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이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극적이고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 순간을 말한다. 픽사베이
요즘 인공지능이 붐을 이루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연구 성과, 사업 계획이 발표될 정도다. 일반인들의 관심도 급상승했다. 지난해 3월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받은 충격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구글을 통한 ‘인공지능’ 검색 빈도는 평소의 10배로 치솟았다. 알파고는 올해 중국의 커제마저 꺾더니 아예 바둑 은퇴를 발표했다. 최소한 바둑에서만큼은 인간과의 대결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세계 전기전자 전문가 35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전문가들은 50%의 확률로 45년 안에 모든 부문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고도기계지능이 출현할 것으로 내다봤다. 직업별로는 빨래 개기(2021년), 번역(2024년), 고교 에세이 작문(2026년), 트럭 운전(2027년), 유통 매장 점원 일(2031년)과 베스트셀러 집필(2049년), 외과수술(2053년) 순이었다.
인공지능 기술의 정점으로 거론되는 개념이 ‘특이점’이다. 옥스퍼드 대사전은 특이점을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이 발전해 인류가 극적이고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 가설적 순간”이라고 정의한다. 이 생소한 단어가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2005년 출간된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이다. 미국의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현 구글 이사)은 이 책에서 2020년대 말이면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을 구별할 수 없게 되고, 2045년에는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이 융합하는 특이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특이점이 오면 인간지능은 10억배 강해질 것”이라며 “고도 지능을 갖춘 컴퓨터가 뇌에 이식되고 클라우드와 연결되면서 인간 존재를 확장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특이점은 과연 올까? 온다면 언제 올까? 세계 최대 전기전자부문 전문가 단체인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가 커즈와일, 닉 보스트롬 등 이 부문 권위자로 대접받는 9인에게 “언제 컴퓨터가 인간 뇌와 같은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인지” 물었다. ‘곧, 2029년, 20~50년 뒤, 21세기 이내, 수백년’ 등 다양한 답이 나왔지만, 특이점이 언젠가 닥칠 것이라는 데는 대체로 수긍했다.
최근 <라이프3.0>이란 책을 출간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맥스 테그마크 교수는 특이점이 갖는 의미를 ‘지구 생명 역사의 제3단계’로 본다. 그의 이런 인식은 생명 개념을 ‘자기 복제 정보 처리 시스템’으로 규정한 데 따른 것이다. 이렇게 한 이유는 외계생명 등 다른 방식의 생명체 존재에도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다. 생명이 복제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원자의 배열 방식을 특정하는 정보다. 그는 이 시스템의 설계 능력에 따라 지구 생명 역사는 1단계 박테리아, 2단계 인간에 이은 3단계 인공지능 시대를 열 것이라고 내다봤다. 3단계의 인공지능은 생명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인문학자들이 논의의 장에 들어올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매년 세계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토론 주제를 던지는 토론 사이트 ‘엣지’는 2015년 올해의 질문으로 ‘생각하는 기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선정한 적이 있다.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이공계 과학·기술자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특이점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인문계 사회과학·철학자 등은 회의적이었다. 두 집단의 근본적 차이는 사람의 두뇌를 기계 장치로 볼 수 있느냐에 있다. 한쪽은 인간의 두뇌는 유한하므로 결국 작동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한쪽은 초지능은 물론 지능의 실체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은 그래서 특이점을 아직은 ‘아득한 먼 미래’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한다.
특이점의 도래와 그 시기를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만약에’라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특이점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 전과 후의 인류사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정대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철학> 2017년 여름호에서 이에 대한 철학적 고민의 일단을 피력했다. 특이점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특이점 로봇이 인간사회의 성원이 된다는 건 아직은 현실적 가능성보다 논리적 가능성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만일 그 가능성이 현실화된다면 준비되지 않은 인간 문화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들 수 있다. 따라서 특이점 로봇의 가능성은 회피할 문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다.” 정 교수는 그래서 특이점 로봇이 인간의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자연종 인간의 덕목에 대한 분석과 성찰을 토대로 로봇종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을 체계화하는 선제적 인문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런 주체성의 한 형식으로 “로봇이 인간을 해치지 못하도록 ‘자살 세포’ 같은 장치를 장착하면서도 인간을 돕거나 협동하는 조건 하에서 자연종 인간과 로봇종 인간이 공존하는” 질서체계를 제안했다.
‘특이점이 오느냐 아니냐, 언제 오느냐’라는 특이점 기술학을 넘어 언젠가 올 것에 대비한 ‘특이점 인문학’을 정립해야 할 때라는 인식이다. 준비된 인류에게 특이점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미래는 오지만, 밝은 미래는 준비된 자의 몫이 아닐까? 과거 과학 혁명들의 특징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기존 신념을 깨고 인간의 교만에 사망 선고를 내린 점이라고 한다. 미래의 특이점도 이 대열에 들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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