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의 절반 왼쪽은 자연색을 보여주며 절반 오른쪽은 꽃잎에 따라 다른 전기장 차이를 보여준다. 맨 오른쪽은 가느다란 몸털을 많이 지닌 벌의 앞쪽 모습. 영국 브리스틀대학 제공
벌과 꽃이 남몰래 나누는 소통의 신호일까?
벌들은 꽃의 색깔, 모양, 냄새 같은 단서를 좇아 꿀을 구하는 먹이 활동을 하지만, 꽃과 벌 사이의 미세한 전기장을 감지해 꽃을 찾아가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벌의 몸에 난 가느다란 털들이 전기장을 감지하는 구실을 한다고 밝혔다.
영국 브리스틀대학 생물학자인 대니얼 로버트 교수 연구팀이 밝힌 이런 연구 결과는 2013년 <사이언스>에, 그리고 최근에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잇따라 발표됐다.
사실, 벌과 꽃에 전기장이 생성된다는 건 이번에 알려진 건 아니라고 한다. 벌은 매우 빠른 날갯짓을 하며 허공의 먼지나 다른 입자와 마찰을 일으켜 전자를 잃고서 양전하의 정전기 상태가 되곤 한다. 땅에서 일정한 높이에 핀 꽃은 종종 음전하 상태가 된다. 이런 현상은 1970년대 일부 보고됐으나, 실제 벌의 먹이활동 중에 벌과 꽃 사이에서 전기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연구진은 여러 자연의 꽃들에 있는 전기장을 정밀 측정했으며, 인조 꽃 실험장치를 만들어 뒤영벌이 전기장을 신호로 감지하는지를 살피는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실험에서 벌들이 점차 학습을 거치면서 매우 높은 정확도로 전기장 신호를 이용해 단즙 있는 꽃을 찾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기장이 먹이 식별의 단서로 쓰인 것이다.
그런데 벌들은 어떻게 전기장을 감지할까? 최근 논문에서 연구진은 뒤영벌의 몸에 난 가볍고 가늘고 뻣뻣한 털이 꽃의 미세한 전기장에 반응해 휘어지는데 이런 휘어짐이 털의 모근과 연결된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전기장을 감지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정전기를 품은 풍선을 대면 사람 머리카락이 일어서 반응하듯이 뒤영벌의 몸털도 꽃의 미세 전기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미세한 전기장 감지가 작은 몸집의 곤충들에겐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전기장 신호는 다른 곤충 종들에게도 중요한 감각이 되리라는 예측도 나온다. 연구진은 “꽃의 전기장은 몇 초 내에 변할 수 있으므로 이런 감지 능력은 꽃과 꽃가루받이 곤충 사이에 신속하고도 역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오감은 모르게, 미세한 전기장 감지가 곤충과 식물의 세계에서는 널리 쓰이는 감각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철우 기자
※ 이 기사는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실린 글들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