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진화론의 주창자임을 상징하는 다윈의 캐리커처, 무의식의 세계를 설파한 프로이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저작 가운데 <상상력 사전>이 있다. 이 책의 여섯째 항목의 제목은 ‘인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세 가지 사건’이다. 그 세 가지가 뭘까? 첫째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다. 지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그동안의 절대 믿음을 산산조각냈다.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기는커녕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으며, 태양 자체는 더 거대한 어떤 체계의 주변에 있다”고 주장했다. 둘째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세상의 만물은 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며 인간은 다른 생물보다 우월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뒤흔들었다. 진화론을 계기로 인간은 지구촌 동물 세계의 일원으로 편입됐다. 셋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인간은 지구 만물 가운데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닌 무의식에 휘둘리는 비합리적 존재라고 주장했다. 무의식의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그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인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이 사건들은 다른 한편에선 인류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준 혁명적 지식이다. 새로운 지식이 축적되면서 인간은 그동안 단절됐던 것처럼 보였던, 우주와 인간과 생물이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음을 깨달았다. 세 가지 사건은 이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
미래의 인류는 어떤 지적 충격에 자존심이 상할까? 그 충격은 우주와 만물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될까? 미국 과학대중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최근 이와 관련한 상상력 전개에 도움이 될 만한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인류의 미래에 관한 거대한 질문 20가지’를 골라 해당 부문의 유력 과학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변을 받아 소개한 것.
예상대로 질문지 앞자리를 차지한 건 외계의 실체에 대한 것들이다. 미래의 인류는 지구 밖으로 나가게 될까? 이런 답변이 도착했다. “지구 밖 대량 이주를 꿈꾸는 건 위험한 망상이다. 태양계에서 우리는 에베레스트 정상만큼 안락한 곳도 찾을 수 없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이곳에서 풀어야 하지 않을까? 모험가들이 사이보그나 생명공학 기술의 도움을 받아 운 좋게도 외계 환경에 적응한다면, 수세기 안에 그들은 새로운 종이 될 수도 있다. 이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시작이다.”
언제 어디서 외계 생명을 찾을 수 있을까? “외계 생명체가 지구와 전혀 다른 형태라면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목성의 달 유로파와 토성의 달 타이탄은 더 주목할 만한 곳이다. 유로파는 물의 세상이다. 더 복잡한 형태의 생명체가 진화해 있을 수 있다. 타이탄은 아마도 태양계에서 생명체를 찾기에 가장 흥미로운 장소다. 유기분자들이 풍부하다. 그러나 매우 춥다. 타이탄에 생명체가 있다면, 지구와 매우 다른 형태일 것이다.”
외계의 식민지로 거론되는 화성의 모습. 나사 제공
외계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을까? “로봇이 다니는 것으로 족하다면, 이미 화성은 식민지다. 사람이 장기간 거주해야 하는 것이라면, 50년 안에 가능할지 모른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라면, 가능하다 해도 상당히 먼 미래에나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 바닷속도 식민지로 만들지 못했다.” 쌍둥이 지구를 찾아내게 될까? “그렇다는 것에 돈을 걸겠다. 우리는 수십년 전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행성들을 찾아냈다. 지구 생명체의 필수요소인 물이 우주에 흔하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제 그것들을 찾아낼 차례다.”
이어지는 질문은 좀더 실존적이다. 다음 500년 동안 인류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핵전쟁, 생태계 파국 같은 커다란 위협이 있지만 인류를 절멸시킬 만큼의 실체가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을 능가하는 전자인간의 출현 같은 걱정거리는 코드를 뽑으면 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핵 재앙 예방에 더 가까이 가고 있는 걸까? “냉전이 끝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1천여개의 핵무기가 여전히 ‘경보 즉시 발사’ 상태에 있다. 핵미사일이 날아가는 시간은 15~30분이다. 몇분 안에 수억명의 목숨이 달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는 우발적 핵전쟁 발발이나 해커에 의한 핵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남겨둔다.” 지구는 여섯번째 대멸종을 피할 수 있을까? “발 빠르게 행동한다면 늦추거나 멈출 수 있다. 대멸종의 최대 원인은 서식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절반의 육지와 절반의 바다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
최근 우주와 생명에 대한 뉴스들이 잇따랐다. 목성 유로파에선 물기둥이 솟구치는 장면이 목격됐고, 미국의 우주개발 기업인 일론 머스크는 2020년대 화성 여행과 화성 식민지 건설의 포부를 밝혔다. 생명공학 분야에선 2명의 엄마와 1명의 아빠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탄생했다. 이들은 우주와 생명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인류의 지적 도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인간을 호모사피엔스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는 호모사피엔스 종의 우월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지적 도전을 통해 얻는 결과들은 역설적으로 인간 존재의 미약함을 자각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베르베르가 꼽은 세 가지 사건이 그랬다. 인류 미래와 관련한 거대한 질문의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인류의 자존심은 과연 네번째 상처를 받을 지식을 손에 쥘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도구 삼아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아내 지속가능한 미래로 가는 이정표를 찾아낼 수 있을까?
곽노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