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꽃소식과 함께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는 계절이 다가오면서 알레르기 증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봄철의 불청객은 꽃샘추위만이 아니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민감한 이들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우리나라의 알레르기 환자는 1980년대 초만 해도 5% 정도에 불과했으나, 90년대 후반에는 15%, 2000년대 들어서 20%로 급증하더니 2010년대에는 25%까지 치솟았다. 이 가운데 30% 정도는 꽃가루 알레르기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꽃가루 농도는 평균기온이 15~20도이고 강수량이 없을 때 최고치를 보인다. 지구 온난화와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의 증가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 온난화로 평균기온이 높아지면 꽃가루 농도가 짙어진다. 국립기상과학원과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가 1997년부터 전국 12개 지점에서 꽃가루 농도를 측정해온 결과를 보면 꽃가루 농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경우 참나무·자작나무 등 수목류의 꽃가루 농도가 1997~2000년에는 연평균 1㎥당 1000개에 못 미쳤으나 2011~2014년에는 연평균 개수가 4600개를 넘어섰다. 아열대 기후를 보이고 있는 제주도의 삼나무 꽃가루 농도는 2012년에 비해 2014년에 5.9배로 증가했다.
해마다 알레르기 환자 급증
1980년대 5%에서 2010년대 25%
꽃가루 농도, 기온 15~20도 때 최고
CO₂ 농도 높아질수록 독성 강해져
전국 30% 차지 참나무가 제1 원인
가을엔 돼지풀·환삼덩굴 등 잡초 주범
외래종으로 더 독하고
빠르게 확산해 도심에서도 잘 자라
발병 나이도 갈수록 어려지고
‘여름감기’, 단순 감기 아닐 수도
충매화보다 풍매화가 더
또 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CO₂) 농도가 높아지면서 꽃가루의 독성이 강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오재원 한양대 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국립기상과학원 및 국립산림과학원 공동연구팀이 3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른 온실에서 단풍나무돼지풀을 길러 꽃가루 독성을 측정해보니, 이산화탄소 200ppm 환경에서보다 600ppm 환경에서 꽃가루 항원 농도가 2배 정도 증가했다. 또 오 교수팀이 대진대와 공동으로 의정부 지역(이산화탄소 농도 240ppm)과 서울 강남과 종로 등 시내 중심가(440ppm)에서 야외 실험을 한 결과에서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쪽의 꽃가루 항원 농도가 높게 나왔다. 오재원 교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증가가 돼지풀처럼 알레르기 식물이 잘 자라는 조건이 된다는 점을 확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봄철에 주로 참나무·자작나무·오리나무 등 수목류의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참나무는 꽃가루 알레르기 감작률(알레르기 항원에 반응을 하는 비율)이 자작나무와 오리나무보다 낮지만 전국 수목의 30%를 차지하고 있어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 원인의 1순위로 꼽힌다. 이들 나무 꽃가루는 2월 말이면 날리기 시작해 4~5월에 절정을 이룬다.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주는 충매화는 꽃도 화려하고 꽃가루 크기도 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은 반면, 바람에 날리는 풍매화 꽃가루는 크기가 20~5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여서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 훨씬 잘 퍼져나간다.
최근 들어 꽃가루 알레르기는 봄철보다 가을철에 더 조심해야 할 경계 대상이 되고 있다. 외래종이면서 강한 알레르기 독성을 지닌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 환삼덩굴 등이 급증해서다. 이들 초본류는 6월 초부터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해 8월 중순에서 9월 말까지 절정을 이룬다. 아직은 수목류에 비해 알레르기 환자가 적은 편이지만 이들 잡초의 확산 속도가 빠르다. 1999년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 제1호로 지정한 돼지풀은 1960~70년대에 전방 군부대 근처에 서식하던 것이 부산·울산 등 남부지역에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단풍잎돼지풀은 성장속도가 빠른데다 노지나 개천 주변 등 도심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 제1호
그럼에도 산림청이 식재 현황을 파악하는 수목류와 달리 돼지풀 등은 전국 분포 상황만 파악되고 있을 뿐 지점별 밀집도 등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찬호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지난해부터 시민참여형 공개 조사 활동을 시작해 계절별 서식 현황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올해는 한강 주변을 중심으로 조사를 벌여 주변 병원의 알레르기 임상과 비교해 연관 관계를 분석하는 연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알레르기는 우리 몸이 항원과 싸운 경험을 기억해야 다시 나타난다. 어린이들은 알레르기 항원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꽃가루 노출도 적어 꽃가루 알레르기 발생이 많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발생률도 높아지고 발생하는 나이도 어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봄철 수목류 꽃가루에 대한 어린이의 알레르기 감작률은 1997년 6.1%에서 지난해에는 10.4%로 급증했다.
오재원 교수는 “봄이나 여름에도 감기에 자주 걸리는 사람은 재채기를 자주 하거나 맑은 콧물이 나고 코가 가려울 때 알레르기 증세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여름감기는 실제 감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