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생명] 조홍섭의 생태뉴스룸
향기를 맡으려 꽃에 코를 들이대다가 꽃 속에 들어앉아 있는 작은 거미를 발견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42종, 세계적으로 2155종이나 있는 성공한 거미 종류인 게거미다. 몸이 납작하고 옆으로 뻗은 다리가 꼭 게 모양이다. 꽃 속에서 발견하는 게거미 가운데는 몸이 희거나 밝은 빛을 띠는 것들이 많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자외선 반사해 꿀벌 유인
게거미는 매복 사냥꾼이다. 그물을 치거나 돌아다니는 거미에 비해 무언가 특별한 전략이 있어야 굶지 않는다. 함정을 파거나 위장을 잘하거나 유혹해야 한다. 꽃에 사는 게거미는 자외선으로 곤충을 유인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꿀벌 등은 게거미가 자외선을 반사하는 꽃을 더 좋아한다. 이런 능력을 어떻게 얻었을까.
브라질 등 국제 연구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와 유럽, 아시아에서 68종의 게거미 유전자를 분석해 얻은 결론은 애초 다른 데 살던 게거미가 서식지를 꽃으로 옮기면서 자외선 유혹 능력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은 세계 곳곳에서 독립적으로 여러 차례 진화했는데, 몸 색깔을 약간 바꾸어 자외선에 민감한 곤충을 유인하는 전략으로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진화> DOI: 10.1111/evo.13271
동족포식 이끄는 토마토의 화학전
꽃가루받이해줄 꿀벌을 게거미가 잡아먹으면 꽃은 손해를 본다. 그렇지만 식물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는다. 곤충의 습격을 받은 식물은 방어물질을 분비한다. 이 휘발성 화학물질이 늘어나면 잎은 갑자기 맛이 역해지고, 화학경보를 감지한 이웃 식물도 곧 맛이 없어진다. 널리 알려진 식물의 방어전략이다. 최근 이 효과를 극대화한 전략이 발견됐다.
토마토는 거염벌레 애벌레가 잎을 먹으면 메틸 자스모네이트란 방어물질을 낸다. 미국 위스콘신대 생태학자들은 토마토 잎에 이 물질을 여러 농도로 뿌리고 애벌레에 노출하는 실험을 했다. 놀랍게도 방어물질 농도가 높을수록 애벌레는 맛없는 잎 대신 동료 애벌레를 더 많이 잡아먹었다. 화학물질을 뿌리지 않은 잎은 잎맥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살포한 잎은 고스란히 남았다. 식물로서는 적끼리 서로 잡아먹으니 일석이조이다.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 DOI: 10.1038/s41559-017-0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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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외선을 반사해 여기에 이끌린 파리를 사냥한 게거미의 일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존 리치필드 제공
잎을 갉아먹는 거염벌레. 잎에 방어물질이 분비되면 동료를 향해 입맛을 다신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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