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 “원자 하나에 1비트 입력 성공”
메모리카드 저장용량 10만배 늘릴 수 있어
메모리카드 저장용량 10만배 늘릴 수 있어
실리콘 반도체로 만든 메모리가 디지털 신호의 기본 단위인 1비트를 구현할 때 10만개의 원자가 필요하다. 원자 하나로 1비트를 구현하면 크기는 메모리 크기는 10만분의 1로 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저장용량이 10만배로 늘어난다는 얘기다. 실현만 된다면 지금까지 나온 모든 영화를 유에스비(USB) 메모리카드 한개 크기의 칩에 모두 담고도 남는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8일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의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단장(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홀뮴(Ho) 원자 한 개로 1비트를 안정적으로 읽고 쓰는 데 성공해 연구논문이 과학저널 <네이처> 9일(현지시각)치에 게재된다”고 밝혔다. 미국·스위스·독일·한국 등 국제 공동연구에는 올해 1월 기초과학연구원에 단장으로 임명된 하인리히 단장이 공동교신저자로, 이번달 연구단에 합류한 최태영 연구위원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홀뮴은 원자번호 67번인 희토류 원소로 의료용 레이저나 분광기의 파장 보정용으로 쓰인다. 홀뮴은 한번 형성된 스핀이 오랫동안 지속하고 두 원자가 1나노미터(㎚·10억분의 1m) 간격으로 가까이 있어도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성질이 최근 밝혀졌다. 스핀이란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가 원자 내부에서 만드는 자성으로 인해 원자 외부에 생긴 자기장으로, 위 또는 아래의 방향성을 가진다. 컴퓨터나 모바일 등에 쓰이는 저장장치는 모든 정보(신호)를 2진수의 0과 1로 바꿔 기억하는데, 그 디지털 신호의 최소 단위를 비트라 한다. 원자의 스핀을 이용해 이 비트를 구현할 수 있다.
지금의 실리콘 기반 메모리들은 더 작고, 더 빠르며, 소비전력은 더 낮은 전자소자를 구현하는 데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반도체 업체들은 5나노미터를 소자 선폭의 한계점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인텔은 5나노미터 이하급의 소자 소형화를 더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인텔의 최신 중앙처리장치(CPU) 제조공정의 선폭은 14나노미터이다.
연구팀은 미국 아이이엠(IBM) 알마덴연구소의 주사터널링현미경(STM)으로 조작해 산화마그네슘 기판 위에 놓인 홀뮴 원자가 위와 아래 방향 중 하나의 스핀을 갖도록 했다. 스핀이 위 방향일 때와 아래 방향일 때 전류 크기가 달라 이를 측정하면 원자의 스핀을 읽을 수 있다. 연구팀은 또 홀뮴 원자 옆에 철 원자를 놓아 홀뮴 스핀을 읽는 원격 센서로 활용했다. 홀뮴 원자 자체가 자석으로 작동해 홀뮴이 만드는 자기장은 철 원자의 스핀을 반대방향으로 만든다. 이것을 전자스핀공명(ESR) 장치로 측정하면 홀뮴 원자의 스핀을 읽을 수 있다. 홀뮴 원자가 만드는 자기장을 감지해 디지털 신호를 읽은 방식은 현재 하드 디스크가 정보를 읽은 원리와 유사하다. 연구팀은 홀뮴 원자 2개로 모두 4가지의 전자스핀공명 신호를 구분지어 읽는 데도 성공했다.
홀뮴 원자들은 1나노미터 간격으로 밀집해도 서로 영향을 주지 않기에 원자를 촘촘히 배열하면 저장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홀뮴 원자 지름은 0.175나노미터, 철 원자 지름은 0.126나노미터이다. 이번 연구는 절대온도 1.5K(영하 271.5도)인 극저온 상태에서 이뤄졌으며, 연구팀은 8K까지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하인리히 단장은 “홀뮴 원자들이 근접해도 스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이유를 규명하고 좀더 높은 온도에서 재현하는 것이 향후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두 가지 스핀 상태가 공존하는 양자 제어가 가능해지면 양자컴퓨팅을 위한 큐비트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기초과학연구원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의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단장(오른쪽)과 최태영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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