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의 핵심인 양자 프로세서(양자칩)는 양자 중첩 현상을 여러 방식으로 이용해 개발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이비엠과 구글이 초전도 회로에서 전자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개발 중인 양자칩, 그리고 이온 입자의 양자 현상을 이용하는 이온덫 양자칩. 왼쪽 연구원은 아이비엠 왓슨연구소의 백한희 박사. 위키미디어 코먼스, 구글, 아이비엠 제공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의 연구개발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먼 미래로 여겨지던 ‘양자정보 시대’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게 되리라는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양자통신은 정보를 빛보다 빠르게 보낼 수 있을까? 가정용 양자컴퓨터는 언제쯤이나 등장할까? 알쏭달쏭한 양자 원리를 이용한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의 궁금증 몇가지를 풀어봤다.
양자통신은 빛보다 더 빠를까? 널리 쓰이는 소인수분해 암호(RSA) 방식은 모두 양자컴퓨터에 의해 곧바로 깨질까? 가정용 양자컴퓨터는 언제쯤 등장할까? 양자컴퓨터가 발전하면 지금 컴퓨터는 사라질까?
양자물리학의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이라는 알쏭달쏭한 원리를 이용하는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이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기술로 자주 언론매체에 오르고 있다. 때로는 잘못된 이해나 성급한 기대도 나타난다. 양자정보 이론 연구자인 김재완 고등과학원 교수는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의 전망과 기대에는 당장 가능한 것과 먼 미래의 것, 불가능한 것들이 섞여 오해를 낳기도 한다고 말한다.
양자컴퓨터·통신 개발 어디까지 왔나
양자 연산 알고리즘과 더불어 양자컴퓨터를 이루는 핵심인 양자 프로세서(양자칩)의 성능 향상 연구는 현재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해외 보도를 보면, 올해에 49큐비트 성능의 양자칩을 선보이겠다고 공언한 구글은 요즘 20큐비트 양자칩을 시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비엠은 16, 17큐비트급 양자칩 ‘큐’(Q)를 개발해, 그 일부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 개념의 양자칩을 개발 중이다.
큐비트란 무얼 말할까? 양자칩 성능을 나타내는 단위인 큐비트는, 0과 1의 비트 단위를 쓰는 디지털컴퓨터와 달리 0과 1이 존재하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양자 중첩’ 상태를 이용해 더 복잡하고 빠른 연산을 하게 하는 양자 연산의 단위이다. ‘중첩’은 원자나 분자 이하의 양자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빠르게 회전하는 전자 입자는 위 또는 아래를 향하는 회전운동량(스핀)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런데 실제 양자계에선 전자 하나에 두 스핀 상태가 동시에 겹쳐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전자를 제어하면 1개 전자를 1개 큐비트로 쓸 수 있다.
주로 광자(빛알갱이)의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하는 양자통신에서도 최근 큰 진전이 이뤄졌다. 선두는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 6월 지구 상공 양자통신위성 ‘모쯔’(묵자)에서 서로 얽힌 상태에 있는 광자 쌍들을 만들어 지상 2곳에 따로 보내고, 뒤이어 1200㎞ 떨어진 지상 2곳에서 양자 얽힘을 이용해 양자암호 열쇠를 상호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김 교수는 “연구개발이 매우 빠르고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올해는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이 이론이 아니라 실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자통신에서 정보는 빛보다 빠를까
양자통신에서 정보가 빛보다 빠르다는 얘기는 오래된 오해로 꼽힌다. 이런 오해는 양자 현상인 ‘양자 얽힘’을 정보 전송 자체로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한다.
‘양자 얽힘’은 양자세계에서 어떤 입자 하나에서 쪼개진 두 입자의 상태 사이에 짝을 이루는 상관관계가 있어, 둘을 멀리 떼어놓아도 상태의 상관관계가 유지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어느 하나의 상태를 측정하면 다른 쪽에 상관된 값을 남기고 얽힘은 끊어진다. 예컨대 ‘파이온’이라는 기본입자가 붕괴하면 전자(e-)와 양전자(e+)로 쪼개지는데, 이때 전자의 스핀이 위를 향한 것으로 측정되어 결정되면, 동시에 양전자의 스핀은 아래를 향하게 마련이다. 상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얽힌 양자 짝들을 서로 떨어뜨려 멀리 보내고서, 한쪽에서 양자 상태를 측정하면 ‘동시에’ 다른 곳의 양자 상태가 무엇인지도 결정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번 중국의 실험 결과를 두고 ‘정보가 빛보다 빠름이 입증됐다’는 해석이 퍼지기도 했다.
김 교수는 “잘못된 이해”라고 말했다. 그는 “2곳의 양자 상태가 빛보다 빨리 동시에 결정되지만 그 결과로 2곳에서 나누어 가진 것은 정보가 아니라 일종의 난수표 같은 양자암호 열쇠”라며 “양자암호 방식을 따로 알려주어야 하고, 암호화된 실제 정보를 기존 통신망으로 전송해야 하기에 정보가 빛보다 빠르다고 보는 건 오해”라고 말했다.
2017년 6월16일치 <사이언스> 표지에 실린 중국의 양자통신위성 ‘모쯔’(묵자).
양자컴 등장하면 ‘암호 대란’ 일어날까
널리 회자되는 얘기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현재 널리 쓰이는 소인수분해 암호 방식이 순식간에 모두 무력화되고 혼란에 빠진다는 우려이다. 그러나 지나친 걱정일 수 있다. 김 교수는 “디지털컴퓨터로 푸는 데 수백만년 걸릴 만한 소인수분해 암호를 양자컴퓨터가 쉽게 풀 수 있다는 것은 이론상 맞지만 여러 조건과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인수분해 암호의 숫자 길이를 늘일수록 양자컴퓨터가 암호를 푸는 데 걸리는 시간도 늘어난다. 또한 양자컴퓨터의 성능에 따라 달라진다. 양자컴퓨터라 해도 낮은 성능의 하드웨어와 알고리즘에선 암호 풀이에 수백년 걸릴 수 있다는 계산도 제시된 적이 있다.
김 교수는 “구글의 49큐비트 양자칩이 실현돼도 양자칩 내부의 오류 수정에 많은 큐비트 자원을 할당해야 하기에 논리 연산 전용 큐비트는 그만큼 적어질 것”이라며 “소인수분해 암호를 쉽게 풀려면 논리 연산 전용 큐비트가 100 정도는 돼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양자컴퓨터 성능은 계속 높아질 테고 언젠가 모든 소인수분해 암호를 쉽게 깨리라고 예측할 수 있기에, 이에 대비하는 움직임도 있다. 김 교수는 “국방·외교 문서처럼 매우 민감한 암호화 정보를 지금 풀진 못해도 보관했다가 나중에 양자컴퓨터로 풀 수 있기에, 소인수분해 암호의 사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이미 나온다”고 전했다.
디지털 컴퓨터를 대체할까
양자컴퓨터를 일반인이 쓸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현재로선 전망하기 힘들다. 넘어야 할 기술적 한계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자칩은 외부의 작은 영향도 받지 않아야 하기에, 소리나 진동, 열의 영향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설비가 갖추어져야 한다. 때로는 극저온 초전도 장치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엄청난 데이터베이스에서 빠르게 정보를 찾는 검색이나 소인수분해 같은 특정 문제 풀이, 자연의 양자물리 시뮬레이션 등에서 양자컴퓨터는 확실히 뛰어나다”면서도 “디지털컴퓨터가 해온 기능을 값비싼 양자컴퓨터가 대체할 이유는 아직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궁금한 점 하나 더. 양자암호는 결코 깨지지 않는다는데 왜 그럴까? 김 교수는 “양자암호는 일종의 난수표 암호처럼 보내는 쪽과 받는 쪽만이 알고, 게다가 복사할 수 없어 도청되면 흔적이 남기에 이론적으로 양자암호를 깰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도움말: 김재완 고등과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