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인공지능 VS 인간 지성
인공지능 VS 인간 지성
인간은 사물을 매우 쉽게 구별하지만, 인공지능은 사물 구별을 가장 어려워한다. 페이스북의 인공지능 테스트에서 구별하는 데 실패한 빵과 개, 개와 사람의 사진들이다. 페이스북 제공
수학적 처리 컴퓨터와 차이
인공지능 빅데이터 활용으로
개·고양이 구별 등 추론하고
모차르트식 작곡도 가능
새로운 음악 등 창조는 못해
데이터 비판 능력 없는 탓
기존 이론과 상식 뒤집는 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
‘비판적 사고력’ 교육이 중요 알고리즘 대신 빅데이터 활용 대신, 단어와 문장을 ‘이해’하거나, 문맥을 파악하거나, 문장들을 읽으면서 불현듯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은 컴퓨터에게 어렵다. 그런 과정 자체를 어떻게 숫자와 언어로 표현해 컴퓨터에게 넣어줄 수 있는지 우리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뇌의 생물학적인 정보처리 과정이 컴퓨터의 수학적인 정보처리 과정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과 성과를 내는 분야가 서로 다른 것이다.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거나,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과제가 인간에게는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만, 인공지능에겐 만만치 않은 문제다. 개/고양이, 남자/여자를 구별하는 만능의 규칙이 없기 때문에, 알고리즘적으로는 답을 찾기 어렵다. 머리카락이 길다거나, 다리가 가늘다고 해서 여성은 아니지 않은가? 머리가 크다거나 덩치가 크다고, 남자라고 간주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의 패턴인식 문제는 인공지능에게 정확도를 높이기 어려운 난제였다. 이런 난제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빅데이터’였다. 알고리즘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들에서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규칙을 가르치는 대신,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입력해주면서 개/고양이 차이, 남자/여자 차이를 패턴에서 찾으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충분히 많은 데이터를 넣어주기만 하면 인간처럼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걸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알게 됐다. ‘21세기 들어 인공지능이 어떻게 갑자기 뛰어난 성과물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중 하나가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라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증거다. 우리가 평생 본 개가 몇 마리나 될까? 우리가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법을 부모에게 배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보며 학습을 했을까? 우리는 주변의 수백 마리의 개나 고양이를 보며 그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고, 수백 명의 사람들만으로 남녀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데 이 정도의 정확도를 만들어내려면 인공지능에게는 빅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그만큼 알고리즘이 훌륭하지 못했는데,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페이스북에만 들어가도 개 사진이 수백만 장이나 되니, 인공지능도 인간 수준의 개/고양이 구별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1956년 존 매카시가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은 이래,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고를 확장해왔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모두 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에 입력한 뒤, 모차르트스러운 교향곡을 새로이 작곡하라고 하면,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더없이 모차르트스럽고 아름다운 곡으로 말이다. 인공지능이 예술의 창의성 영역까지 확대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바흐에서 모차르트를 거쳐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모든 교향곡들을 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에 전부 입력한 뒤에, 입력한 교향곡들과는 다른 교향곡을, 그런데 일정 수준 이상의 미적 가치를 가진 작품을 만들어내라고 하면 그건 잘 못한다. 입력해준 데이터를 부정하는 사고는 아직 인공지능에겐 무리다. 인간 지성의 핵심은 전복적 사고 하지만 이런 사고는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창작의 과정이다. 기존의 나온 작품들을 섭렵한 뒤에, 그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예술적 창의성의 핵심이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나온 기존 논문들을 금과옥조라 믿고 모두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좋은 연구를 하기 어렵다. 그것을 의심하고 회의하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권위에 눌리지 않고 합리적으로 의심하며,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대담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할 창의적인 실험에 몰두하는 일. 그것이 뛰어난 과학자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법이다. 인공지능의 핵심이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인식을 확장하는 능력이라면, 인간 지성의 본질은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가치전복적 아이디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자신만의 관점에서 세상을 새롭게 구성하고 이해하는 일, 개인적 경험 안에 인식의 틀을 가두지 않고, 데이터에만 매달리지 않는 비판적 사고가 인간 지성의 중요한 토대다.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처럼 대해왔다. 앞으로는 다음 세대에게 정답을 실수 없이 빨리 찾는 능력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 데이터와 지식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 자신만의 관점과 세계관을 세우려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아니,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런 사유법을 독려해야 한다. 지적 다양성이 인간 지성의 핵심이며 획일화되지 않는 다양성의 존중이 행복한 인류를 만들어내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지혜를 인간이 먼저 배워야 한다.
머핀과 치와와, 고양이와 아이스크림 사진을 놓고 인간은 한눈에 알아차리지만, 인공지능은 헷갈려 한다. 사진은 페이스북이 만든 인공지능이 구별에 실패한 머핀과 치와와, 고양이와 아이스크림이다. 페이스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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