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득량면 보성표준기상관측소에 설치된 높이 307m의 종합기상탑.
나는 남쪽바다가 고향인 갈매기 ‘갈라임’이다. 집주소는 전남 보성군 득량면 1번지. 우리 마을은 1940년대 일제시대에 원래 바다(득량만)였다. 어느날 사람들이 물 속에다 흙을 퍼 붓더니 널따란 들판(간척지)이 생겼다. 5년 전 들판 한가운데서 철근 쌓기 공사가 시작됐다. 며칠 먼 바다로 마실을 다녀오니 그새 허허벌판에 높다란 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하늘 높이 날다 앉아 쉬기 딱 알맞아 친구들도 불러들였다. 하루는 사람들이 탑 중간중간에다 긴 막대를 꽂더니 우리가 앉기 편하게 발판까지 마련해줬다. ‘웬떡이냐’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다음날 보니 거북선 송곳마냥 삐죽삐죽 한 걸 박아놓았다. 그래도 잘 피해서 앉아보려 하다 경악을 했다. 그 높은 곳까지 뱀이 올라와 있었다. 다음날부터 나 갈라임은 철근탑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새들이 풍향계 등 기상관측 장비에 앉으면 자료에 편차가 생겨 못 쓰게 됩니다. 끝이 침처럼 생긴 뾰족한 끈을 묶어놓고 가짜 뱀도 붙여 놓아 새들을 쫓습니다. 시정계를 가리는 거미줄을 치우거나 해 뜨기 전에 일사계의 물기를 닦아주는 것도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첫번째 임무입니다.”
지난 18일 보성 표준기상관측소 부지에 설치된 307m의 종합기상탑 아래서 박영산 관측소장(국립기상과학원 연구관)은 “이곳은 삼면이 바다로 싸여 있고 남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어 다양한 기상현상을 관측할 수 있는 최적지이다. 바람·기온의 성질이 균질하고 산과 주거지, 해안이 있는 전형적인 지역이다. 고도마다 다른 대기환경의 특성을 분석하고 이들 자료를 반영해 수치모델을 검증하고 개선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관측탑은 63빌딩(해발 264m)보다 조금 높고, 에펠탑(50m 안테나 포함 324m)보다 조금 낮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관측탑(IAP·325m)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관측소 부지는 약 15만5천㎡(4만7천평)에 이르는데 넓은 터에는 흔한 갈대 하나 없이 기상탑만 우뚝 서 있다. 박 소장은 “이곳은 세계기상기구(WMO)의 기상측기 및 관측법 위원회(CIMO)가 지정한 시험관측소다. 세계 표준이 되는 관측자료를 생산해야 하기에 측정값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날도 기상탑 주변에서는 한해 서너차례 실시하는 풀베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종합관측탑 11개 층계참에는 각종 기상관측장비들이 설치돼 있다.
탑에는 11개의 층계참(데크)이 설치돼 있고 각 층계참에는 관측붐이라는 5미터짜리 철근막대가 달려 있다. 이곳에 풍향·풍속계, 온·습도계, 적외선 가스분석기, 복사계, 기압계 등이 장착돼 있다. 향후에는 온실가스·대기오염 관측장비도 추가로 달 예정이다. 층계참은 처음 10m에 하나, 다음 20m부터 100m까지는 20m 간격으로, 이후 300m까지는 40m 간격으로 설치됐다. 삼각형 구조로 된 탑에 오를 때는 가운데 설치된 기어식 엘리베이터로 1분에 38m씩 8~9분 동안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박 소장은 “대기는 열을 많이 흡수하지 못해 해가 뜨면 가열된 지면이 공기를 데운다. 날씨는 수평방향의 차이보다 연직(수직)방향의 차이에 영향을 받는다. 관측장비를 지면 가까이에 촘촘히 놓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표준관측소 입구 벽에 설치된 기상실황에는 층계참 높이별로 풍향·풍속·온도·습도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한여름 날씨를 보인 이날 오후 4시55분 10m의 온도는 25.5도, 100m 24.5도, 300m 22.5도로, 교과서에 나오는 기온감률(대류권에서 100m 높이 올라갈 때마다 평균 0.5~0.6도 낮아지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박 소장은 “낮에 습도가 높으면 0.5도 차이, 지금처럼 건조하면 1도 차이가 100m 간격으로 거의 일정하게 측정된다. 밤에는 지열이 빨리 식어 중간 높이 온도가 더 높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풍향은 낮에는 고도에 따른 변화가 적은 편이지만 밤에는 고도별로 전혀 다른 방향의 바람이 분다.
기상 관측용 드론. 온·습도 등을 측정하는 관측장비가 부착돼 있다.
기상청 산하 책임운영기관인 국립기상과학원은 300m 이상의 기상관측을 하기 위해 기상관측용 드론 활용을 연구하고 있다. 이날 관측소 마당에서는
드론 관측 시범(동영상)이 펼쳐졌다. 관측용 드론은 날개가 8개 달린 중량 4.1㎏의 제로사 회전익 옥토콥터로, 290g짜리 라디오존데 센서가 부착돼 있다. 현재 높은 대기권 기상관측은 라디오존데를 띄워 관측하지만 고도 1㎞ 구간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드론을 활용하면 대기경계층의 변화나 산악지역 기상 특성을 분석하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드론이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한정돼 있고 운행 시간도 15분 정도에 그쳐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남 목포 남항에 정박해 있는 기상관측선 기상1호.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싸여 있어 기후가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상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해수면 위의 해상 날씨뿐만 아니라 바다 속 환경변화도 실시간으로 관측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초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이다. 올해 들어 처음 영남 내륙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19일 전남 목포 남항에는 기상관측선 ‘기상1호’가 새벽 연안 관측임무를 마치고 입항해 있었다. 기상1호는 지난 2011년 5월30일 인천항에서 취항했다. 지금은 공공용 선박 전용 선착장인 목포 남항을 기항지로 삼고 있다. 498톤급인 기상1호는 길이 64.3m, 너비 9.4m의 선박으로 20여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서해·남해·동해를 수시로 오가며 기상관측 활동을 하고 있다. 최장 25일 이상 연속항해가 가능하다. 한해 평균 170여일 동안 운항한다. 지난해에는 187일 동안 약 3만㎞를 운항했다. 지금까지 가장 긴 항해기간은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77일 동안 특별관측을 한 것이다.
기상1호에서 쏘아올린 라디오존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기상1호에는 온통 기상관측 장비들이 붙어 있었다. 해상 관측용 존데를 쏘아올리는 고층기상관측장비(ASAP), 파랑·파고계, 선박용 자동기상관측장비(AWS), 부유분진측정기(PM10), 해수수온염분측정기(CTD), 초음파 해류관측장비(ADCP) 등등. 이날 세월호가 누워 있는 목포 신항 쪽으로 운항한 기상1호는
라디오존데를 쏘아올리는 시범(동영상)을 보였다. 고층기상관측장비의 문이 삐끔히 열리더니 하얀 풍선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일순간 떠오른 풍선은 기상장비를 매달로 순식간에 파란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기상1호는 12시간 간격으로 하루 두차례 라디오존데를 쏘아올린다. 옆에서는 승무원들이
해수수온염분측정기(동영상)를 바다에 집어넣고 있었다. 10여개의 물병이 달린 이 장비는 수심 3000미터까지 잠기면서 층별 수온·염분·용존산소·압력 등을 측정한다.
종합기상탑 300m 층계참에서 내려다본 득량면 일대. 좌우에 풍향계, 부유물질측정기, 시정계 등 기상장비들이 보인다.
지난 19일 기상1호가 목포 연안을 운항하는 중에 멀리 목포신항 선착장에 누워 있는 세월호가 포착됐다.
류동균 기상1호 선장이 선박에 장착돼 있는 기상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동균 기상1호 선장(국립기상과학원 해양수산사무관)은 “해상 고층관측 자료는 수치모델에 입력돼 예보 정확도를 개선하는 데 활용된다. 해상 관측용 드론이 개발되면 관측 간격을 줄여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라디오존데 한번 쏘는 데 35만원이 드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상1호는 지난해 5월 한-미 협력 대기질 공동조사에 참가해 인천과 목포 사이를 날마다 한번씩 오가며 서해상 대기오염 상태를 조사하고, 여름 이상 고온현상과 함께 중국 양쯔강에서 유출된 강물로 인해 서해 표층수의 저염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관측하기도 했다.
보성·목포/글·사진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