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돌 월간 ‘과학동아’ 김두희 대표…“독자와 거리 좁혀 위기 돌파”
김두희(58·사진) 동아사이언스 대표의 이력서는 단출하다. 학력란에는 경기고와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경력란에는 <과학동아>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대표이사 단 네 줄이다. 과학동아는 1986년 1월 미국 대중과학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지향하며 창간됐다. 30돌이 눈 앞이다. 당시 막내기자로 입사한 김 대표의 삶은 과학동아의 역정과 고스란히 겹친다.
국내에서 월간 과학잡지로서 독보적 자리를 유지해온 과학동아도 종이 미디어가 겪고 있는 위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30년 동안 쌓아놓은 콘텐츠를 무료로 공개하고, 모션 그래픽으로 영상 서비스를 제공해 ‘손님’ 모으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용산 동아사이언스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의 별명은 ‘36억원짜리 기자’다. 1980년대 중반 한국경제는 성장기였고 문화주의를 사시로 내건 동아일보사는 과학동아와 함께 <음악동아>, <월간멋>(패션잡지)을 1년 사이에 잇따라 창간했다. 10년 동안 수익을 따지지 않고 지원이 이뤄졌다. 하지만 사실 내부적으로는 경쟁구조였고, 과학동아만이 살아남았다. 그동안 투자금이 36억원이었다. 창간 기자들 가운데 남은 이도 김 대표밖에 없었다.
“고도성장기여서 초전도·핵융합·신소재 등 첨단 과학 이슈들에 대한 정보 욕구가 있었습니다. 마침 다가온 핼리혜성으로 창간호 표지를 꾸미자 많은 지식인들이 처음 아는 일이라며 관심을 보여왔어요.”
창간 초기만 해도 컴퓨터 바이러스가 실제 생물 바이러스인지 아닌지조차 몰랐던 시절이었다. 김 대표는 “제가 국내에 처음으로 컴퓨터 바이러스 소개 기사를 썼는데, 컴퓨터 회사를 찾아가 물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가 핵융합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이경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무차장을 1박2일 동안 취재해 100장짜리 기사를 잡지에 싣자 다음날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김 대표를 찾았다. “정 전 장관의 부인이 ‘과학동아 기사를 보고나니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처음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하더군요.” 정 전 장관은 한국인 최초로 핵융합을 연구한 인물이다.
김 대표가 과학 전공자여서 과학잡지 기자가 된 건 아니다. 애초 사범대를 가려 했는데 집에서 반대해 공대로 방향을 틀었다. 1970년대말 학생운동을 하다 전공 공부를 거의 못했다. “이공계 출신이니 과학동아에 가면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선배의 말을 듣고 지원했어요. 교육쪽에 관심이 많았고 남한테 설명을 해주는 일은 나름 소질이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잡지를 통해 ‘글 쓰는 과학자’들을 발굴한 것도 과학 대중화의 또다른 길이었다. 당시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미국 유학생활을 갓 마치고 귀국했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등이 과학동아를 통해 ‘등단’했다. 숱한 과학 전문기자들의 ‘사관학교’ 구실을 하기도 했다. 현직 국내 신문·방송 과학담당 기자 가운데 과학동아 출신들이 꽤 있다. 지금도 동아사이언스 직원 107명 가운데 40명이 과학기자이다.
2000년 위기가 왔다. 회사에서 1년을 시한으로 당시 발간하는 잡지 중 한개만 살리겠다는 선언을 했다. 김 대표는 과학동아와 동아일보의 ‘과학섹션’ 외주권만 갖고 독립을 결행했다. 그는 “스스로 먹고 살지 않으면 공공재라도 발전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다행히 과학동아는 광고수입보다 판매수익에 기반해 경기변동에 덜 휘둘렸다. 만화 위주의 <어린이과학동아> <수학동아> 등을 내어놓자 조금씩 성장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한경쟁의 언론시장에서 제자리 지키기도 버거웠다. 그는 “잇딴 연계 잡지 창간으로 종합과학미디어 면모를 갖추는 데는 성공한 듯했지만 미디어사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보였다. 과학교육, 교구개발, 과학전시 등 다양한 과학 교육·문화사업으로 한계를 넘으려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교구전문 쇼핑몰을 운영하고 영재교육원을 개원하는 등 사업의 다변화는 제법 성장동력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2012년께 또한번의 도전이 시작됐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인쇄 잡지의 성장세에 타격으로 다가왔다. 월간지의 주요 고객인 학생수의 감소도 위기 요인의 하나다. 김 대표는 “품질 높은 콘텐츠로 극복하려 했지만 잡지 판매의 정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때였다”고 말했다. 우선적으로 현재 사무실로 이전해 공간을 넓혀 필자와 독자들이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필자와의 토크콘서트인 과학동아 카페, 대형 과학강연회인 사이언스 바캉스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정보와 함께 신선한 경험을 제공했다. 천문대도 만들었다. “도심 한복판에 천문대가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도 맑은 날이면 목성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돌아보며 자신이 미약하면서도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참가자들은 만족합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참가했는데 요즘엔 가족 단위 방문객이 늘어나고 있어요.” 독자와의 ‘스킨십’은 잡지 판매부수의 신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과학동아 12월호는 지령 360호다. 그동안 발행부수만 1300만부, 한줄로 쌓으면 높이가 에베레스트산의 12배에 이른다. 다른 인쇄미디어와 마찬가지로 과학동아 앞에 놓인 허들은 이보다 높을지 모른다. 여기에 도전하는 김 대표의 힘줄도 팽팽해졌다. “내년에는 그동안 발간해온 과학동아를 잡지 편집 그대로 모바일과 컴퓨터에서 볼 수 있는 ‘디(D) 라이브러리’를 오픈할 예정입니다. 또 30년 동안 지켜온 잡지 판형도 바꾸려 준비중입니다. 2년 전에 시작한 모바일 매거진을 확대 발전시켜 더 많은 성인 독자를 모을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는 “과거 고도성장의 도구로 인식되던 과학기술이 지금은 고도성장의 허점을 메우는, 국민 행복을 추구하는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민주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의 강점은 집단지성이다. 과학기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만들어내는 민주적인 콘텐츠는 종이 미디어의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사진 <동아사이언스> 제공
김두희 대표. 사진 동아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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