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공학연구원 산하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 주최로 건국대 산학협동관에서 지난해 7월30일 열린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이용은 지속가능 발전에 바람직한가?’ 주제의 전국 고등학생 토론회에서 학생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 제공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11월19일(현지시각) 유전자변형(GM) 연어의 식용 시판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대서양 연어에 태평양 치누크 연어의 유전자를 집어넣어 성장속도를 2배로 늘린 연어다. 2년 뒤에는 식탁 위에 오르리라 전망되고 있다.
유전자변형 동물이 식용으로 승인받기는 처음이어서 논란을 일으켰지만, 지난해 연어 이외에도 유전자변형 먹거리(GMO)의 식용 판매 승인은 줄을 이었다. 3월에는 미국 농무부(USDA)와 식품의약국이 유전자변형 감자의 재배와 식용 시판을 승인했다. 2월에는 미국과 캐나다가 잇따라 유전자변형 사과의 상업재배를 승인했다. 올해 말이면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초로 승인을 받은 유전자변형 파파야는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 8천여㏊가 재배돼 홍콩 등지로 팔려나가고 있다. 현재 800종 이상의 유전자변형 나무가 개발돼 시험중에 있으며 30여종은 상업화 마지막 단계인 안전성 심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말 동물도 첫 시판 승인
파파야는 이미 홍콩으로 팔려나가
국내에서도 벼·고추 안전성 심사
우리나라 GMO 수입 2위국
1082만톤으로 수입곡물 중 58.8%
대부분 식용유·물엿·간장 등 원료로
제조과정에서 단백질 파괴돼
유전자변형 원료 사용 여부 몰라
가공 뒤 불검출 땐 표기 안해도 돼
표시제 강화됐지만 실효 어려워
장호민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장은 “최근 형광섬유를 생산하는 누에, 방제용 유전자변형 모기 등 비식량 유전자변형 산업화 연구가 새로운 추세로 확산하고 있지만 유전자변형 식량은 여전히 주요 이슈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가뭄저항성 벼와 기능성 벼, 바이러스 저항성 고추, 제초제 저항성 잔디 등이 안전성 심사를 받고 있거나 심사 준비중이다.
우리 식탁에는 얼마나 많은 유전자변형 먹거리가 올라와 있을까? 우리나라는 유전자변형 농산물 수입 2위국이다. 1위는 일본이다. 우리나라 수입 곡물 가운데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56%에서 2014년에는 58.8%로 증가했다. 2014년 수입량은 1082만톤으로, 처음으로 1천톤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대두(콩)가 100만여톤, 옥수수가 970만여톤을 차지한다. 콩은 모두 식용이고, 옥수수 가운데 식용은 120만여톤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콩은 15만톤, 옥수수는 8만톤에 불과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식탁에 오르는 식량자급률은 콩이 35.9%, 옥수수 4.2%, 사료를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콩 11.3%, 옥수수 0.8%로 집계했다. 수치상으로 유전자변형 먹거리가 식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민들의 유전자변형 식품에 대한 수용성은 매우 낮다.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가 2014년 11월에 시민들의 유전자변형생물체(LMO)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데 긍정을 표시한 사람은 28.8%에 불과했다. 더욱이 2년 전 조사 때보다도 3.2%포인트가 더 적어졌다.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수입 필요성에 대한 긍정 의사도 20.2%에 지나지 않았다.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그대로 식탁에 오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식용으로 수입된 유전자변형 농산물은 대부분이 식용유(대두유·옥수수유)나 물엿, 과당, 간장 등의 원료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광수 식품의약품안전처 사무관은 “법률상 유전자변형 농산물을 원료로 쓸 경우 표시를 해야 하지만 가공 뒤 단백질이나 디엔에이가 검출되지 않을 때는 예외로 돼 있다. 식용유나 간장 등은 제조 과정에서 단백질이 파괴돼 유전자변형 원료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전자변형 콩이나 옥수수를 주요 원재료로 가공하는 유지류나 물엿 등의 생산량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대두유의 경우 국제곡물 가격이 올라 최근 생산량이 다소 줄었지만 옥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옥수수유나 물엿, 과당 등의 생산량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일본 제품에도 유전자변형 여부 표시는 안 돼 있어 국내에서 소비되는 식용유나 간장의 경우 재료가 외국산이면 유전자변형 콩이나 옥수수로 제조됐을 확률이 크다. 한때 대두유를 짜고 남은 찌꺼기로 된장을 만든 적이 있지만, 된장에는 유전자변형 농산물 단백질이 남아 있을 수 있어 현재는 생산되지 않고 있다.
최근 유전자변형식품 표시제가 강화돼 유전자변형 식품이 식탁에 오르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지난 12월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식품위생법 개정 법률안’은 유전자변형 디엔에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유전자변형식품 표시를 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유전자변형 디엔에이가 검출돼도 그 원재료가 전체 함량 상위 5순위 안에 있을 때만 표시하도록 식약처 고시에 규정돼 있었다.
조승현 ‘바이오안전성의정서 당사국회의 한국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한국방송통신대 교수)은 “유전자변형 식품에 대한 조항이 식품위생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됐다는 의미는 있지만 현재 유전자변형 가공식품들은 디엔에이가 남아 있지 않은 것들이어서 개정 법률이 실효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유럽처럼 유전자변형 원재료를 사용한 모든 경우에 표시를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지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간사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연어 수입량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향후 유전자변형 연어 수입 문제가 무역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법적 규정 등 유전자변형 동물의 식용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아 올해는 시민단체들이 이 이슈에 대해 공동대응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