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MRI 램프는 꺼진 상태였다가 특정 생체인자를 만나면 켜진다.(왼쪽) 질병 조직만 선택적으로 밝게 촬영할 수 있다. 기존 MRI 조영제는 항상 신호가 켜져 있어 병변 부위와 정상 조직 사이의 구분이 어렵다.(오른쪽) 나노의학연구단 제공
질병 부위를 정확히 찾아내 강한 자기공명영상(MRI) 신호를 보내는 ‘나노 MRI 램프’가 개발됐다. 기존 MRI가 대낮에 램프를 비추는 것이라면 이 장치는 밤에 램프를 비춰 병변 부위를 찾아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연구단(단장 천진우 연세대 화학과 특훈교수)은 6일 “자성물질들의 간극에 따라 MRI 신호가 변하는 자기공명튜너(MRET) 현상을 처음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기존 MRI 신호보다 10배 밝은 신호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연구팀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머티리얼스> 7일치에 실렸다.
‘나노 MRI 램프’는 엠레트를 기반으로 작동하는데, 나노자성물질과 생체인자 인식 물질, 상자성물질 등 3중 구조로 돼 있다. 상자성물질은 외부에 자기장이 있을 때만 자기적 성질을 나타내는 물질로 MRI 신호를 증폭시켜 조영효과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이 상자성물질이 나노자성물질과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로 가까이 있으면 외부에 자기장이 있어도 자기적 성질을 띠지 않지만 10나노미터 정도 떨어지면 가장 밝게 빛난다. 이것이 자기공명튜너 현상이다. 연구팀은 나노자성물질과 상자성물질 사이에 생체인자 인식 물질을 끼워넣어 둘 사이가 가까이 있도록 램프를 만든 뒤 암에 걸린 실험쥐 생체에 집어넣었다. 이 램프가 쥐의 암 부위에 다가가자 그곳에 형성돼 있던 특정 생체요소에 생체인자 인식 물질이 결합해 떨어져 나가고 나노자성물질과 상자성물질 사이가 벌어지면서 MRI 신호가 강하게 나왔다. 이를 MRI 장치로 촬영하니 병변 부위만 잘 보여주는 분해능 높은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
연구팀이 실험에 이용한 건 암 전이 인자인 엠엠피-2(MMP-2)와 결합하는 펩타이드이다. 나노자성물질-펩타이드-상자성물질로 이뤄진 나노 MRI 램프 조영제는 암 부위에서만 강한 MRI 신호를 내보냈다. 천진우 교수는 “기존 MRI 조영제는 생체인자와 상관없이 항상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병변 부위와 정상 조직 사이의 대조도가 낮아 판독이 어려웠다. 나노 MRI 램프는 병든 조직을 주변 조직보다 최대 10배 밝게 보이게 하는 고감도 영상을 생산해낸다”고 말했다.
상자성물질이 나노자성물질과 가까이 있을 때 신호가 약해지는 현상은 상자성물질 안에 있는 전자스핀의 움직임(전자스핀요동)이 나노자성입자의 간섭을 받아 발생한다. MRI 장치는 불안정한 상자성물질의 전자스핀 요동이 빠를수록 물 분자 안의 핵 스핀이 이완돼 MRI 신호가 켜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연구팀은 나노자성물질로 이 신호를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스위치를 만든 것이다.
천 교수는 “나노 MRI 램프를 이용하면 주사로 조직을 떼어내는 생검같은 침습적 조직검사 없이도 암 관련 질병 인자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생체인자 인식 물질만 바꿔주면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양한 염기서열의 유전자나 단백질, 화학분자, 효소, 금속, 산도(pH), 활성산소 등을 MRI 장치로 영상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나노의학연구단 연구팀. 천진우 교수, 논문 제1저자인 김수진 연구원, 참여저자인 신태현 연구원.(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