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미래&과학 과학

시간 역주행 ‘썸? 뭐? 타임’이 햇빛 아껴준다고?

등록 2015-12-13 20:37수정 2015-12-14 10:23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한 주택가에서 초등학생들이 9월말인데도 일광절약시간제로 어둑어둑한 시간에 통학버스에 오르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한 주택가에서 초등학생들이 9월말인데도 일광절약시간제로 어둑어둑한 시간에 통학버스에 오르고 있다.
서머타임제 할까, 말까
미국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1784년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로 파리에 머물 때 ‘절약 프로젝트’라는 글에서 시간을 앞당겨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들면 양초를 아낄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양초제조업 집안에서 태어났고, 근검절약을 일생의 신조로 삼았던 인물인데다, 파리(북위 48도)가 워싱턴디시(북위 38도)보다 훨씬 북쪽이어서 여름 낮의 길이가 더 길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엉뚱하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1784년 처음
양초값 아낄 수 있다고 제안

229개 국가·속령 중 83개국 실시
실제 전력 절감 여부는 엇갈려
출근 체증·개별냉방 증가 우려도

표준자오선 덕, 한국 이미 30분 절약
평균 기상시각 5년새 20분 당겨져
시작 시점 너무 늦춰져 비효율

그의 생각은 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독일에 의해 전쟁자원을 아끼기 위한 ‘일광절약시간제’(DST·서머타임제)로 처음 제도화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발간한 <법정 시각 2015>를 보면, 229개 국가 및 속령 가운데 서머타임제를 도입하고 있는 곳은 전체의 36.2%인 83개국이다. 최근 국내 한 언론이 “내년에 내수 활성화 차원에서 서머타임제를 도입할 것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해 이슈가 됐다. 기획재정부가 곧바로 “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해 논란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서머타임제를 실시한 햇수가 12년이나 되고 최근에도 여러 차례 재도입을 검토한 적이 있어 서머타임제에 대한 관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듯싶다.

서머타임 시행 국가는 주로 중위도 지역에 분포해 있다. 열에 아홉은 남북회귀선(23.5도)에서 극권(66.5도) 사이에 있는 국가들이다. 우리나라는 북위 33~38도에 걸쳐 있다. 하지(6월21일 또는 22일) 무렵 낮과 밤의 비율이 파리는 16 대 10인 데 비해 서울은 14 대 10 정도다. 서머타임제는 낮이 긴 기간에 시곗바늘을 1시간 앞당겨 해가 있는 동안 활동시간을 늘려 밤 시간에 드는 조명을 절약하자는 제도다. 가정에서 쓰는 전기의 4분의 1은 조명, 텔레비전 시청, 음악 감상 등 주로 야간에 쓰인다.

그러나 실제 서머타임제가 적용됐을 때 전력 사용 절감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나라의 연구가 엇갈린 결과를 내놓고 있다. 미국 교통부(DOT)는 1966~1975년 10년 동안 전기에너지 소비를 분석한 결과 서머타임제가 시작하는 시기인 3~4월에 에너지 절감이 1%, 끝나는 시기인 10~11월에 0.75% 절감됐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미국 표준국(NBS)이 교통부 보고서를 기술평가한 결과 서머타임제에 의한 에너지 절감에 대한 신빙성은 없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09년 서머타임제를 도입할 경우 전기 절감량이 연간 494~581GWh(2008년 전력소비 기준 38만8천GWh의 0.13~0.15%)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해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센터 책임연구원은 “유럽 국가들이 처음 서머타임제를 도입하는 명분으로 에너지 절감을 내세웠지만 여름철과 겨울철의 낮 길이가 크게 차이 나는 지역이어서 햇빛에 대한 문화적 욕구가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국민 모두 생활이 1시간 앞당겨지면 해 뜨는 시각을 기준으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겹쳐 출근 교통체증이 증대하고, 일찍 퇴근하면 자동차나 주택 등 상대적으로 고비용인 개별냉방을 켜는 시간이 늘어 에너지 소모가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연간 교통혼잡 비용은 33조4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머타임제를 도입하면 효율이 있을까? 한국천문연구원 연구팀은 2009년 이에 대한 연구를 해 서머타임 시작일은 5월 두번째 일요일, 종료일은 9월 세번째 일요일을 제안했다. 논리는 이렇다. 연중 일출 시각과 한국인 기상 시각의 평균 차이는 24분이다. 서머타임제 실시기간 동안 일출 시각과 기상 시각 사이에는 적어도 1시간24분 이상의 간격이 필요하다. 연구팀이 적용한 2004년 한국인의 연평균 기상 시각은 오전 6시53분이었다. 이 시각보다 1시간24분 전인 오전 5시30분이 일출 시각인 때는 5월8일께다. 대략 5월 두번째 일요일이 된다. 연구팀은 기존 서머타임 시행국들이 시작일과 종료일을 하지를 중심으로 대칭으로 운영하지 않고, 종료일을 대칭이 되는 날보다 7주일 정도 늦게 설정한 것을 고려해 종료일로 9월 세번째 일요일을 제안했다.

그러나 연구팀이 기준으로 한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상 시각이 2014년에는 오전 6시34분으로 19분 당겨졌다. 이를 대입해 일출 시각을 이전의 오전 5시30분에서 오전 5시10분으로 당겨 계산했을 때, 시작일은 6월21일께, 곧 하지 무렵이 된다. 이 경우 종료일도 8월 하순으로 당겨야 해 사실상 제도의 효율성이 없다. 이호성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가 표준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표준자오선(동경 135도)은 국토 중앙에서 동쪽으로 한참 치우쳐 있어 이미 30분의 일광절약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영숙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우주측지그룹 책임연구원은 “서머타임제를 도입하면 사주명리학 문화가 뿌리깊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0시30분에 사망했을 때 일광절약시를 기준으로 사망 날짜를 잡을지, 한국표준시를 기준으로 잡을지 갈등이 생기는 이른바 ‘시간 마찰’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한 삭망월의 주기로 30일 큰달과 29일 작은달을 정하는 태음태양력과의 모순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국표준시로 오후 11시 이후 1시간 안에 합삭 시각이 있을 때 일광절약시로 적용하면 음력 초하루 날짜가 1일 뒤로 밀려 음력 한 달이 28일 또는 31일이 될 수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미래&과학 많이 보는 기사

과학자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얼마나 믿을까? 1.

과학자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얼마나 믿을까?

영양 가득 ‘이븐’하게…과학이 찾아낸 제4의 ‘달걀 삶는 법’ 2.

영양 가득 ‘이븐’하게…과학이 찾아낸 제4의 ‘달걀 삶는 법’

온 우주 102개 색깔로 ‘3차원 지도’ 만든다…외계생명체 규명 기대 3.

온 우주 102개 색깔로 ‘3차원 지도’ 만든다…외계생명체 규명 기대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2.2%로 상승…지구 방위 논의 시작되나 4.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2.2%로 상승…지구 방위 논의 시작되나

시금치·양파·고추…흰머리 덜 나게 해주는 루테올린의 발견 5.

시금치·양파·고추…흰머리 덜 나게 해주는 루테올린의 발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