있는 외계위성의 존재도 이런 방식으로 탐색한다.

외계행성의 모습을 직접 사진으로 찍으려는 시도도 있다. 주로 식현상을 이용하거나 다른 방법을 통해 외계행성의 존재를 드러내고 특성을 탐구하고 있지만 가장 직관적이고 명확한 방법은 직접 외계행성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다. 문제는 별은 너무 밝고 행성은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더구나 별들은 엄청 멀리 떨어져 있다. 헤드라이트 옆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있는데 그 반딧불이를 사진으로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헤드라이트를 끄면 반딧불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별을 가릴 것이냐 하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직접 외계행성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별을 효과적으로 가리는 별의별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 결과 현재 20개 정도의 외계행성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해를 달리해가며 찍은 외계행성의 사진을 보면 공전에 따라 그 위치가 변한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별을 가리는 기술을 더 발전시켜야 하는 난제에 부딪혀 있지만 그 결과는 달콤할 것이다.

렌즈가 되는 은하단

멀리 떨어진 은하의 모습도 비슷한 방법으로 알 수 있다. 아주 멀리 떨어진 은하단이 있는데 마침 그 은하단과 지구 사이에 또 다른 은하단이 있다고 해보자. 더 멀리 있는 은하단의 모습은 우리와 그 은하단 사이에 있는 또 다른 은하단 때문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사이에 낀 은하단에 의해 주변 시공간이 휘어질 것이고 더 멀리 있는 은하단의 빛은 휘어진 시공간을 통해 우리에게 다른 위치에서 보일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사이에 낀 은하단은 단지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멀리 있는 은하단으로부터 오는 빛을 더 밝게 증폭시키는 작용도 한다. 그래서 사이에 낀 은하단이 마치 렌즈처럼 작용했다는 의미에서 이런 현상을 ‘중력렌즈’라고 부른다. 너무 멀고 어두워 보이지 않았을 은하단이 사이에 낀 다른 은하단에 가려지는 우연으로 인해 우리에게 관측되는 것이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실제로 이런 은하단을 여럿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맞는다는 것을 다시 증명한 셈이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숨어 있는 진리를 찾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복면가왕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무대는 우주, 참가자는 천체들이다. 어떤 것들은 가리면 보인다. 특히 존재를 드러내기 쉽지 않은 천체 현상들은 잘 가리면 가릴수록 그 존재를 더 잘 드러낸다. 살다 보면 너무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가끔씩은 그런 것들을 가려보면 어떨까. 그것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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