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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스트레스 받으면 왜 배탈이 날까

등록 2017-07-03 11:03수정 2017-07-03 11:12

장-뇌 사이를 이어주는
장내 미생물·세포가 원인일 수도
단맛에 기분 좋아지는 것도 마찬가지

호르몬 분비량과 관련성 드러나
왜 이런 연결 축이 생긴 것일까
상호작용 비밀이 벗겨지고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힘들 때 달콤한 음식을 먹으면 왠지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장에 탈이 나기도 한다. 잘 어울리지 않을 듯한 장과 뇌가 실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들이 최근 몇 년 새 잇따르고 있다. 전문 용어도 생겼다. ‘장-뇌 연결축’(gut-brain axis)이라는 개념은 장과 뇌 사이에 생체신호를 주고받는 ‘정보 고속도로’가 존재함을 말해준다.

산모의 장내 미생물과 태아의 신경망 발달을 연구해온 허준렬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의대 교수는 “장내 미생물(세균)이 장 신경망 또는 뇌에 영향을 주는 과정, 또는 뇌 활성이 직접 또는 면역세포를 통해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주는 과정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연구를 통해, 장내 미생물과 세포들이 장과 뇌의 소통에서 하는 중요한 역할들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장내 미생물이 뇌에 영향 주는 경로

장과 뇌의 소통이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주요한 관심 대상이 된 건 최근이다. 2011년 장내 미생물 종 구성의 차이에 따라 실험 쥐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연구 보고가 나온 이래 이런 주제의 연구가 활발해졌다. 장내 미생물을 없앤 이른바 ‘무균’ 쥐와 장내 미생물을 지닌 보통 쥐 사이에 나타나는 행동이나 질환 차이를 관찰해, 특정 장내 미생물이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주로 연구돼왔다. 그러면서 장내 미생물이 뇌 기능에 관여하는 매개 과정도 어느 정도 밝혀졌다.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은 장과 뇌의 소통을 이어주는 매개물질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세로토닌은 뇌에서 기분을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 몸에서 세로토닌의 90%가량은 장내에 1% 정도로 드물게 분포하는 특정 내분비 세포(‘EC 세포’)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장내 미생물도 세로토닌 분비량에 영향을 준다는 실험 결과들이 최근 나왔다. 2015년 미국 칼텍 연구진은 ‘무균’ 쥐에서는 세로토닌 생산이 뚜렷이 줄어들었으며, 특정 미생물을 무균 쥐의 장에 넣으니 세로토닌 분비가 다시 늘고, 보통 쥐에서 장내 미생물을 모두 없앴더니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생물학술지 <셀>에 발표된 이 연구는 장내 미생물의 대사산물이 장내 내분비 세포에 작용해 세로토닌 분비에 영향을 주고, 그럼으로써 뇌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다양한 미생물 종들의 장내 분포를 보여주는 그림과 여러 장내 미생물 종의 현미경 영상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학교, 위키미디어코먼스 제공
장내 미생물의 분비물(대사산물)이 면역세포를 자극해 뇌에 영향을 주는 신호분자인 사이토카인을 분비하도록 하는 데에도 관여한다는 연구도 보고되고 있다. 장내 미생물의 영향을 받는 장내 환경이 우울, 불안, 자폐증상 같은 정신건강 상태와 연관된다는 연구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장내 미생물이 동물 생장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이원재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는 “결국 어떤 생화학 물질을 통해 장에서 뇌로 신호를 보낸다는 것인데, 그 신호의 정체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면서도 “장내 미생물이 직접 만들거나 장내 세포와 대사물질을 주고받으면서 만들어내는 물질이 알츠하이머나 퇴행성 뇌질환과도 깊이 관련될 수 있다는 것이 최근 동물실험 결과들”이라고 전했다.

‘소통 역할’ 세포들 메커니즘에 주목

장내 특정 세포들이 주변 신경세포와 소통해 뇌에 정보를 전달하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새로운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의 신경과학 연구진은 최근 <셀>에 낸 논문에서, 세로토닌을 만들어내는 내분비 세포들이 장내에서 특정 물질을 감지하면 그 정보를 주변 신경세포에 직접 전달해 뇌에 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런 연구 결과에 대해 허준렬 교수는 “장내 세포가 음식이나 장내 미생물의 자극을 감지해 이를 신경세포에 전달하고 결국에 뇌에도 알려줄 수 있다는 메커니즘을 세포 수준에서 밝혀낸 연구”로 평하면서 “장내 세포와 면역 세포들이 함께 작용해 여러 신호를 신경 세포에 전해준다는 연구들이 최근 여러 실험실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장과 뇌 사이엔 왜 연결축이 생겼을까? 생존에 꼭 필요한 음식물을 다루는 소화기관의 정보라면 뇌가 어떤 식으로건 직접 관리해야 하기 때문일까? 캐나다 과학잡지 <더 사이언티스트>는 “연결망 덕분에 장내 정보는 몇분이 아니라 몇밀리초 만에 뇌에 전달될 수 있을 것이며, 예컨대 독을 먹었을 때 장 세포들이 이에 반응하고, 뇌가 곧 구토나 설사를 일으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것도 이런 연결 덕분일 것”이라는 해석을 전했다.

하지만 장내 미생물의 영향에 관해선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장내 미생물과 뇌 건강의 선후 관계와 관련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논란은 아직 다 풀리지 않았다. 또한 장내 미생물의 영향이 실험동물이 아니라 보통 사람 몸에선 어떻게, 얼마나 나타나는지도 더 밝혀져야 하는 문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이언 캐럴 연구진은 건강한 성인 91명의 장내 미생물 군집과 우울증, 스트레스, 불안감 등 정신건강 척도를 서로 비교해보니 둘 간에 의미있는 상관관계를 볼 수 없었다는 결과를 1월 과학저널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 연구가 주로 실험용 무균 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장과 뇌의 연결축은 점점 자세히 밝혀지고 있지만, 그 상호작용이 어떻게,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는 후속 연구들의 주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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