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했던 올봄 가뭄으로 바닥까지 바싹 말라붙은 충북 진천의 초평저수지. 죽은 물고기가 화석처럼 박혀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8월과 9월 대서양에서 잇따라 발생한 하비와 어마 등 초강력 허리케인이 미국과 카리브해 국가들에 큰 피해를 내면서 지구 온난화가 극한 기상 현상에 끼치는 영향이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폭염과 열파,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열대저기압(TC), 집중호우, 가뭄 등의 극한 기상 현상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실제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기후변화의 영향은 극한 기상 현상마다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해 심증은 가지만 과학적으로 높은 신뢰를 두지는 못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기후변화가 극한 기상 현상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과학자들이 현재 확실히 아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2013년 11월 필리핀과 베트남 등에서 6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에 상륙하기 전 최전성기의 인공위성 적외선 영상 사진. 미국해양대기청(NOAA) 제공
올여름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노루.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모습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기후변화가 열대저기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계의 연구는 기후변화가 진행되면서 허리케인이 북대서양을 통과하는 빈도는 줄지만 태풍이 북서태평양을 통과하며 한국과 일본에 타격을 주는 빈도는 증가할 것이라는 데까지 도달했다. 올해 1월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된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팀의 이 발견은 열대저기압의 발생 빈도는 변화가 없거나 줄어들고, 강도는 강화된다는 기존의 연구 결과에서 한발 더 나간 것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열대저기압에 작용하는 기후변화 영향에 대해서는 과학계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열대저기압 연구를 주도하는 과학자들로 구성된 세계기상기구(WMO)의 ‘열대저기압 기후변화 전문가팀’은 지난달 “기후변화가 하비와 같이 휴스턴 지역에 상륙해서 천천히 움직이는 태풍을 발생시킨다는 명확한 증거는 전혀 없다”고 발표했다. 전문가팀은 “관측 데이터에서 아직 변화가 분명히 확인되지 않는다”며 기후변화가 하비의 강우에 영향을 줬다는 것을 지금까지 확인된 대기 중 수증기에 대한 인간의 영향과 기후변화 모델, 허리케인에 대한 물리적 이해에 바탕을 둔 ‘추론’으로 규정했다.
이 전문가팀의 일원인 허창회 교수는 “대기 중 온도가 올라가면 포화수증기압이 높아져, 섭씨 1도 올라가는 데 수증기를 7% 정도 더 많이 포함할 수 있다. 기후모델도 이것을 뒷받침해 (기후변화가 하비의 강우 강도를 강화시켰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고 보지만, 실제 관측에서 보여주는 증거가 많지 않아 과학 하는 사람들로서는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초강력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텍사스주를 강타한 가운데 텍사스주 최대 도시 휴스턴이 지난 8월28일(현지시각) 물에 잠기자 구조보트들이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제5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AR5)는 ‘인위적인 기후변화로 1950년 이후 집중호우의 강도와 빈도가 증가했다’는 결론을 ‘신뢰도 보통’으로 평가했다. 가뭄과 열대저기압이 강력해졌다는 결론에 ‘신뢰도 낮음’ 평가를 내린 것에 비해 높은 신뢰도를 부여한 셈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극한 강우 현상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미국기상학회(AMS)가 지난해 말 펴낸 ‘기후변화 관점에서의 2015 극한 기상 설명’ 보고서를 보면, 2011년 이후 5년간 전세계에서 발생한 극한 강우를 다룬 24개 논문 가운데 62%가 인간의 영향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강우에 대한 기후변화의 영향이 작다기보다 강우의 자연적인 변동 속에서 기후변화 영향을 가려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 보고서의 해석이다.
지난해 7월 인간이 일으키는 지구 온난화가 태풍이 발원하는 적도 주변의 따뜻한 바다 ‘웜풀’ 확대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논문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바 있는 민승기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어느 지역의 강수라는 건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의 기후모델이 온난화로 수증기가 증가해서 강수량이 많아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기순환과 관련된 다른 효과들이 들어간 것들은 반대로 작용하기도 해서 종합해봤을 때는 인간의 영향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시스템 모델링 전문가 오재호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기후 현상 가운데 과학의 이해가 가장 부족한 부분이 강수”라고 말했다. 허창회 교수는 기후모델에서 강수를 잡아내는 것을 두고 “아직 넘사벽(넘을 수 없는 장벽)인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강수에 대한 이해 부족은 또다른 극한 기상 현상인 가뭄에서 기후변화 영향을 규명하는 작업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지난 8월24일 가뭄대책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보도자료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메가가뭄 발생에 대비하여 단계별 가뭄 대처 매뉴얼 작성 등 대응 방안도 마련된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메가가뭄이 발생한다고 국민들에게 알린 셈이다. 메가가뭄은 10년 이상 지속되는 대가뭄을 말한다.
지난 5월9일(현지시각) 케냐 와지르 아르가네 마을 주민 압둘라 무하메드(43)가 말라 죽어서 마을 외각에 버린 소와 염소 시체 앞에 서 있다. 소 7마리와 염소 40마리가 가뭄 때문에 죽었다. 와지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 보도자료에 언급된 것처럼 기후변화로 실제 한국에서 메가가뭄이 발생하게 될까? 오재호 교수는 “기후변화 예측모델에서는 한반도 메가가뭄 전망이 나온 것이 거의 없다. 사실 예측할 만한 메커니즘도 모르고 어떨 때 메가가뭄이 오느냐 하는 것도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가뭄은 극한 기상 가운데서도 특히 과학계가 기후변화와의 관련성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기 어려워하는 분야다. 미국기상학회가 2011년 이후 5년간 전세계에서 발생한 극한 가뭄을 다룬 논문을 검토해봤더니 자연적 변동을 뛰어넘는 기후변화 영향을 발견했다는 것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5 대 5로 양분됐다.
심지어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인간이 지난 세기 후반부 가뭄 위험이 증가하는 데 기여했다’는 결론에 대해 2007년 제4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AR4)와 2012년 극한 기상과 재해 위험 관리 특별보고서(SREX)에서 각각 ‘가능성이 없지 않음’(more likely than not)과 ‘신뢰도 보통’으로 매겼던 평가를 제5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AR5)에서는 ‘신뢰도 낮음’으로 되레 후퇴시키기도 했다.
민승기 교수는 “대부분의 스터디에서 기온이나 폭염 쪽으로는 인간의 영향이 잘 나오지만 강수량이 관련되고 가뭄 쪽으로 들어가면 인간의 영향을 찾기가 참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폭염와 열파는 기후변화 영향이 가장 잘 확인되는 극한 기상 현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극한 기상을 일으키는 다양한 요인 가운데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찾아내는 작업이 쉽지 않은 것은 분석할 기후모델의 한계, 모델에 넣을 관측자료 수집의 어려움, 모델을 돌릴 컴퓨터의 계산능력 부족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 한계는 아직 과학이 기후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허창회 교수는 “기후와 관련된 전체적인 물리역학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한계다. 지금 기후 수치모델로는 태풍도 모의하지 못해 태풍을 예측할 때는 모델에 태풍을 심어놓고 시작한다. 역학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모델 해상도를 높이고, 컴퓨터 능력을 높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후에 관련된 요소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과학의 이해가 부족한 부분으로는 구름이 꼽힌다. 구름은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반사해 온난화를 억제하기도 하고 지구에서 적외선이 방출되는 것을 막아 온난화를 조장하기도 한다. 오재호 교수는 “구름의 특성은 온도변화에 따라 계속 바뀌는데, 그런 변화는 아직 우리가 알 길이 없다. 이 구름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기후변화 영향 분석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과학의 대표적 난제”고 말했다. 집중호우나 가뭄 같은 강수와 관련된 극한 기상 현상에 끼친 기후변화 영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과학자들 스스로도 높은 신뢰를 두지 못하는 밑바탕에 변화무쌍한 구름이 있는 것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올여름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가 몰고 온 홍수를 피해 떠나고 있는 주민들. 로이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