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방한한 미국 핵전문가 프랭크 폰히펠
‘파이로 왜 불필요하고 위험한가’ 강연
‘우라늄 고갈로 가격 오를 것’ 예상 틀려
고비용 고속로 운영 성공한 나라 없어 “트럼프도 ‘재처리·원전확대 불가’ 예상”
핵폐기물 ‘건식저장뒤 지하처분’ 제안 폰히펠 교수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건너온 유대인 가문으로, 아버지·삼촌·형제가 모두 학자다. 그는 애초 순수물리학자의 길을 걸었으나 1970년대 베트남전을 둘러싼 논쟁을 계기로 사회참여 과학자로 변신했다. 79년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주민들에게 ‘요오드정’을 나눠줘야 한다고 가장 먼저 지적하고, 이를 계기로 원자로 격납용기에 여과배기계통을 설치해 폭발 위험을 방지할 것을 주장했으나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등 원자력계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그의 제안을 무시했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원전의 수소폭발 사고는 그의 주장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증명했다. 폰히펠 교수는 ‘핵확산 저항성’이라는 말을 처음 제안하는 등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재처리금지 핵비확산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93~94년 클린턴 정부 초기에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 부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6년 국제핵분열성물질에 관한 패널(IPFM)을 창설해 핵군축, 반핵무기, 반재처리, 반고속로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날 강연 주제인 파이로프로세싱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연구개발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의 하나로, 원전에서 태우고 남은 핵연료를 고온에서 전기화학적으로 처리해 고속로에서 연료로 재사용하려는 기술이다. 폰히펠 교수는 “2001년 딕 체니 부통령은 ‘기존의 재처리 방식보다 파이로 방식이 핵비확산성이 더 높다고 주장하며,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공동으로 파이로프로세싱을 개발하게 해달라’는 에너지국(DOE) 원자력연구소의 제안을 승인했다. 그때 원자력연구소는 파이로 방식으로는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핵무기 원료용으로 분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다호 국립원자력연구소에서도 5년 동안 파이로프로세싱으로 25톤의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6년 동안 겨우 5톤만 처리했을 뿐 막대한 비용만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고속로 건설 계획은 미래에 대한 잘못된 예측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미국에서 50년대에는 에너지 수요가 10년마다 2배씩 늘어날 것으로 봤는데 지금 에너지 수요는 60년대의 2배로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60년대 미국 원자력계는 향후 원자력이 에너지 수요의 100%를 감당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현재 원자력은 미국 에너지의 20%, 세계의 10%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사용하려는 계획도 우라늄의 고갈과 가격 상승을 우려한 데서 비롯됐지만 원전 증가 속도가 예상을 훨씬 벗어나고 우라늄 채굴량도 줄어들지 않아 우려한 가격 폭등이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원전의 전기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에서 우라늄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1%밖에 안 된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고속로에서 사용해도 2%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전체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은데다, 오히려 발전단가는 비싸지는데 고비용 시설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고비용에 위험성이 높아 고속로 건설에 관심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프랑스의 고속로 슈퍼피닉스는 개발에 100조원이 들어갔지만 8% 가동 뒤 폐쇄되고, 일본의 몬주도 20년 동안 1%만 가동한 채 지난해 말 폐쇄 결정이 났다. 영국도 2018년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다. 중국은 2011년 파일럿 고속로를 가동했지만 소규모로 20㎏의 플루토늄을 생산한 뒤 편익이 적다고 판단해 중단한 상태다. 러시아 정도만 계속 가동을 하고 있지만 15건의 소듐고속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폰히펠 교수는 “오바마 정부는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가 필요없다는 결론을 유지해왔다.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이 원전 정책에서 오바마 정부 노선을 바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용후핵연료 직접처분장인 유카산 건설을 다시 시동하거나 기존 원전을 유지는 하겠지만 새 원전을 짓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저비용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은 핵폐기물을 건식용기에 저장한 뒤 지하 깊이 신중하게 공학적 방벽으로 설계된 처분장에 묻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한국 원자력계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확보하기에 국토가 너무 좁다고 주장하지만 월성원전에는 이미 7000톤의 건식저장 시설이 있다. 이는 경수로 사용후핵연료 누적량과 같은 용량이다. 미국 의회도 2006년 국립과학아카데미(NAS)에 의뢰해 ‘사용후핵연료를 5년 동안 수조에 저장해 냉각한 뒤 건식용기에 저장하고 다시 개방형 거치대에 보관하는 방안’ 보고서를 도출해놓고도 아무 조처를 하지 않다가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검토에 들어갔다”고 그는 덧붙였다. 대전/글·사진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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