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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정교화된 유전자가위…DNA 절단없이 염기 하나만 ‘바꿔치기’

등록 2017-11-06 09:36

[미래&과학] 주목받는 ‘염기편집’ 원리와 현수준

미 연구진, 새 유전자교정 도구 개발
DNA 가닥 절단 대신 특정 염기 교체
효소 이용해 점을 찍듯 표적만 공략
유전질환 치료 범위 대폭 확대 기대

6가지 변이 유형 중 2가지만 가능
표적 이탈 가능성 등 검증 거쳐야
임상시험 단계까진 수년 걸릴 듯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되 디엔에이(DNA) 두 가닥을 절단하지 않으면서 돌연변이 염기 하나만을 바꾸는 ‘염기 편집’은 안전하고 유망한 미래 유전자 치료술로 나아갈 수 있을까? 최근 잇따라 발표돼 기대를 부풀리는 염기 편집 기술의 원리와 현 수준의 한계를 짚어본다.

사람 세포 하나의 디엔에이(DNA)를 길게 한 줄로 늘이면 2m나 된다지만, 그 30억 염기쌍은 단 4가지 염기의 조합만으로도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유전정보를 만들어낸다. 4종 염기가 짝을 지어 결합하는 게 모든 지구 생명의 법칙이다. 아데닌(A)은 티민(T)과, 시토신(C)은 구아닌(G)과만 결합한다.

그런데 수백, 수천 개 염기쌍 배열(염기서열)로 이뤄지는 한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돌연변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중요한 지점에선 하나의 염기 돌연변이로도 해당 유전자의 기능이 크게 바뀌어 유전질환이 생길 수 있다. 아데닌이 있어야 할 중요 지점에 티민이 자리를 차지한다면, 이런 단일 염기 돌연변이(‘점 돌연변이’)가 ‘겸상 적혈구 빈혈증’이라는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질환을 일으키는 ‘점 돌연변이’의 염기 하나만을 교정할 수 있다면?

점 돌연변이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데 유용할 수 있는 ‘염기 편집’ 기술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디엔에이의 표적 지점을 찾아가는 유전자 가위 분자를 변형하고 거기에 염기 하나를 바꾸는 새로운 분자를 달아 작동하는 기법이다.

데이비드 류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디엔에이에서 C를 T로 바꾸는 돌연변이 염기 교정 기법을 처음 발표한 데 이어 최근 <네이처>에 A를 G로 바꾸는 기법을 새롭게 선뵀다. 펑 장 매사추세츠공대 교수 연구진은 아르엔에이(RNA)에서 A 염기를 비슷하게 바꾸는 기법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염기 편집 기법은 미래의 안전하고 유용한 유전자 치료술로 발전할 수 있을까?

흔히 디엔에이(DNA)는 생명 정보를 담은 ‘책’에 비유되곤 한다. 아르엔에이(RNA)와 디엔에이에서 특정 염기 하나만을 바꿔 쓰는 새로운 염기 편집 기법이 최근 잇따라 개발됐다. 염기 편집 기법이 아르엔에이와 디엔에이에서 염기 낱글자 하나를 교정할 수 있음을 표현한 그림들. 매사추세츠공대-하버드대 브로드연구소 제공
흔히 디엔에이(DNA)는 생명 정보를 담은 ‘책’에 비유되곤 한다. 아르엔에이(RNA)와 디엔에이에서 특정 염기 하나만을 바꿔 쓰는 새로운 염기 편집 기법이 최근 잇따라 개발됐다. 염기 편집 기법이 아르엔에이와 디엔에이에서 염기 낱글자 하나를 교정할 수 있음을 표현한 그림들. 매사추세츠공대-하버드대 브로드연구소 제공
디엔에이 절단 없이 염기 하나만 교정

염기 편집 또는 염기 교정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염기 편집을 연구하는 김대식 서울대 박사후연구원(화학부)은 “기존 유전자 가위 분자는 표적 지점에서 디엔에이 두 가닥을 모두 절단해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없애거나 다른 유전정보를 끼워넣어 형질을 바꾸는 방식이기에 점 돌연변이의 교정에선 효율이 떨어졌다”며 “절단 없이 염기 하나를 교체한다는 점에서 염기 교정 기술은 점 돌연변이 유전질환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류 교수 연구진은 논문에서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점 돌연변이 지점이 인간 디엔에이에서 3만여곳에 달하는데 지금까지 개발된 디엔에이 염기 편집 기법이 적용될 수 있는 유형의 점 돌연변이들이 60%로 넓어졌다고 말했다. 아직은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염기 편집 기술이 다룰 수 있는 유전질환의 범위가 대폭 넓어졌다는 것이다.

또다른 염기 편집 기법으로는, 유전자 가위 분야에서 선도적인 펑 장 교수 연구진이 비슷하게 디엔에이를 직접 교정하지 않고서 디엔에이 정보와 단백질 생성 과정 사이에 존재하는 아르엔에이에서 염기를 바꿔치는 기법을 개발했다. 원본인 디엔에이를 직접 교정할 때엔 디엔에이에 다른 부작용을 영구적으로 남길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일시적 교정인 아르엔에이 염기 편집이 좀 더 안전한 기법으로 평가되지만, 이 역시 아직 초기 연구단계다.

흔히 디엔에이(DNA)는 생명 정보를 담은 ‘책’에 비유되곤 한다. 아르엔에이(RNA)와 디엔에이에서 특정 염기 하나만을 바꿔 쓰는 새로운 염기 편집 기법이 최근 잇따라 개발됐다. 염기 편집 기법이 아르엔에이와 디엔에이에서 염기 낱글자 하나를 교정할 수 있음을 표현한 그림들. 매사추세츠공대-하버드대 브로드연구소 제공
흔히 디엔에이(DNA)는 생명 정보를 담은 ‘책’에 비유되곤 한다. 아르엔에이(RNA)와 디엔에이에서 특정 염기 하나만을 바꿔 쓰는 새로운 염기 편집 기법이 최근 잇따라 개발됐다. 염기 편집 기법이 아르엔에이와 디엔에이에서 염기 낱글자 하나를 교정할 수 있음을 표현한 그림들. 매사추세츠공대-하버드대 브로드연구소 제공
디엔에이 복구시스템 속여 염기 바꿔치기

어떤 원리로 단일 염기 편집이 가능해진 걸까? 류 교수는 지난 9월 말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기자간담회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세포를 속이는 기술”이라고 연구 과정의 뒷얘기를 전했다. “어떻게 염기 하나만을 바꿀 수 있을까, 고민이 컸죠. 돌연변이 염기를 변형할 때 세포가 이것을 ‘손상’이라 여기면 변형된 걸 없애고 디엔에이를 다시 복구해버릴 테니까요. 그래서 세포가 자연적인 변화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염기 변환 과정을 좇아가보자. 돌연변이인 A-T 염기쌍을 G-C 염기쌍으로 바꿔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A 염기분자의 화학구조에서 ‘아미노기’라는 성분을 빼면 G와 거의 같은 이노신(I) 염기가 된다. 이런 작용을 하는 효소를 염기 편집 복합체에 달아 세포핵에 넣어주면, 표적 지점에 있는 A에서 아미노기를 떼어내 A를 이노신으로 변형한다.

동시에 염기 편집 분자는 디엔에이 한 가닥만을 살짝 자른다. 자, 이제는 세포가 손상된 디엔에이를 스스로 복구하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차례다. 세포는 잘리지 않은 가닥에 있는 이노신을 ‘기준’으로 삼아 잘린 가닥의 복구에 나선다. 세포는 이노신을 구아닌(G)으로 인식해 그 염기 짝을 T에서 C로 바꾼다. 세포 분열을 몇 차례 거치면서 애초의 A-T 염기쌍은 G-C 염기쌍으로 바뀐다. 절반은 염기 편집 분자가 한 일이고, 절반은 세포의 디엔에이 자동복구 시스템이 한 일이다.

류 교수는 지난해엔 돌연변이 C-G 염기쌍을 T-A 염기쌍으로 교정하는 기법을 처음 선봬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 연구에선 훨씬 더 어려운 기법인 ‘A-T 염기쌍을 G-C 염기쌍으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해 염기 편집 도구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유전자치료술까진 넘어야 할 산 많아

염기 편집은 벌써부터 미래의 유전자 치료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연구자들 사이에선 염기 편집이 이제 첫발을 뗀 수준이며 갈 길이 아직 멀다는 반응이 많은 편이다. 김진수 서울대 교수(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염기 교정 기법은 의미가 큰 성과이지만 현재로선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상 염기 A와 돌연변이 A가 섞여 있거나 인접해 있는 경우(‘AAA’처럼), 돌연변이 A만을 식별해 교정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점 돌연변이 염기쌍의 유형이 모두 6가지인데, 현재로선 2가지 교정 기법만 나온 상태다. 나머지 4가지의 경우엔 염기 변환을 일으킬 분자(효소)를 자연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난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더 큰 문제로, 염기 편집 분자가 표적 지점 이외의 다른 염기까지 건드리는 이른바 ‘표적 이탈 효과’를 얼마나 일으키는지가 새로운 염기 편집 기법에선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표적 이탈 부작용이 있다면, 돌연변이 염기는 교정되더라도 다른 곳에 또 다른 변이가 생기기에 현재로선 임상 적용 가능성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염기 편집 분자를 세포핵 안에 쉽게 전달하는 기법도 개발돼야 한다.

펑 장과 류 교수는 염기 편집이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데엔 몇 년 걸릴 것이며 기존 유전자 치료술에 비해 더 나은지가 분명해지기까지는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고, <사이언스> 뉴스는 보도했다. 김형범 연세대 의대 교수는 “모든 유전질환의 유전자 치료는 지금의 염기 교정 기술로 어려울 듯하다”며 “일부 유전질환 치료가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 수도 있고 이런 연구를 주축으로 다른 유전질환으로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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