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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아버지는 부품 세 개로 라디오를 만들 줄 알았다

등록 2016-12-19 10:14수정 2016-12-19 10:27

[미래] 박상준의 과거창

어른세대 빠져들었던 라디오 제작
납땜질로 배운 최첨단 기술
‘세운상가 키드’의 추억 거기 있다
최근 코딩 배우기 열풍이 불듯이 1960~70년대에는 라디오 조립이 인기였다. 1971년 열린 라디오 조립 경연대회. 국가기록원 제공
최근 코딩 배우기 열풍이 불듯이 1960~70년대에는 라디오 조립이 인기였다. 1971년 열린 라디오 조립 경연대회. 국가기록원 제공
과학기술의 경이로움을 처음 느낀 건 아주 어렸을 때 라디오를 보면서다. 조그만 상자 같은 것에서 음악도 나오고 사람 말소리도 쩌렁쩌렁 나오는 게 참 신기했는데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나중에 학교에서 전기와 전파에 대해 배우고 마르코니가 무선송수신기를 발명한 것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전기, 전자 부속들로 뭔가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을 잔뜩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과학소년’ 흉내를 내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동네 문방구에선 광석라디오 키트라는 것을 팔았다. 배터리가 없어도 라디오 방송이 들리는 신기한 물건인데, 부품이 몇 개 없어서 초등학생도 만들기 어렵지 않았다. 점점 흥미가 쌓여 관련된 책과 잡지도 찾아보면서 마침내 세운상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종로와 청계천을 잇는 거대한 건물, 전기·전자 제품이라면 무엇이든지 있다는 마법의 만물상 같은 곳.

학생들은 <전자과학> <라디오와 모형> 등 잡지를 보면서 전파공학의 원리와 라디오 기술을 익혔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학생들은 <전자과학> <라디오와 모형> 등 잡지를 보면서 전파공학의 원리와 라디오 기술을 익혔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당시 과학에 관심 좀 있다는 청소년이라면 <학생과학>(1965년 11월호로 창간하여 90년대 중반까지 간행)을 가장 많이 보았다. 한편 세운상가를 뒤져 전기·전자 부속들을 사 모아서 직접 납땜질을 해가며 라디오나 앰프 등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전자과학>(‘전파과학’이란 제호로 1959년 5월 창간)을 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잡지는 텔레비전·라디오 기술학원의 교재 수준으로 내용이 어려웠다. 그러다가 1976년 4월에 <라디오와 모형>이라는 잡지가 창간되어 <학생과학>과 <전자과학> 사이의 중간층(?) 수요를 흡수하게 된다. 중고생 시절 <라디오와 모형>을 즐겨 보면서 서울 세운상가를 수시로 들락날락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 <라디오와 모형>에 실리는 전자회로도나 여러 전자공학 관련 내용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것저것 만들어 보는 일 자체가 재미있었다. 뜨거운 납땜 인두에 입술을 데어 상처가 나면 “건달과 한판 뜨다가…”라고 뻥을 치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 알게 된 검파니 동조니 증폭이니 하는 전자통신공학의 초보적인 내용은 지금도 유용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검파용 게르마늄 다이오드 두 개와 크리스털 이어폰 하나, 이렇게 단지 3개의 부품만 있으면 라디오가 된다. 배터리도 필요 없다. 대규모 재난이라도 일어나면 이 간단한 라디오가 요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운상가는 80년대 후반 용산전자상가가 생기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한때는 ‘인공위성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으로 주목받던 우리나라 전자산업 소매 유통의 총본산이었지만, 컴퓨터 시대와 용산전자상가 확장이 맞물리면서 지금은 사실상 20세기의 과학기술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원래 전면 철거와 재개발 계획이 있었다가 취소되었고, 지금 세운상가는 리뉴얼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이에 앞서 서울시에서는 세운포럼이라는 자문 기구를 작년까지 운영했는데, 여기에 참여하여 ‘전자박물관’ 아이디어를 제시할 기회가 있었다. 피시나 게임기,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뭘 하고 놀았냐고 아이가 물으면, 데리고 가서 보여 줄 이런 박물관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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