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일 제주에서 열리는 암흑물질 연구분야 국제학술대회 ‘파트라스 워크숍’에 참가한 과학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야니스 세메르치디시 기초과학연구원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연구단 단장, 콘스탄틴 지우타스 그리스 파트라스대 교수, 악셀 린드너 독일전자가속기연구소 대표단장, 그레이 립카 미국 워싱턴대 교수, 김진의 경희대 석좌교수. 화목 커뮤니케이션즈 제공
“기초과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한국을 세계에서 암흑물질 탐구의 주요 거점이 되도록 했습니다. 3~4년 뒤면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힐 의미 있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첫 외국인 연구단장인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연구단’ 단장은 20~24일 제주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 파트라스 워크숍에 앞서 19일 한국 과학기자단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액시온(암흑물질 후보) 탐색 실험을 추진해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고, 많은 연구단들이 협력 연구를 제안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암흑물질 연구분야의 세계 최대 학회인 파트라스 워크숍이 아시아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세계 각국에서 ‘암흑물질 사냥꾼 과학자’ 150여명이 참가한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관측된 적이 없는 미스터리한 물질로 우주의 기원과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137억9800만년 전 빅뱅과 함께 탄생한 우주는 물질과 반물질로 이뤄져 있었다. 물질과 반물질은 만나면 사라지는데 어느 순간 대칭이 깨져 물질이 남으면서 지금의 우주가 만들어졌다. 초기 우주는 너무 뜨거워 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 만날 일이 없었으나 온도가 내려가 중력에 의해 두 입자가 서로 끌어당기며 원자핵을 만들고 다시 전자까지 끌어들여 원자를 이뤘다. 이 원자가 현재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물질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물질만으로 해석이 안되는 현상들이 관측됐다. 은하가 회전하는 속도를 측정해보면 관측가능한 물질들에 의한 중력만으로는 벌써 은하가 원심력에 의해 퉁겨져 나갔어야 한다. 무엇인가 은하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끌어잡아당기고 있는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무엇이 암흑물질이다. 또하나는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현상이 있으려면 알 수 없는 에너지 곧 암흑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과학자들의 계산으로는 관측 가능 물질이 우주의 5%, 암흑물질이 27%, 암흑에너지가 68%를 차지하고 있다.
암흑물질은 질량을 지닌 소립자일 것으로 과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여러 후보 가운데 액시온(AXION)과 윔프(WIMPs)가 유력하게 꼽힌다. 윔프는 ‘약하게 반응하는 무거운 입자’로 핵물리학자로 잘못 알려진 입자물리학자 고 이휘소 박사가 처음 아이디어를 냈다. 액시온은 ‘약하게 반응하는 가벼운 입자’(WISPs)의 하나로 김진의 경희대 석좌교수가 제안했다. 세메르치디스 단장은 대학원 시절 김 교수한테 액시온 강의를 들고 자신의 평생 연구주제로 삼았다. 액시온이라는 이름은 세제 상표에서 따온 것으로, 이것이 발견되면 우주의 수수께끼들이 깨끗이 풀릴 것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
윔프의 경우 기초과학연구원 지하실험연구단이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의 지하 700m에 실험실을 구축해 탐색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미국·유럽·일본 등 10여곳에서 실험을 하고 있을 정도로 암흑물질 연구를 선도해왔다. 하지만 유럽입자물리연구소(세른)에서 대형강입자가속기(LHC)로 양성자를 충돌시켜 우주 초기 상황을 재연하는 실험에서 ‘신의 입자’ 힉스는 발견된 반면 더 기대를 모았던 윔프는 검출되지 않아 연구의 추력이 다소 떨어진 상태다. 다만 올해 성능을 두배로 늘려 가동하는 대형강입자가속기 실험이 진행돼 윔프가 발견되면 연구가 다시 활기를 띨 수 있다.
이에 비해 액시온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최근 부쩍 커졌다. 한국은 액시온 발견을 위해 두가지 방향의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하나는 세른과 협력연구를 통해 필요한 장비들을 구축해 테스트하는 것이다. 태양에서 날아오는 액시온 검출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콘스탄틴 지우타스 그리스 파트라스대 교수는 “8월말이면 세른의 전자석을 이용한 실험장치 구축이 끝나 본격적인 협력연구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번째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 실험장치를 구축해 우주 주변에 존재하는 액시온을 검출하는 연구다. 세메르치디스 단장은 “올해 안에 냉동기와 공진기로 구성된 액시온 검출장치 6대를 설치해 내년부터 본격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자석의 크기를 35T(테슬라)까지 향상시켜 원하는 민감도에 도달하는 2019~2020년쯤에는 의미 있는 데이터를 생산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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