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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유생물 인공위성’ 만든 장승호를 찾습니다

등록 2016-09-05 11:07수정 2016-09-05 11:07

[미래] 박상준의 과거창
강아지 실어 전파로 먹이공급 설계
국내 최초 제작 ‘인공위성’ 어딨나
10년쯤 전의 일이다. 새롭게 입수한 자료를 살펴보다가 순간 긴장했다.

1960년, 그러니까 4·19 혁명이 일어난 해에 열린 제6회 전국과학전람회 입상작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경기공업고등학교 과학반이 민의원 의장상을 받았는데, 출품작이 ‘유생물 인공위성’이었다. 그런데 설명을 찬찬히 읽어보니 ‘인공위성 모형이 아니라 우주궤도에 올리면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자료는 1960년 당시에 전국 과학교사들 모임인 한국과학교육연구회에서 내던 <과학과 생활>이라는 간행물에 실린 것이다. 경기공고 과학반을 지도하는 장승호 교사가 유생물 인공위성의 설계 및 제작 경위를 13개 항목으로 나누어 상세히 설명했다. 태양에너지, 우주방사선, 우주먼지를 측정하는 우주환경 조사 부분, 전파 송수신기가 각각 4대씩 장착된 통신 부분(왜 4대씩 필요한지도 상세 설명이 있다), 발사 때 및 우주궤도에서의 혹독한 환경으로부터 격리된 생물 탑승용 기밀실(여기에 ‘생명력이 강한 개를 넣는다’고 하며, 지상에서 전파 신호를 보내 먹이 공급 장치도 작동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전원부 등이다. 예정 우주궤도의 높이와 공전 주기, 그리고 3단 로켓으로 발사할 경우 각 단계의 고도와 연소시간 등도 수치로 다 계산해놓았다. 로켓의 경우 재정 부족으로 제작은 못 하고 설계만 해놓았다고 되어 있다.

1960년 한국과학교육연구회에서 낸 <과학과 생활>에 실린 유생물 인공위성에 대한 기사이다. 이 위성을 만들었다는 장승호 교사를 찾을 길이 없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1960년 한국과학교육연구회에서 낸 <과학과 생활>에 실린 유생물 인공위성에 대한 기사이다. 이 위성을 만들었다는 장승호 교사를 찾을 길이 없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은 1992년에 발사된 우리별 1호이다. 유럽우주국(ESA)의 아리안로켓에 실려 우주궤도에 올랐다. 당시의 인공위성은 영국의 도움으로 제작되었지만, 그 뒤로 국내의 인공위성 분야는 꾸준히 발전하여 지금은 국산 인공위성을 해외에 수출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그러나 국산 로켓은 나로호가 성공은 했지만 아직 상업 운용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나라의 우주개발은 탑재체(인공위성)가 발사체(로켓)보다 더 앞선 상황이다.

과연 1960년의 ‘유생물 인공위성’을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으로 볼 수 있을까? 엄밀히 따지면 궤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명예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최초의 탑재체 제작 시도’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발사체에 실려 우주로 날아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만 있었다면,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지상에서 전파 신호를 수신했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이 ‘인공위성’과 관련된 정보들을 틈날 때마다 수소문해봤지만 별 수확이 없었다. 가장 기대한 것은 어딘가에 이 물건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었다. 1953년에 제작된 국산 1호 비행기 ‘부활호’가 뼈대만 남은 채 수십년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2004년에 대구 경상공업고등학교 지하창고에서 극적으로 발견되었던 것처럼, 비슷한 드라마를 기대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글을 쓰거나 강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아무런 제보를 받지 못했다.

당시 경기공고 과학반을 지도한 장승호 교사는 아마 지금 생존해 있다면 80대 후반이나 90대일 것이다. 과학반 학생들도 70대 중반의 나이다. 몇 년 전에 경기공업고등학교의 후신인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전화해 봤을 때는 그런 이름의 교사가 재직했던 기록을 쉽게 확인할 수 없었고, 당시 학교에 다닌 경기공고 졸업생 동창회 명부를 통해 수소문해 보는 일은 아직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인한 것은, 1961년 봄에 장승호 교사가 미국과학재단이 후원하는 미국 하기 과학강습회 참가단에 포함되었다는 짧은 공지글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5·16쿠데타가 난 다음에 나온 강습회 수료자 기록을 보면, 장승호 교사는 그 참가단에 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동안 우리의 과학문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이 분야의 유산들이 제대로 기록, 보존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과학잡지사를 통시적으로 연구한 논문이 아직 한 편도 없다. 일제강점기에 <과학조선> 잡지가 11년 동안이나 간행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원로 물리학자인 서두환 박사는 1962년에 한국 최초 입자가속기 제작팀의 일원이었는데, 당시의 가속기가 남아 있지 않음을 아쉬워하면서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기록이나 제작품을 잘 보존하지 않는 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디지털 빅데이터의 시대에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은 훨씬 간편해졌다. 문제는 한 분야의 시초가 되는 오래전 유산을 확인하는 일이다. 1960년 당시 전국과학전람회에 ‘유생물 인공위성’을 출품했던 경기공업고등학교 과학반의 장승호 교사와 학생분들에 대한 제보를 기다린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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