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크리스퍼 기법’을 적용한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이언스 제공
‘사이언스’ 획기적 연구성과·‘네이처’ 뉴스인물 1위 꼽아
올해 과학기술계 최대 화두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꼽혔다.
세계 양대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17일(현지시각) 각각 ‘올해의 10대 획기적 과학 연구 성과’와 ‘과학계 뉴스인물 10명’을 발표하면서 1순위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와 크리스퍼로 인간 게놈 편집 실험을 해 논란을 일으킨 준쥬황 중국 중산대학 연구원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크리스퍼라는 아르엔에이(RNA)가 표적 유전자를 찾아가면 그곳에서 ‘카스9’라는 효소가 디엔에이 염기서열 부위를 절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존 유전자 변형 기술보다 아주 쉽게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어 ‘제3세대 유전자 가위’로 불리며 최근 생명과학 연구실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준쥬황 등 중산대 연구팀은 올해 초 인공 수정란의 빈혈 유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꿔치기했다고 발표해 일부 과학자가 ‘크리스퍼 연구 모라토리엄(중단)’ 선언을 촉구하는 등 논쟁을 일으켰다.
지난 1~3일 미국과학아카데미와 영국 로열소사이어티, 중국과학아카데미 등이 주관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인간유전자교정 국제정상회의는 “유전자가 교정된 세포가 임신에 사용돼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국가는 2016년말까지 공동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이 연구 분야에서 상당히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진수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카스9(Cas9) 디엔에이가 아닌 단백질을 직접 이용하는 방법을 우리 연구팀이 제안해 현재 거의 국제표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회에서 개정된 생명윤리법이 여전히 유전자 교정 연구를 암·에이즈 등 유전병이면서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거나 생명에 지장이 있을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는 점은 이 분야 연구 영역을 폭넓게 허용하는 국제 추세와 맞지 않는다 ”고 주장했다.
다음은 <사이언스>가 뽑은 10대 과학 연구 성과와 <네이처> 편집진이 선정한 과학계 10대 뉴스인물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 <사이언스> 10대 획기적 과학 연구 성과
1.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2. 세레스와 명왕성 탐사
지난 3월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무인탐사선 ‘던’이 왜소행성(행성과 소행성의 중간단계) 세레스의 궤도에 진입했다. 던은 지구를 떠난 지 7년8개월 만에 48억㎞ 떨어진 세레스에 도착해 16개월 동안 세레스를 탐사할 예정이다. 나사는 또 지난 7월14일 무인탐사선 ‘뉴호라이즌’이 명왕성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뉴호라이즌은 9년여 동안 56억㎞를 날아 명왕성에서 1만2500㎞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했다.
3. 미국 인디언의 조상 케네딕트맨
지난 1996년 미국 워싱턴주 케네딕트의 콜럼비아강변에서 발견된 케네딕트맨 뼈의 디엔에이를 분석한 결과 현존 미국 인디언의 조상은 1만5천년 전에 베링해(당시는 육지로 연결)로 건너온 아시안인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4. 심리학의 재현성
270명의 국제 공동연구진이 2008년 이후 발표된 심리학 분야 논문 100건의 데이터를 이용해 연구를 재현한 결과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정도만 성공했다고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5. 300만년 전 새 인류 호모 날레디 발견
국제 공동연구진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동굴에서 300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새 인류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화석에는 남아공 세소토어로 ‘별’이라는 뜻의 ‘호모 날레디’(Homo Naledi)라는 이름이 붙었다.
6. 맨틀지도 만들기
미국 연구팀이 지진 데이터를 분석해 움직이는 맨틀 구조의 지도 작성에 나섰다. 이미 28개의 맨틀 융기를 발견했으며, 맨틀 지도를 깊이 3000㎞까지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맨틀 지도는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지각판의 정확한 위치를 보여줄 수 있고 지표로 올라와 화산 활동을 일으킬 수 있는 마그마의 위치도 밝힐 수 있다.
7. 에볼라 백신
세계를 전염병 공포에 몰아넣었던 에볼라의 백신 개발에 희망이 생겼다. 캐나다 국립보건원은 자신들이 개발해 제약회사 머크가 진행한 에볼라 백신 임상시험에서 발병을 75~100% 예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랜싯> 7월31일치에 보고했다.
8. 이스트로 만든 진통제
미국 생명과학자들이 이스트가 설탕을 진통제로 만들어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들은 양귀비, 황련, 박테리아와 심지어 쥐 등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합성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모르핀’을 제작했다.
9. 뇌와 면역체계의 연결
미국 신경과학자들이 뇌와 면역체계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그동안 림프계는 몸의 모든 기관계와 연결돼 있지만 두개골 아래쪽에서 끝나는 것으로 생각돼왔다. 과학자들은 실험쥐 세포막에서 림프관을 발견했으며, 인체도 같은 구조일 것으로 추정했다.
10. 양자 불가사의 현상 발견
네덜란드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양자이론 가운데 기이한 특성인 ‘양자 얽힘’ 현상이 실재 존재한다는 실험에 성공했다. 양자 얽힘은 멀리 떨어진 두 개체가 즉각적으로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으로, 1964년 아일랜드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이 발표했다. 이는 입자가 오직 즉각적인 주위 환경에 의해서만 직접 영향을 받는다는 표준 물리학의 ‘국소성의 원칙’에 위배돼, 아인슈타인도 ‘유령 같은 원격작용’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네덜란드 델프트대학 안 1.3㎞ 떨어진 거리에 두 개의 다이아몬드를 배치하고 각각의 다이아몬드 전자에 자기적 속성인 ‘스핀’을 갖도록 했다. 이후 마이크로파 펄스와 레이저 에너지가 ‘스핀’을 측정한 결과 1.3㎞ 사이의 두 개의 전자가 얽힌 결과가 도출됐다.
□ <네이처> 과학계 뉴스인물 10명
1. 준쥬황(Junjiu Huang)
준쥬황 등 중국 중산대학(Sun Yat-sen University)의 연구진은 지난 4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인간 게놈 편집을 시행한 논문을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연구팀은 인간 수정란에서 중증빈혈 질환과 관련한 유전자를 게놈 편집해 정상 유전자로 바꿔치기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투고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들의 연구로 생명과학계 일각에서는 ‘크리스퍼’ 연구의 모라토리엄(중단) 선언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과학아카데미와 영국 로열소사이어티, 중국과학아카데미 등이 주관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인간유전자교정 국제정상회의는 “유전자가 교정된 세포가 임신에 사용돼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성명(http://www8.nationalacademies.org/onpinews/newsitem.aspx?RecordID=12032015a)을 발표했다. 성명은 그러나 기초과학연구를 위한 인간배아 및 생식세포 교정과 체세포의 유전자 교정 임상을 금지하는 내용은 담지 않았다.
2. 크리스티나 피게레스(Christiana Figueres)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195개국이 참가한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려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2도 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지구 온도를 낮추되,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네이처는 크리스티나 피게레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이 당사국총회의 개최와 합의문 도출에 5년 동안 기여해왔다고 평가했다.
3. 앨런 스턴(Alan Stern)
지난 7월14일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무인탐사선 뉴호라이즌이 명왕성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나사 책임연구원 앨런 스턴은 “공상 과학처럼 들리겠지만 미국의 탐사선이 명왕성 근처를 날 것이고, 역사를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명왕성은 애초 추정보다 약간 더 크고 밀도는 낮으며 내부에 얼음이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됐다. 뉴호라이즌은 9년여 동안 56억7천만㎞를 날아 이날 시속 4만9900㎞의 속도로 명왕성에서 1만2500㎞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했다.
4. 제난 바오(Zhenan Bao)
미국 스탠퍼드대 화학공학과 제난 바오 교수는 로봇 손에 사람 같은 촉감을 전해주는 전자피부를 개발해 지난 10월16일치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했다.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센서와 메모리 등으로 전자회로를 얇게 만들어 장애인용 로봇 팔의 손가락 끝에 피부처럼 붙여 촉감을 느끼게 했다.
5. 미카일 에레메츠(Mikhail Eremets)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연구소 미카일 에레메츠 박사는 “영하 70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관측했다”고 <네이처> 8월17일치에 발표했다. 금속에서 전기저항이 없이 전류가 흐르는 초전도 현상은 1911년 절대온도(K) 0도 근처의 극저온 환경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상온 근처에서 작동하는 물질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왔다. 에레메츠 박사 연구팀은 대기압보다 150만배 강한 압력으로 황화수소를 압축해 초전도체 금속을 만들었다.
6.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Ali Akbar Salehi)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기구 대표는 지난 7월15일 이란 핵협상의 역사적 타결을 이끈 주역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살레히는 이란 외무장관을 지냈으며, 13년 동안 끌어온 이란 핵협상에서 6개국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네이처는 평가했다.
7. 크리스티나 스몰케(Christina Smolke)
미국 스탠퍼드대 크리스티나 스몰케 교수는 지난 8월13일 <사이언스>에 식물, 포유동물, 세균, 이스트 등 6개 생물 23개 유전자를 섞어 진통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스몰케는 최근 합성생물학 분야에서 벌어져온 모르핀 합성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로 꼽혔다.
8. 데이비드 라이시(David Reich)
미국 하버드대 유전학자인 데이비드 라이시 교수 연구팀은 7000년~8500년 전 터키 지역에서 유입된 무리가 유럽에 농업을 처음으로 전파했음을 디엔에이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고 <네이처> 11월23일치에 논문을 발표했다. 라이시는 서유럽과 터키 지역에서 살았던 고대인 273명 유골의 디엔에이지도를 작성해 분석한 결과 2000년 뒤인 청동기시대에 또다른 무리가 유럽에 들어오면서 유럽인들의 신체가 커지는 등 디엔에이 상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연구결과도 내놓았다.
9. 브라이언 노섹(Brian Nosek)
브라이언 노섹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2008년 이후 발표된 심리학분야 논문 100건의 데이터를 이용해 연구를 재현한 결과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7% 정도만 논문에 보고된 것과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지난 8월28일치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270여명으로 구성된 공동연구진은 3대 유명 심리학 저널에 게재된 논문 100건을 선정해 2011년 1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이들 연구의 재현을 시도했다.
10. 조안 슈멜츠(Joan Schmelz)
지난 10월14일 유력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제프리 마시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가 교내 성희롱 문제로 사직했다. 대학은 학생 4명의 문제제기로 시작한 조사를 6개월 동안 진행하고도 단순히 마시에게 경고조처만 했다가, 10월9일 소셜미디어 <버즈피드>에 기사가 실리고 학생과 교수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마시에게 권고사직하도록 했다. 여성 우주인인 조안 슈멜츠 미국천문학회 여성우주인지위위원회 위원장은 마시 스캔들의 처리 과정에 깊이 관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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