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19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카시니 탐사선이 태양을 가린 토성을 촬영한 이미지. 지구의 반대편, 토성의 뒤쪽에서 태양의 역광을 이용해 찍은 사진엔 7개의 위성과 안쪽 고리 등의 모습이 세밀하게 담겼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토요판] 별 고리와 위성
토성에 딸린 유독 크고 아름다운 고리는 대부분이 먼지와 얼음으로 이뤄져 있다. 거대한 가스 위성에 딸린 먼지와 얼음의 고리는 위성이 부서져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고리에선 다시 위성이 만들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위성이 부서져 고리가 되고 고리가 다시 위성이 되는 순환은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연상케 한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인 연말연시가 다가온다. 올해 마지막 별 기사는 태양계 안에서 소외받지만 매혹적인 천체, 고리와 위성에 대한 이야기다.
400년 전 처음 발견된 토성 고리
바깥고리는 불과 6년 전 찾아
토성 반지름 270배 넓이지만
질량은 토성의 0.000005% 불과
4천만년 뒤 화성에도 생길 듯 소외받는 또다른 천체 위성
확인된 행성계 위성만 173개
상당수는 ‘포획된 양자’들
거꾸로 돌거나 찌그러진 모양도
이름 없는 위성계의 장삼이사들 태양계에 주인공을 꼽으라면 어떤 천체를 꼽을 수 있을까. 태양계 전체 질량의 거의 대부분(99.86%)을 차지하며 절대 제왕의 자리를 뽐내는 태양일까. 태양이 되지 못한 채 그 주위를 맴돌게 된 운명의 행성일까. 하지만 지구인들의 사회에서 상위 1% 부자가 상당량의 부를 독차지한다고 해서 세상이 그들의 것이 아니듯, 태양계도 태양이나 행성만의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수적으로는 월등히 많은 작은 천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스러기처럼 남은 작은 부를 잘게 쪼개어 나눠 가지는 것과 비슷하게, 태양계의 소천체들도 우주의 시각에서는 가루같이 작은 크기로 나뉜 채 태양계 구석구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고로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연시에는 소외된 존재에 평소보다 좀 더 관심이 가는 법. 고리와 위성 등 태양계의 부속물 취급을 받아왔던 소천체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먼저 살펴볼 존재는 고리다. 처음으로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측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약 400년 전, 밤하늘에서 유독 밝은 천체인 토성을 관측하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천체가 뭔가 귀처럼 생긴 것을 달고 있어서다. 갈릴레이는 그 정체가 행성의 적도면을 둘러싼 얇은 레코드판 형태의 고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그저 토성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덩어리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그게 고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반세기 가까이 지난 1655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좀 더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통해 관찰한 다음이었다. 본체보다 거대한 장식, 고리 고리는 태양계의 비교적 바깥쪽에 위치한 거대한 가스 행성들(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다른 행성에서는 매우 가늘고 희미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오직 토성만이 고리의 대명사로 불린다. 유독 크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토성의 고리는 눈에 잘 보이는 선명한 부분과 희미한 부분으로 나뉘는데, 눈에 잘 보이는 조밀하고 두꺼운 부분만 해도 넓이가 거의 토성 자체의 반지름과 비슷할 정도로 넓다. 지구 6개를, 마치 100m 달리기 선수들처럼 나란히 늘어세울 수 있는 넓이다. 이 부분의 고리는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F, A, B, C, D 고리로 불린다. 가장 안쪽의 D 고리는 매우 어둡고 가장 바깥쪽의 F 고리는 매우 가늘다. 고리와 고리 사이 혹은 고리 내부에는 마치 고랑이라도 판 듯 끊어져 보이는 지점이 있다. 이곳은 고리를 이루는 재료가 희박한 곳으로 간극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커다란 간극만 해도 수십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것은 멀리서 눈에 보이는 대로만 관찰한 것으로, 토성 주위를 도는 탐사선이 촬영한 정밀한 관측자료를 분석하면 조금 다르다. 넓은 판처럼 보이는 고리도 알고 보면 매우 가는 여러개의 고리가 모인 것이며 따라서 그 사이에 놓인 미세한 간극은 수도 없이 많다. 고리 가운데 눈에 잘 안 보이는 희미한 부분은 보이는 부분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뿌옇고 희미한 고리는 비교적 최근인 2009년 발견됐다. 올해 6월 새롭게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고리는 토성 반지름의 약 270배 거리까지 넓게 퍼져 있다. 사람이 쓰는 밀짚모자(토성)와 챙(고리)으로 비유해 보면, 챙이 20m 이상 먼 곳까지 뻗어 있는 형국이다. 마치 몸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해 보이는 장식 뿔을 달고 살았던 멸종 동물 큰뿔사슴처럼, 토성은 자기 본체보다 더 큰 장식을 두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고리가 차지하는 질량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 토성 전체 질량의 0.00000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구성 성분은 위치마다 다른데, 가장 바깥쪽에 있는 고리는 먼지이고 눈에 잘 띄는 두껍고 아름다운 고리 부분은 90% 이상이 얼음덩어리다. 광활한 우주에 거대한 가스 행성이 떠 있고 그 주위를 차갑고 크기는 제각각인 얼음덩어리가 도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초현실주의적이다. 이 얼음덩어리의 크기는 특이한 수학적 규칙을 따른다. 올해 8월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얼음덩어리의 개수는 크기가 커짐에 따라 급격히 줄어드는 멱함수 분포를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대략 크기의 세제곱에 반비례했는데, 예를 들면 지름이 20㎝짜리 얼음의 수는 10㎝짜리 얼음 수의 8분의 1 수준이고, 30㎝짜리 얼음은 27분의 1 수준으로 존재한다. 고리 안 얼음의 세계에서도, 크기가 작은 존재는 개수는 많고 차지하는 질량은 작다. 고리는 사라질 수도 있다 고리가 생긴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위성이 부서져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행성에는 주위에 위성이 안전하게 궤도를 돌 수 있는 거리 한계가 있다. 그 한계보다 행성에 가까이 접근하는 위성은 행성(토성)의 중력 때문에 자체적인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찌그러지다 결국 부서지게 되는데, 먼 과거에 얼음이 풍부한 위성이 이런 방식으로 토성에 접근하다 부서져 고리를 이뤘으리라는 추정이다. 실제로 2010년 미국 사우스웨스트연구소 로빈 카눕 박사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얼음을 많이 지니고 있던 커다란 위성이 이 한계 거리(로슈 한계라고 부른다) 이내로 들어와 부서지면서 크고 두꺼운 얼음 고리가 생겼고, 이후 얼음이 점차 흩어져 지금의 얇고 넓은 고리가 됐다는 사실을 증명해 내기도 했다. 고리는 태양계 바깥쪽 목성형 행성의 전유물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지구나 지구 근처의 행성도 마음만 먹으면 고리를 가질 수 있다. 지난 11월 말 학술지 <네이처 지구과학>에 실린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연구팀의 논문을 보면, 영화 <마션>의 배경인 화성도 조만간 고리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화성에는 포보스와 데이모스라는 이름의 매우 작은 위성이 두 개 있다. 둘 다 반지름이 11㎞(포보스)와 6㎞(데이모스) 정도로 매우 아담한데(지구의 위성인 달의 반지름은 1737㎞다), 이 중 큰 위성인 포보스의 고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 머지않은 미래에 로슈 한계를 지나 부서질 것이 확실하다. 연구팀은 지금부터 약 2000만년 뒤부터 위성이 부서지며 물질을 흩뿌리기 시작해 4000만년 뒤에는 어엿한 고리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리는 짧게는 100만년 길게는 1억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추정했다. 고리가 영원히 유지되지 않는 이유는(1억년도 우주에서는 짧은 시간이다) 태양계 안쪽은 소천체에 가혹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태양에서 나오는 막대한 양의 물질 입자가 마치 선풍기 바람처럼 물질을 끊임없이 밀어내고, 거대한 중력은 고리처럼 작고 연약한 구조를 마구 헤집는다. 지구 역시 이 방식으로 고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할 수 있는데, 달은 행성(지구)에 비해 덩치가 유독 큰 특이한 위성이기 때문에, 아마 지구 가까이에 접근했다가는 대재앙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 고리는 위성이 부서진 ‘사체’지만, 일부 위성에는 삶의 터전이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토성에는 62개나 되는 많은 위성이 있는데, 그중 일부는 고리 안에서 토성 주위를 돈다. 희미한 바깥쪽 고리 내부를 도는 위성도 있고, 고리 중간의 간극을 마치 육상 트랙 돌듯 공전하는 작은 바위 형태의 위성도 있다. 아무리 작은 위성이라지만 중력이 있기 때문에, 이 경우 근처의 고리 가장자리가 쭈글쭈글 휘기도 하고 막대로 금을 그은 듯한 무늬가 생기기도 한다. 위성의 요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2013년 영국 연구팀은 탐사선 카시니호의 영상을 보다 A 고리의 바깥쪽 가장자리에서 고리가 쭈글쭈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했다. 뭔지 보이지는 않지만 고리를 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연구팀은 여기에서 물질이 뭉쳐 아기 위성이 태어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아직은 논쟁 중이다. 이미 존재했던 위성을 이제 발견했을 뿐이라는 반론이 있다. 각양각색 불규칙 위성들 위성은 곧잘 소외받는 또 다른 소천체다. 달을 제외하면 이름을 아는 위성이 손에 꼽을 정도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위성 이름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물론 할 말 없지만. 위성 역시 대가족이다. 국제천문연맹 등의 자료를 종합해 보면, 현재 확인된 행성계 위성만 173개다. 가장 많은 건 목성으로 67개이고 그다음이 62개인 토성이다. 위성 역시 행성에 딸린 그저 그런 부속물이 아니다. 하나하나 독특한 개성과 사연을 담은 천체다. 큰 건 행성인 수성보다 크고(목성 위성 가니메데와 토성 위성 타이탄), 대기와 기상 현상을 가진 것도 있다(타이탄). 출생의 비밀도 있는데, 위성 가운데 상당수(113개)는 태양계가 만들어질 때 같이 태어난 게 아니라, 나중에 행성에 포획된 ‘양자’들이다. 이들은 행성 주위를 지나다가 여러 이유로 행성의 중력에 이끌려 주위를 회전하게 됐고, 그 때문에 각기 다른 공전 궤도면을 각기 다른 거리에서 맴돌고 있다. 공전면이 비뚤어진 것, 완전히 누운 것, 까마득하게 먼 거리를 공전하는 것, 행성과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 등 각양각색이다. 이 때문에 한데 묶을 아무런 공통 규칙이 없어 보인다는 의미로 ‘불규칙 위성’이라고 불린다. 불규칙 위성은 2000년대 들어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들 중 가장 큰 것은 해왕성의 제1 위성 트리톤이다. 태양계 전체에서 일곱째로 큰 거대 위성인데(달보다 약간 작다) 이 역시 공전궤도가 기울어진데다 방향도 행성인 해왕성과 반대다. 부모와 다른 길을 가는 삐딱한 맏이의 느낌이랄까. 왜소행성인 명왕성처럼 태양계 외곽에 있다가 해왕성의 중력에 이끌린 것으로 추정된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달처럼 구형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는 예외적인 경우고, 나머지 대부분의 불규칙 위성은 크기가 작고 모양도 구형이 아닌 게 많다. 토성의 경우 62개의 위성 가운데 구형은 7개뿐이고 나머지는 찌그러진 감자 같은 모양이며 그중 상당수(49개)는 지름이 50㎞가 채 안 된다. 그중 대부분이 불규칙 위성이다. 이름이 없는 것도 9개다. 위성 세계의 장삼이사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바깥고리는 불과 6년 전 찾아
토성 반지름 270배 넓이지만
질량은 토성의 0.000005% 불과
4천만년 뒤 화성에도 생길 듯 소외받는 또다른 천체 위성
확인된 행성계 위성만 173개
상당수는 ‘포획된 양자’들
거꾸로 돌거나 찌그러진 모양도
이름 없는 위성계의 장삼이사들 태양계에 주인공을 꼽으라면 어떤 천체를 꼽을 수 있을까. 태양계 전체 질량의 거의 대부분(99.86%)을 차지하며 절대 제왕의 자리를 뽐내는 태양일까. 태양이 되지 못한 채 그 주위를 맴돌게 된 운명의 행성일까. 하지만 지구인들의 사회에서 상위 1% 부자가 상당량의 부를 독차지한다고 해서 세상이 그들의 것이 아니듯, 태양계도 태양이나 행성만의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수적으로는 월등히 많은 작은 천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스러기처럼 남은 작은 부를 잘게 쪼개어 나눠 가지는 것과 비슷하게, 태양계의 소천체들도 우주의 시각에서는 가루같이 작은 크기로 나뉜 채 태양계 구석구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고로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연시에는 소외된 존재에 평소보다 좀 더 관심이 가는 법. 고리와 위성 등 태양계의 부속물 취급을 받아왔던 소천체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먼저 살펴볼 존재는 고리다. 처음으로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측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약 400년 전, 밤하늘에서 유독 밝은 천체인 토성을 관측하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천체가 뭔가 귀처럼 생긴 것을 달고 있어서다. 갈릴레이는 그 정체가 행성의 적도면을 둘러싼 얇은 레코드판 형태의 고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그저 토성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덩어리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그게 고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반세기 가까이 지난 1655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좀 더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통해 관찰한 다음이었다. 본체보다 거대한 장식, 고리 고리는 태양계의 비교적 바깥쪽에 위치한 거대한 가스 행성들(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다른 행성에서는 매우 가늘고 희미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오직 토성만이 고리의 대명사로 불린다. 유독 크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토성의 고리는 눈에 잘 보이는 선명한 부분과 희미한 부분으로 나뉘는데, 눈에 잘 보이는 조밀하고 두꺼운 부분만 해도 넓이가 거의 토성 자체의 반지름과 비슷할 정도로 넓다. 지구 6개를, 마치 100m 달리기 선수들처럼 나란히 늘어세울 수 있는 넓이다. 이 부분의 고리는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F, A, B, C, D 고리로 불린다. 가장 안쪽의 D 고리는 매우 어둡고 가장 바깥쪽의 F 고리는 매우 가늘다. 고리와 고리 사이 혹은 고리 내부에는 마치 고랑이라도 판 듯 끊어져 보이는 지점이 있다. 이곳은 고리를 이루는 재료가 희박한 곳으로 간극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커다란 간극만 해도 수십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것은 멀리서 눈에 보이는 대로만 관찰한 것으로, 토성 주위를 도는 탐사선이 촬영한 정밀한 관측자료를 분석하면 조금 다르다. 넓은 판처럼 보이는 고리도 알고 보면 매우 가는 여러개의 고리가 모인 것이며 따라서 그 사이에 놓인 미세한 간극은 수도 없이 많다. 고리 가운데 눈에 잘 안 보이는 희미한 부분은 보이는 부분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뿌옇고 희미한 고리는 비교적 최근인 2009년 발견됐다. 올해 6월 새롭게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고리는 토성 반지름의 약 270배 거리까지 넓게 퍼져 있다. 사람이 쓰는 밀짚모자(토성)와 챙(고리)으로 비유해 보면, 챙이 20m 이상 먼 곳까지 뻗어 있는 형국이다. 마치 몸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해 보이는 장식 뿔을 달고 살았던 멸종 동물 큰뿔사슴처럼, 토성은 자기 본체보다 더 큰 장식을 두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고리가 차지하는 질량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 토성 전체 질량의 0.00000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구성 성분은 위치마다 다른데, 가장 바깥쪽에 있는 고리는 먼지이고 눈에 잘 띄는 두껍고 아름다운 고리 부분은 90% 이상이 얼음덩어리다. 광활한 우주에 거대한 가스 행성이 떠 있고 그 주위를 차갑고 크기는 제각각인 얼음덩어리가 도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초현실주의적이다. 이 얼음덩어리의 크기는 특이한 수학적 규칙을 따른다. 올해 8월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얼음덩어리의 개수는 크기가 커짐에 따라 급격히 줄어드는 멱함수 분포를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대략 크기의 세제곱에 반비례했는데, 예를 들면 지름이 20㎝짜리 얼음의 수는 10㎝짜리 얼음 수의 8분의 1 수준이고, 30㎝짜리 얼음은 27분의 1 수준으로 존재한다. 고리 안 얼음의 세계에서도, 크기가 작은 존재는 개수는 많고 차지하는 질량은 작다. 고리는 사라질 수도 있다 고리가 생긴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위성이 부서져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행성에는 주위에 위성이 안전하게 궤도를 돌 수 있는 거리 한계가 있다. 그 한계보다 행성에 가까이 접근하는 위성은 행성(토성)의 중력 때문에 자체적인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찌그러지다 결국 부서지게 되는데, 먼 과거에 얼음이 풍부한 위성이 이런 방식으로 토성에 접근하다 부서져 고리를 이뤘으리라는 추정이다. 실제로 2010년 미국 사우스웨스트연구소 로빈 카눕 박사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얼음을 많이 지니고 있던 커다란 위성이 이 한계 거리(로슈 한계라고 부른다) 이내로 들어와 부서지면서 크고 두꺼운 얼음 고리가 생겼고, 이후 얼음이 점차 흩어져 지금의 얇고 넓은 고리가 됐다는 사실을 증명해 내기도 했다. 고리는 태양계 바깥쪽 목성형 행성의 전유물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지구나 지구 근처의 행성도 마음만 먹으면 고리를 가질 수 있다. 지난 11월 말 학술지 <네이처 지구과학>에 실린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연구팀의 논문을 보면, 영화 <마션>의 배경인 화성도 조만간 고리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화성에는 포보스와 데이모스라는 이름의 매우 작은 위성이 두 개 있다. 둘 다 반지름이 11㎞(포보스)와 6㎞(데이모스) 정도로 매우 아담한데(지구의 위성인 달의 반지름은 1737㎞다), 이 중 큰 위성인 포보스의 고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 머지않은 미래에 로슈 한계를 지나 부서질 것이 확실하다. 연구팀은 지금부터 약 2000만년 뒤부터 위성이 부서지며 물질을 흩뿌리기 시작해 4000만년 뒤에는 어엿한 고리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리는 짧게는 100만년 길게는 1억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추정했다. 고리가 영원히 유지되지 않는 이유는(1억년도 우주에서는 짧은 시간이다) 태양계 안쪽은 소천체에 가혹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태양에서 나오는 막대한 양의 물질 입자가 마치 선풍기 바람처럼 물질을 끊임없이 밀어내고, 거대한 중력은 고리처럼 작고 연약한 구조를 마구 헤집는다. 지구 역시 이 방식으로 고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할 수 있는데, 달은 행성(지구)에 비해 덩치가 유독 큰 특이한 위성이기 때문에, 아마 지구 가까이에 접근했다가는 대재앙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 고리는 위성이 부서진 ‘사체’지만, 일부 위성에는 삶의 터전이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토성에는 62개나 되는 많은 위성이 있는데, 그중 일부는 고리 안에서 토성 주위를 돈다. 희미한 바깥쪽 고리 내부를 도는 위성도 있고, 고리 중간의 간극을 마치 육상 트랙 돌듯 공전하는 작은 바위 형태의 위성도 있다. 아무리 작은 위성이라지만 중력이 있기 때문에, 이 경우 근처의 고리 가장자리가 쭈글쭈글 휘기도 하고 막대로 금을 그은 듯한 무늬가 생기기도 한다. 위성의 요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2013년 영국 연구팀은 탐사선 카시니호의 영상을 보다 A 고리의 바깥쪽 가장자리에서 고리가 쭈글쭈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했다. 뭔지 보이지는 않지만 고리를 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연구팀은 여기에서 물질이 뭉쳐 아기 위성이 태어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아직은 논쟁 중이다. 이미 존재했던 위성을 이제 발견했을 뿐이라는 반론이 있다. 각양각색 불규칙 위성들 위성은 곧잘 소외받는 또 다른 소천체다. 달을 제외하면 이름을 아는 위성이 손에 꼽을 정도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위성 이름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물론 할 말 없지만. 위성 역시 대가족이다. 국제천문연맹 등의 자료를 종합해 보면, 현재 확인된 행성계 위성만 173개다. 가장 많은 건 목성으로 67개이고 그다음이 62개인 토성이다. 위성 역시 행성에 딸린 그저 그런 부속물이 아니다. 하나하나 독특한 개성과 사연을 담은 천체다. 큰 건 행성인 수성보다 크고(목성 위성 가니메데와 토성 위성 타이탄), 대기와 기상 현상을 가진 것도 있다(타이탄). 출생의 비밀도 있는데, 위성 가운데 상당수(113개)는 태양계가 만들어질 때 같이 태어난 게 아니라, 나중에 행성에 포획된 ‘양자’들이다. 이들은 행성 주위를 지나다가 여러 이유로 행성의 중력에 이끌려 주위를 회전하게 됐고, 그 때문에 각기 다른 공전 궤도면을 각기 다른 거리에서 맴돌고 있다. 공전면이 비뚤어진 것, 완전히 누운 것, 까마득하게 먼 거리를 공전하는 것, 행성과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 등 각양각색이다. 이 때문에 한데 묶을 아무런 공통 규칙이 없어 보인다는 의미로 ‘불규칙 위성’이라고 불린다. 불규칙 위성은 2000년대 들어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들 중 가장 큰 것은 해왕성의 제1 위성 트리톤이다. 태양계 전체에서 일곱째로 큰 거대 위성인데(달보다 약간 작다) 이 역시 공전궤도가 기울어진데다 방향도 행성인 해왕성과 반대다. 부모와 다른 길을 가는 삐딱한 맏이의 느낌이랄까. 왜소행성인 명왕성처럼 태양계 외곽에 있다가 해왕성의 중력에 이끌린 것으로 추정된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달처럼 구형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는 예외적인 경우고, 나머지 대부분의 불규칙 위성은 크기가 작고 모양도 구형이 아닌 게 많다. 토성의 경우 62개의 위성 가운데 구형은 7개뿐이고 나머지는 찌그러진 감자 같은 모양이며 그중 상당수(49개)는 지름이 50㎞가 채 안 된다. 그중 대부분이 불규칙 위성이다. 이름이 없는 것도 9개다. 위성 세계의 장삼이사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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