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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이름 없는 슈퍼돼지들과 다른 ‘옥자’의 운명

등록 2017-07-10 11:32수정 2017-07-13 18:22

[미래&생명] 동물 담당 기자들의 영화 ‘옥자’ 방담
어떤 동물은 먹히기 위해서 태어나고 어떤 동물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다. 영화 <옥자>에서 슈퍼돼지 옥자는 두가지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어떤 동물은 먹히기 위해서 태어나고 어떤 동물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다. 영화 <옥자>에서 슈퍼돼지 옥자는 두가지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가축’이면서 동시에 ‘반려동물’

모순적 존재의 슈퍼돼지 옥자는

육식시대가 만든 이상한 괴물

급진적 동물해방운동이나

과학기술 모두 해결책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대형 영화관이 상영을 거부하는데도 이보다 3배 이상의 상영관을 확보한 <트랜스포머>와 <리얼>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순위 3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뿌리고 있다. 그 비결은 뭘까. <한겨레>에서 동물을 주로 취재하는 기자들이 <옥자>를 함께 보고 지난 5일 대화를 나눴다.(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옥자>는 동물권 영화다

남종영 기자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았는지?

조홍섭 기자 유전자 조작 돼지를 둘러싼 과학영화인 줄 알았는데 동물영화였다. 봉 감독의 말대로 인간을 위해 동물이 대량생산돼 희생되고 있음을 알리는 영화로 보였다.

임세연 교육연수생(인턴기자) 옥자를 통해 동물에게 슬픔, 고통, 기쁨을 느끼는 인간성을 부여한 것 같았다. 동물과 사람의 간극을 줄이는 영화였다.

최우리 기자 반려동물을 키웠던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고 다 울지 않았을까. 주인공인 미자가 미국으로 끌려간 옥자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반려견을 잃었을 때의 기억이 났다. 동물권에 대한 교육영화 같았다.

조 슈퍼돼지 옥자를 통해 유전자변형생물체(GMO)에 좋은 이미지를 주었으니, 환경운동에는 반교육적일 수도 있겠다.(웃음)

남 친구도 없는 강원도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사는 미자가 10년 동안 함께한 옥자는 유전자변형생물체도, 사육 가축도 아닌 반려동물이었던 셈이다.

최 그러니까 이 영화는 대량생산되는 가축이면서 동시에 반려동물인 옥자라는 모순적 주체를 통해 현대사회의 육식 문제를 건드린 것 같다. ‘애완견을 안고 마트에서 돼지고기를 고르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냐’던 봉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옥자는 왜 먹힐 팔자 타고났나

임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이송되는 옥자를 두고 한 “이게 이놈이 타고난 팔자야”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가축은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 건가?

남 이런 ‘팔자’는 사실 오래되지 않았다. 공장식 축산이 생긴 지도 100년밖에 안 됐고 실험동물의 역사는 50~60년이다.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때문에 그런 ‘팔자’가 형성된 거다. 인간은 인간을 상대로 정치를 하지만 동물을 상대로도 정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반려동물, 농장동물, 실험동물, 야생동물이 있는데, 각각 인간이 정치(지배)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조 통계를 보니 한국인은 연간 24.1㎏의 돼지고기를 먹는다. 1인당 한 달에 2㎏을 먹는 셈이다. 1970년엔 1년 동안 먹은 양이다. 게다가 우리가 먹는 돼지는 거의 1년이 안 된 어린 것들이다. 돼지는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호기심도 많아 유럽에선 의무적으로 우리에 장난감과 진흙 목욕탕을 만들어 줄 정도다.

지난 5일 오후 <한겨레>에서 동물 기사를 쓰는 기자와 인턴기자가 모여 영화 <옥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른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홍섭, 남종영, 최우리 <한겨레> 기자와 임세연 교육연수생.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5일 오후 <한겨레>에서 동물 기사를 쓰는 기자와 인턴기자가 모여 영화 <옥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른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홍섭, 남종영, 최우리 <한겨레> 기자와 임세연 교육연수생.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남 돼지를 도살하는 모습을 두번 봤다. 돼지는 도살장에 내리자마자 꽥꽥 소리를 지른다. 다 아는 거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라타지 않으려고 버티다 전기봉 세례를 받는다. 구제역 때 생매장되는 돼지도 봤는데, 사방 1㎞가 돼지 비명으로 가득 차 며칠 동안 머리에서 그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영화에서 옥자는 반려동물이란 이유로 다른 슈퍼돼지를 남겨두고 도축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반려동물과 농장동물 사이의 차별인 셈인데, 그 장면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반영처럼 보였다.

최 미자의 어두운 표정에서도 옥자를 구했다는 기쁨과 다른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슬픔이 겹친 것 같았다. 우리가 먹는 돼지도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생명인데.

조 결국 옥자는 첨단기술이 낳은 괴물이 아니라 가축을 대량생산해 먹는 시대가 낳은 이상한 동물일지 모른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를 묻기 위해 만든 하나의 상징인 셈인데, 우리 주변엔 수많은 옥자가 있다.

동물해방운동은 성공할까

남 미자가 옥자를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동물보호단체인 동물해방전선(ALF)이 등장한다. 실제로 동물실험과 상품화에 반대해 활동하던 국제단체인데, 비합법적인 수단도 불사해 에코테러리스트 단체로 분류된다.

조 이런 서구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운동이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맞을까. 영화에서 토마토조차 재배와 운송 과정의 문제를 들어 먹지 않겠다는 한 활동가를 통해 이런 운동의 비현실성을 꼬집고 있기는 하다.

영화 ‘옥자’에서 나온 동물해방전선(ALF)은 실제 존재하는 단체로, 서구 동물권 운동의 급진주의를 대변한다.  에이엘에프닷컴 갈무리
영화 ‘옥자’에서 나온 동물해방전선(ALF)은 실제 존재하는 단체로, 서구 동물권 운동의 급진주의를 대변한다. 에이엘에프닷컴 갈무리
남 동물해방전선이 기대는 심층 생태주의는 생물체의 본원적 가치를 중시해 인간이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데, 이미 서구에서는 이론으로나 운동으로 파탄한 것으로 보인다. 농장이나 동물원을 습격해 동물을 풀어준다고 사회경제적인 제도를 바꿀 수 있나?

조 영국에서 가죽을 벗기려고 기른 밍크를 동물해방 단체가 습격해 풀어줬는데, 대부분은 고속도로에서 차에 깔려 죽고 살아남은 개체는 외래종으로 유해동물이 된 사례가 있다.

남 동물 학대를 막으려면 근본적으로 인구가 줄어야 하고, 이를 위해 아프리카에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많이 죽어야 한다는 도착적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동물해방 단체의 등장이 영화적으로 재밌어도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너무 단순화시켰다는 느낌을 준다.

조 공장식 축산을 환경친화적 축산으로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인간의 욕망을 줄이지 않고는 결국 슈퍼돼지와 같은 과학기술적 해결 방식을 찾게 될 것이다.

정리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임세연 교육연수생

[관련영상] | <한겨레TV> 대중문화 비평 ‘잉여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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