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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백만번째까지 진리는 바뀌리라

등록 2016-03-04 19:43수정 2016-03-05 17:09

2006년 1월19일 발사된 미국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지난해 7월14일(현지시각) 태양계 끄트머리에 위치한 명왕성에 가장 가까운 약 1만2550㎞ 거리까지 접근했다. 그림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뉴호라이즌스호가 보내온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명왕성(가운데)과 명왕성 최대 위성 카론의 모습.  미 항공우주국 제공
2006년 1월19일 발사된 미국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지난해 7월14일(현지시각) 태양계 끄트머리에 위치한 명왕성에 가장 가까운 약 1만2550㎞ 거리까지 접근했다. 그림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뉴호라이즌스호가 보내온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명왕성(가운데)과 명왕성 최대 위성 카론의 모습. 미 항공우주국 제공
[토요판]
아홉번째 행성
▶ 지난해 미국의 탐사위성 뉴호라이즌스호가 조우했던 명왕성은 이미 10년 전 행성의 지위를 잃었다. 태양계엔 현재 행성이 8개뿐이다. 하지만 최근 태양계에 새 행성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명왕성보다 훨씬 먼 곳에서 태양을 돌고 있다는 천체. 태양계 행성의 수를 결정하는 과정은 과학적 사고의 일단을 보여준다. 진리가 불변이 아니라는 것, 언제나 수정될 수 있다는 믿음이 과학의 미덕이다.

지금 서른살쯤 된 사람까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누구나 태양계에는 9개의 행성이 있다고 배웠고 이를 당연히 여겼다. 하지만 2006년 믿었던(?) 명왕성이 70여년 만에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대사건이 벌어진다. 그래서 지금 청소년 세대는 태양계에는 8개의 행성밖에 없으며 명왕성은 소행성대와 카이퍼벨트에서 발견된 여러 개의 왜소행성 중 하나인 걸 당연히 여기고 산다. 이렇게 9개의 행성을 가진 태양계는 무슨 중년 인증 소재인 양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종이와 연필로 찾은 행성

그런데 이 상황이 다시 한번 극적인 반전을 맞을지도 모른단다. 명왕성이 도로 행성이 될 수는 없어도 태양계의 행성 수가 다시 9개가 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마이클 브라운과 콘스탄틴 바티긴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을 통해 태양계 안에 또다른 행성이 있을 가능성을 주장하고 나선 덕이다. 최소한 지구 정도의 질량이거나 최대 10배 더 무거울 수도 있다고 하니 대략 해왕성 다음 크기에 해당하는 큼지막한 행성이다. 이 이론이 사실로 밝혀지면 명왕성을 대신해 그간 ‘공석’이던 아홉번째 행성의 지위를 이 행성이 꿰차게 된다.

하지만 좀 의아할 수 있다. 이렇게 커다란 행성이 태양계 안에 있다면 왜 지금까지 찾지 못한 걸까? 수십억 광년 먼 우주 속까지 들여다보는 현대 천문학 기술이라면 우리 동네에 모여 있는 행성들의 현황 정도는 진작에 파악하고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멀리 있는 거대한 천체들을 보는 것보다 가깝고 작은 천체를 보는 것이 꼭 쉬운 일은 아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주에 대한 기존의 지식과 관념도 행성을 찾아내거나 알아보는 데 방해가 된다.

그간의 행성 발견 역사를 보면 이런 사실들을 실감할 수 있다. 사람이 맨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행성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다섯 개다(천왕성도 맨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다른 행성보다 훨씬 어둡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행성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망원경이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고대인에게 우주란 수많은 작은 별들이 붙어 함께 움직이는 하늘의 천장을 배경 삼아 특별히 각자의 궤도를 따라 도는 수금화목토의 행성들이 섞여 있는 무엇이었다(당시 관점으로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기에 행성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이런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나름의 관찰에 기초한 합리적인 해석이었고, 이에 근거해 우주는 물론 인간과 생명 등에 대한 여러 중요한 가치관들이 틀을 잡게 된 것이다.

이런 상태로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1781년에 이르러서야 토성 바깥에 존재하는 첫번째 행성인 천왕성을 찾게 됐다. 천왕성이 처음 망원경에 드러난 것은 그보다 거의 100년 전인 1690년이지만 당시의 상식으로는 새로운 행성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밤하늘 속 대부분의 것처럼 그저 붙박이별이라고 여겼다. 이후에 천왕성을 제대로 관측한 윌리엄과 캐럴라인 허셜 남매도 처음에는 행성이 아닌 혜성일 것이라고 여겼다. 혜성은 어쩌다 한번 지나가는 것이지만 새로운 행성의 등장은 하늘의 지도 전체, 때로는 그 속에 담긴 철학마저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거다.

천왕성보다 더 멀리 있는 해왕성이 발견된 것은 다시 50년이 지나서인데, 놀랍게도 관측으로 찾아낸 것이 아니다. 천왕성의 궤도를 계산하던 과정에서 그 바깥에 큰 중력을 가진 거대한 물체가 존재해야만 설명되는 불규칙성이 발견됐고, 그 계산 결과에 따라 추정해 망원경을 들이대어 확인한 것이다. 순수한 이론, 즉 ‘종이와 연필’로 찾은 첫번째 행성인 셈이다. 태양계 8개 행성 중 네번째에 해당할 정도로 거대한 가스행성이지만 인류가 이 행성의 존재를 눈치챈 것은 이렇게 최근의 일일 뿐이고, 그러고는 100년이나 지나서야 가능했던 명왕성 발견도 종이와 연필, 그리고 상당한 운이 동반된 결과였다.

명왕성 행성 지위 박탈 후 10년
또다른 행성 존재 가능성
새 행성, 해왕성의 20배 거리
하지만…허상일 수도 있다
혹은 수십개일 수도 있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행성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해왕성은 계산해 찾아
진실 향한 갈지자 행보지만
우주의 진리는 바뀌게 마련

명왕성은 신데렐라?

이렇게 행성 발견이 생각보다 어려운 과정이다 보니, 태양에서 현재의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까지 거리보다 20배 이상이나 떨어져 있고 공전주기가 자그마치 1만~2만년에 이른다는 문제의 아홉번째 행성이 쉽게 눈에 띈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해왕성처럼 먼저 관측된 것이 아니라 주변 작은 천체들의 궤도와 움직임을 통해 유추한 것이기에, 논문이 발표된 직후 열띤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것도 당연하다.

사실 종이와 연필, 혹은 컴퓨터로 한 계산은 아무리 정확해도 그저 계산일 뿐이며, 결론적으로 이 행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허상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그런다면 다시 아홉개의 행성을 가진 태양계를 꿈꿔본 중년에게는 조금 맥 빠지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이 모든 연구와 노력과 관심은 그저 헛소동으로 끝나는 걸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과학적 연구나 발견이 가진 입체적인 의미와 마주치게 된다. 앞의 명왕성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명왕성의 퇴출을 ‘대사건’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 극소수를 제외하면 우리 중 대부분은 이전에 명왕성에 대해 생각해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저 교과서나 책에서 명왕성이 행성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을 뿐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막상 명왕성의 퇴출이 결정되자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지금까지 잘 있던 명왕성을 끌어내어 내쫓다니, 왜 굳이 그런 일을.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명왕성을 행성으로 믿고 자라난 우리 세대에게 그 일은 뭔가 불편하고 섭섭한 감정을 안겨준 거다.

그래서 작년에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10년의 항해를 마치고 명왕성에 도달했을 때 그간 쌓인 세계인의 동정과 연민의 감정이 인터넷을 통해 한꺼번에 표출되기도 했다. 행성의 지위 여부 같은 과학계의 미묘한 이슈가 사회 전면에서 감성적, 문화적 현상으로 승화되는 흔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물론 그런 우리의 감정에도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잃은 것 자체는 합리적인 결정이다. 목성부터 토성, 천왕성, 해왕성까지 다들 지구보다 훨씬 큰 가스행성인데 우리 달보다도 훨씬 작은 돌덩어리가 그 틈바구니에서 행성 자격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명왕성이 발견된 1930년대의 관측기술로는 주변의 비슷한 천체들을 볼 재간이 없었고, 또 유럽인들이 발견한 해왕성과 천왕성과 달리 미국이 찾은 유일한 행성이라는 점에 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이 걸린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후 수십년간 명왕성에 버금가는 다른 천체가 카이퍼벨트 초엽에서 여럿 발견되다 보니, 이제 앞으로 발견될 비슷한 것들을, 몇백개가 된다 한들 전부 행성에 넣어주든가 아니면 명왕성을 행성에서 탈락시키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게 된 거다.

한데, 여기서 역설적인 것은 우리가 이전에는 안중에도 없던 명왕성에 대해 무엇 하나라도 관심을 갖고 또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명왕성의 ‘희생’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명왕성은 어떤 천체인지, 어째서 행성에서 탈락해야만 했는지, 행성으로 존재하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지 등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볼 기회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명왕성을 신데렐라의 처지에 빗대는 등 감수성이 담긴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며 많은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래서 2006년 퇴출 뒤 명왕성은 우리의 관념 속에서는 도리어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크고 밝게 존재감을 자랑하는 천체가 되었다. 비록 행성 지위를 잃었지만 다른 의미에서 더 큰 생명력을 얻은 것이다.

문제의 아홉번째 행성도 마찬가지다. 설사 행성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애초에 연필을 들고 계산을 하게 만들었던 상황, 즉 그 지역에 있는 작은 천체들의 특이한 움직임을 유발하는 무엇인가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행성이 아님을 밝혀내는 연구와 관측 속에서 우주 속의 새로운 무엇인가와 조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행성에 비견할 중력을 가진 아주 작은 블랙홀이거나 암흑물질 덩어리일 수도 있으며,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한 새로운 우주의 법칙일 수도 있다. 이런 뭔가를 찾아낸다면 그건 아홉번째 행성의 발견보다도 훨씬 큰 과학적 도약의 단초가 된다.

과학을 위대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

반대로 만약 저 자리에 실제로 행성이 존재하는 것이 확인된다면, 이제 우리 태양계의 지도는 새로 그려지게 된다. 그토록 먼 곳에 큰 행성이 존재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이어지게 될 것이며, 이제껏 명왕성 정도에 머무르던 무인탐사선의 목표 지점도 훨씬 더 먼 그곳까지 확장될 것이다. 나아가 이런 발견은 태양계 구석구석에 아직 찾지 못한 숨은 행성들이 여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마저 열어준다. 그래서 언젠가 태양계의 행성은 9개가 아니라 수십개인 것으로 밝혀질지도 모를 일이다.

요컨대 아홉번째 행성이 있건 없건, 설사 갈지자 행보가 되었어도 진실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그 자체가 바로 과학의 존재 의미인 것이다. 수십년간 행성으로 믿었던 명왕성이 퇴출되는 것이나 그 자리를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행성이 꿰차는 것은 바로 사실에 대해 개방적인 과학의 본질적 속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과학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던 예전에는 우주의 지도나 법칙이 바뀌는 것은 대단히 불유쾌한 일이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은 목숨을 걸고 말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것이었고, 행성이 5개 말고 더 있다는 것도 제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불편한 무엇이었다. 우주와 인간을 둘러싼 진실은 고정되어 있어야 했고, 그게 신의 뜻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우리는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진리라고 은연중 믿곤 한다. 특히 행성의 수 같은 단순하고 명백한 사안이 변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명왕성의 퇴출은 그런 의미에서 분명 대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로 과학이 어떤 고정된 값도 불변의 진리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새로운 발견을 통해 얼마든지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으며, 그것이 옳다면 진리는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한 점에서도 대사건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막 시작된 아홉번째 행성에 대한 논의와 반전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 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과학이 찾아내는 진실에 끝이란 없다.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다시 새로운 질문은 이어질 것이며, 아주 먼 옛날 찾아낸 첫번째 진실이 머나먼 훗날의 백만번째 진실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져갈 것이다. 흔히 과학의 궁극적 목표는 우주와 인간 존재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있다고들 하지만,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는 힘 자체가 그 답조차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는 합의에 바탕한다는 사실, 바로 이 점이 과학을 위대할 뿐 아니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파토 원종우 <태양계 연대기> 저자·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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