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신희섭 단장 연구팀은 생쥐들의 뇌에 전기자극을 주어 쾌감 보상을 하는 실험을 했다. 한 쌍의 쥐를 가운데 방에 놓았을 때 왼쪽에 불이 들어오고 한 쥐가 왼쪽 방으로 가면 전기자극으로 쾌감을 보상받는다. 이때 다른 쥐가 그쪽 방으로 들어오면 자극이 끊어진다. 이를 반복 실험하자 생쥐들은 왼쪽, 오른쪽 담당을 서로 나누고, 한쪽 방에 한 쥐가 들어갔을 때 다른 쥐가 방해하지 않는 ‘사회적 규칙’을 만들어 지켰다.
생쥐들이 눈앞에 놓인 당장의 이익을 참아내고 스스로 세운 규칙을 지켜 더 큰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산하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신희섭 단장 연구팀은 7일 “실험동물인 생쥐가 비용과 이익에 대한 사회적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실험을 통해 관찰한 결과 60%의 높은 확률로 규칙 준수에 따른 장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설치류에서 이런 행동 패턴을 관찰한 것은 처음이다”라고 밝혔다. 연구팀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8일(현시시각)치에 실렸다.
갈등 상황에서 규칙을 만들어 질서를 지킴으로써 서로의 이익을 늘리는 이른바 ‘윈윈 전략’ ‘부르주아 전략’에 따른 행동은 나비나 실잠자리, 일부 거미 등에서 발견된 바 있다. 부르주아 전략은 자원에 먼저 도달한 개체는 자원을 누리고, 늦게 도달한 개체는 먼저 도달한 개체를 공격하지 않음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연구팀은 생쥐의 뇌신경(뇌측전뇌다발)에 무선으로 전기 자극을 줄 수 있는 장치를 해 ‘쾌감’ 보상 실험을 했다. 이 쾌감은 중독성이 없고 생쥐가 좋아하는 보상이다. 아크릴판으로 세 개의 방을 만들어 가운데 방에 무선 전극을 뇌심부에 심은 생쥐 한 쌍을 집어넣는다. 이 방에는 2개의 엘이디 조명이 달려 있고 무작위로 한쪽씩 켜진다. 왼쪽 엘이디 불이 들어왔을 때 한 쥐가 왼쪽 방으로 들어가면 5초간 전기 자극을 받아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5초가 되기 전 다른 생쥐가 그쪽 방으로 들어오면 전기 자극이 멈춰 쾌감도 중단된다. 생쥐들은 좌우 한쪽에만 엘이디가 들어온다는 점, 조명이 켜진 쪽 방에 들어가면 쾌감을 얻는다는 점, 상대방이 그 방에 뒤늦게 들어와 침범하면 쾌감 보상이 멈춘다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연구팀은 생쥐 19쌍을 데리고 하루에 한번씩 모두 20세션을 실험했다. 세션마다 20분 동안 40회의 실험이 진행됐다. 그 결과 생쥐들은 한 마리가 왼쪽 방에 들어가 쾌감을 받는 동안 그 방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다 오른쪽 방 조명이 켜지면 그쪽으로 가 쾌감 보상을 얻는 행동을 보였다. 두 곳 방을 서로 나누어 맡고, 상대방이 쾌감을 받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사회적 규칙’을 만든 것이다. 19쌍 가운데 약 60%(38마리 중 23마리)가 훈련을 통해 이런 사회적 규칙을 세우고 지키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특히 생쥐마다 보상을 얻는 요령을 획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달랐지만 전체적으로 실험 회차가 많아질수록 각자의 방을 정하고 방해하지 않는 사회적 규칙을 점점 더 잘 지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 규칙을 준수하는 것,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협동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더 많은 보상을 준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된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뇌 자극 쾌감을 보상으로 했을 때와는 달리 음식을 보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상대를 공격하는 행동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상대를 밀치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생쥐가 음식 보상 조건에서는 57%에 이르렀지만 전기자극에 의한 쾌감 보상에서는 8%에 그쳤다.
또 한쪽 방으로 가는 행동이 습관적 선호가 아닌 점을 증명하기 위해 왼쪽 방이나 오른쪽 방을 할당받은 생쥐들을 따로 모아 실험한 결과 초반에는 한쪽 방으로 쏠리는 현상을 보였지만 이내 한 쥐가 할당 방을 다른 쪽으로 재빨리 바꾸는 ‘래피드 룰 트랜스퍼’(Rapid Rule Transfer) 현상을 보였다. 또 다른 쥐가 다가와도 쾌감 자극을 중단하지 않은 실험에서는 40회 동안 계속해서 두 마리 모두 한쪽 방에 몰려드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본 실험에서 생쥐들이 서로의 보상을 방해했을 때 전체 보상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으로 인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신희섭 단장은 “설치류가 사회적인 갈등의 해결을 위해 충동적인 경쟁보다는 사회적 규칙을 만들어 지키는 행동을 확인한 연구다.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음에도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법을 택하는 생쥐의 행동은 인간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