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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다’에서 ‘빨래 걷어라’로…진화하는 일기예보

등록 2016-07-17 12:47수정 2016-07-17 14:35

종주국 영국에서 일기예보의 미래를 보다
2011년부터 바람과 홍수 ‘영향예보’ 최초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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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23일 오후 7시 제주공항이 폐쇄됐다. 기상청은 사흘 전부터 강설과 강풍을 예보하고 당일 새벽 4시에는 대설주의보와 강풍주의보까지 발령했다. 적설량은 12㎝를 기록했고, 최대순간풍속은 초속 20.4m에 이르렀다. 제주공항에서 출발하는 296개 노선 항공편이 결항하고 122편이 지연됐다. 공항에 몰린 승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한뎃잠을 자야 했다.

같은 시기 미국 동북부 지방에도 눈폭풍이 닥쳤다. 수천편의 항공편이 취소되고 학교와 관공서가 폐쇄됐으며 지하철과 철도 운행도 중단됐다. 90년 만의 한파와 폭설에 ‘스노마겟돈’(스노와 종말전쟁을 뜻하는 아마겟돈의 합성어)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인명피해는 극히 적었다.

우리나라 예보가 틀렸다 할 수 없음에도 미국의 예보는 무엇이 달라 다른 결과를 냈을까? 김승범 기상청 영향예보팀장은 “미국은 위험기상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을 가동해 이틀 전부터 워싱턴 시장과 기상청장이 언론 브리핑을 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선제 대응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기상예보는 정확했지만 위험기상에 따른 영향 정보는 빠져 있고 제주도지사가 당일에서야 대책회의를 여는 등 기상재해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기상위성·슈퍼컴퓨터·레이더·라이다 등 현대의 각종 첨단 기상장비로 예보 적중률이 크게 높아졌지만 변화무쌍한 자연현상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특정 국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2013년 11월7일 필리핀을 강타한 슈퍼태풍 ‘하이옌’의 경우 필리핀 기상청이 태풍의 강도나 진로 등에서 정확한 예보를 하고 피해 예상지역에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사전에 배치했음에도 사망·실종자가 7362명에 이르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필리핀 방재당국이 폭풍 해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 정보를 사전에 전파하고 해일에 노출될 지역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켰더라면 피해를 크게 줄였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세계기상기구는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지난해 ‘복합재해 영향기반 예·특보 서비스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각국 기상청이 적시에 적절한 위험기상 예·특보를 발표함에도 기상 재해로 인한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이 잇따르는 것은 기상 예·특보와 비상관리를 담당하는 기관, 일반주민 3자가 이해하는 잠재적인 영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 핵심이다. 세계기상기구는 “위험기상 영향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기상청과 방재기관이 풀어야 할 과제”라며 해결방안으로 ‘영향예보’를 제시했다.

영국 기상청 영향예보팀의 베키 헤밍웨이 연구원이 지난 12일(현지시각) 한국 기자단을 만나 영향예보를 시행할 때 관련 기관들의 네트워크인 자연재해파트너십(NHP)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다.
영국 기상청 영향예보팀의 베키 헤밍웨이 연구원이 지난 12일(현지시각) 한국 기자단을 만나 영향예보를 시행할 때 관련 기관들의 네트워크인 자연재해파트너십(NHP)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다.
160년 전 일기예보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영국이 영향예보도 가장 먼저 시행하고 있다. 영국이 영향예보 시스템 구축에 나선 것은 2007년 여름에 닥친 대홍수 때문이다. 그해 여름 경제적 손실만 6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영국 기상청(Met Office)의 폴 데이비스 예보총괄실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각) <한겨레>와 만나 “홍수로 인한 피해의 원인을 단순히 강우량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백서를 만드는 등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영향예보의 시초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영국 기상청은 2003년 공모를 통해 잉글랜드 서남쪽에 위치한 엑서터에 둥지를 틀었다. 2000명 직원 가운데 1400명이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영국 기상청은 2년 동안의 연구 끝에 2011년부터 위험기상 메트릭스를 활용해 확률에 바탕한 위험도를 예보하는 ‘국가위험기상경보서비스’ (NSWWS)를 시작했다. 위험 매트릭스의 가로축은 ‘잠재적인 영향의 정도’(취약성)를, 세로축은 ‘재해 발생 가능성 정도’(노출)를 표시하는데, 각각 4단계씩 나눈다. 경우의 수는 16개이지만, 크게 색깔별로 4단계(녹색,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로 분류된다. 가령 눈과 관련된 위험 매트릭스면 세로축은 적설량이, 가로축은 해당지역이 눈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나타낸다. 우리나라는 24시간 동안 신적설이 5㎝ 이상이 예상되면 대설주의보를 내리지만, 사실 부산에서는 1㎝만 와도 난리가 나는 반면 강릉에서는 10㎝ 정도는 일도 아니다. 노출 값이 작더라도 취약성이 크면 경보를 발령하는 것이 위험 매트릭스의 핵심이다. 부산에 3㎝의 눈이 예상되면 주황색 경보가 내리는 반면 강릉에는 5㎝의 눈이 와도 노란색 경보밖에 내지 않는 식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내각과 보건부, 환경부, 국가해양학센터, 홍수통제소 등 공공 및 민간부문 17개 조직의 연합체인 ‘자연재해파트너십’(NHP)은 영향예보를 하기 위한 ‘재해영향모델’(HIM)을 개발하고 있다. 2011년에 설립된 NHP는 자연재해에 대한 정보, 연구·분석 결과 제공을 통해 더 효과적인 정책과 통신 및 서비스를 영국 전역의 비상사무국, 지방자치단체, 사회공동체에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4개 재해가 궁극적인 목표이지만 우선 바람, 홍수, 산사태 3가지 재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해영향모델 가운데 가장 먼저 완성된 것은 차량전복(VOT) 모델이다. 2013년부터 시범 운영되고 있는 이 모델에서 재해는 임계치를 초과한 돌풍을 말한다. 적재하지 않은 대형화물차와 소형화물차, 화물을 실은 대형화물차, 승용차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눠 각각 초속 23·26·36·35m의 풍속 임계치를 설정했다. 또 도로의 고도, 차선 수, 터털·로터리 등 도로양상, 도로의 방향 등 4가지 지표를 만들었다. 이들 값을 조합해 위험 지수를 계산해 역시 녹색(재해 없음), 노란색(주의), 주황색(경계), 빨간색(심각)의 4단계의 위험 경보를 만들었다.

2013년 12월5일 초속 60m가 넘는 60년 만의 최악의 겨울 폭풍이 유럽 북서부를 강타했다. 이날 VOT 모델은 오전 9시께 영국 남쪽 지역 여러 도로에 최상급 경보(빨간색)를 발령했고, 이 시간대 해당 도로들에서만 7대의 차량이 전복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영국 기상청 영향예보센터의 베키 헤밍웨이는 “당일 영국 전역에서 87건의 차량 전복사고와 운송 지장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VOT 모델의 경보와 시·공간적으로 상당수가 일치했다”고 말했다.

영국 기상청은 홍수에 대한 영향예보 모델을 개발중으로 올 여름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데이비스 프라이스 홍수예보센터장은 “지형, 지표의 상태, 경사도 등 정보를 바탕으로 수량을 15분 간격으로 계산하고 산업, 교통, 인구이동 수 등의 정보를 함께 넣어 위험도를 분석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5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지역에 사상초유로 하룻동안 341.4㎜의 비가 내렸을 때 홍수 영향예보 모델에 따라 처음으로 최상급 경보(빨간색)가 발령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 국가들이 영향예보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영국이 가장 먼저 영향예보를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각의 적극적인 지원과 이를 바탕으로 잘 구축된 협력 체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등이 있다. 데이비스 예보총괄실장은 “내각이 의무적으로 파트너십을 구성하도록 하고 기상청이 주도적으로 조율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12일 한국 기자단과 만난 세계기상기구 할리 쿠투발 공공기상서비스 과장도 “(영향예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협력(partnership)과 협동(cooperation)이다. 영향예보를 하기 위해서는 기상 관련 전문가들과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처간 협력과 양보도 큰 원동력이다. 홍수예보센터는 2009년 원래 런던의 환경부 산하로 출범했지만 2011년에 기상청으로 소속을 옮겼다. 환경부 출신인 프라이스 홍수예보센터장은 “환경부에는 여러 산하기관들이 있다. 홍수예보센터는 그 중 하나에 불과해, 좀더 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기상청으로 옮기는 안에 환경부가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런던 남서쪽 지역에 자동차로 3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엑서터에 자리한 영국 기상청(Met Office) 전경.
영국 런던 남서쪽 지역에 자동차로 3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엑서터에 자리한 영국 기상청(Met Office) 전경.
영국 기상청이 구글과 함께 운용하고 있는 시민과학 프로젝트인 기상관측서비스(WOW)는 집단지성으로 영향예보 정확도를 높이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2011년 6월 개설된 뒤 지금까지 개인들이 7400개의 관측 사이트를 구축해 4억3000만건 관찰 결과를 전송했다. 216개 국가에서 100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럿거스 당커스 영국 기상청 영향예보센터장은 “정선된 자료가 아니어서 예보에 직접 활용할 수는 없지만 예보관들이 자료의 분포를 참고로 모델 결과값을 검증할 때 유용하게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 사이트에는 기온과 강수량 등 시민들이 직접 측정한 기상값뿐만 아니라 자연재해 기록이나 영상 등이 실시간으로 쌓이고 있다. 실제로 2013년 12월5일 차량전복 모델을 점검할 때 수집된 사고 87건 가운데 11건은 이 사이트에서 보고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상예보 정확도는 크게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재해를 막는 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1980~90년대 텍스트 중심의 아날로그 예보에서 2000년대에는 디지털예보와 동네예보로까지 발전했지만 특보 체계는 아직 하루 전 발령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재해의 위험까지도 고려한 4~7일 전 사전경보시스템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상청은 올해를 영향예보 원년으로 하고 8월부터 태풍 영향예보를 시범 실시하는 등 시스템을 구축한 뒤 2020년께부터 정식 서비스하는 것을 목표로 정책을 마련중이다.

글·사진 엑서터(영국)/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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