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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치태 1g에 미생물 100억마리…알수록 칫솔에 손이 가는 놀라운 생태계

등록 2017-11-20 07:00수정 2017-11-20 10:34

[미래&과학]
입안은 미생물 1000종의 서식지
장내 미생물 못잖은 ‘종 다양성’
한국인 입안서 150~180종 확인

미생물 생태계 균형 깨질 때
몸속 곳곳 만성염증 원인으로
나이 들면 생기는 치주염 조심

심혈관 질환서 알츠하이머까지
다양한 면역반응 일으키며 관여
입안 미생물이 구강질환뿐 아니라 몸의 여러 다른 질환의 발병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사진은 어린이집 아이들이 소아치과 선생님한테 치아 관리와 올바른 양치질 방법을 배우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입안 미생물이 구강질환뿐 아니라 몸의 여러 다른 질환의 발병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사진은 어린이집 아이들이 소아치과 선생님한테 치아 관리와 올바른 양치질 방법을 배우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입안에 미생물(세균)을 모두 없애면 구강질환도 모두 없어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입 바깥에 있는 갖가지 미생물들이 경쟁자 없는 입안에 손쉽게 정착해 새로운 세력이 되겠죠.”

먼저 터전을 잡은 장내 미생물의 생태계 균형이 장 건강을 지켜주듯이, 입안에 사는 구강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이 입안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하다고 한국구강미생물자원은행의 은행장인 국중기 조선대 치대 교수는 강조했다. 또 다른 사례를 들려주었다. “사실 치주염이나 충치를 일으키는 대부분 세균 종은 모든 사람 입안에 있어요. 그런데 왜 어떤 사람한테만 병이 생기는지 의문이 들겠죠. 그건 구강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이 깨져 질환 원인균인 미생물 종이 우세하게 자라기 때문입니다.”

미생물 생태계의 평화와 공생은 입안 건강을 위해 중요하는 얘기다. 그런데 구강 미생물의 영향권이 그저 입안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들어 밝혀지고 있다. 몇년 새 구강 미생물이 동맥경화 같은 심혈관 질환이나 알츠하이머병, 염증성 장질환 같은 다른 질병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잦아지면서, 입안과 온몸 건강의 상관관계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입안 미생물과 만성질환의 상관관계

인체 미생물이 우리 몸속으로 파고드는 가장 좋은 통로는 어디일까? 언뜻 ‘입을 통해 장내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구강 미생물과 면역학을 연구하는 최영님 교수(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구강미생물학 면역학교실)는 “입안”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체 미생물이 장내에 가장 많긴 하지만 입에서 위, 장, 항문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사실 피부 같은 튼튼한 상피세포 바깥이기에 장내 미생물도 몸 바깥에 있는 셈”이라며 “입안 환경은 이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잇몸 조직과 혈관에 침투한 구강 미생물(세균)을 1000배율 현미경으로 관찰한 영상. 치주염 환자의 잇몸 조직은 많은 세균에 감염돼 있는데 영상에서는 혈관 안에 침투한 세균 모습도 보인다. 점선은 혈관, 화살표 부분이 세균.  최영님 서울대 교수 제공
잇몸 조직과 혈관에 침투한 구강 미생물(세균)을 1000배율 현미경으로 관찰한 영상. 치주염 환자의 잇몸 조직은 많은 세균에 감염돼 있는데 영상에서는 혈관 안에 침투한 세균 모습도 보인다. 점선은 혈관, 화살표 부분이 세균. 최영님 서울대 교수 제공
미생물의 관점에서 보면, 입안도 몸의 바깥이지만 몸속으로 비교적 쉽게 들어가는 통로가 있는 곳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치주질환(잇몸병, 치은염·치주염)이 찾아오는데, 일부 미생물 종이 우세해져 일으키는 만성염증이 심해지면 미생물이 점점 더 파괴되는 잇몸 조직 안이나 혈관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요즘 기법으로는 잇몸 조직 안에, 혈관 안에 있는 구강 세균을 직접 식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몸 안에 들어온 구강 미생물은 ‘만성염증 유발자’가 된다. 침투한 구강 세균을 물리치기 위해 우리 몸은 면역반응을 가동할 테고, 이로 인해 염증이 생기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여러 연구들에서 구강 세균이 염증 원인이 되어 동맥경화 같은 심혈관질환이나 류머티스 관절염, 당뇨(제2형)를 비롯해 여러 질환이 발병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그동안 연구들을 종합해 ‘이를 닦지 않으면 수명이 짧아진다’고 말하는 연구자들도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최근엔 알츠하이머병을 키우는 염증 증세에도 구강 미생물이 원인이 된다는 연구보고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는 ‘뇌-혈관 장벽’을 구강 미생물이 통과해 뇌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킴으로써 발병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혈관 내 구강 미생물 때문에 생긴 염증반응 매개물질(사이토카인)이 뇌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아직 충분한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구강 세균이 일으키는 만성염증의 영향이 몸 곳곳에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입안에 터 잡은 미생물들의 역동하는 생태계

입안은 매우 다양한 미생물 종이 어울려 사는 독특한 환경이라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그동안 사람 입안에선 대략 700~1000종의 구강 미생물이 발견되었는데, 이런 ‘종 다양성’은 인체 미생물에서 가장 큰 세력이라는 장내 미생물 군집에 못잖은 규모다. 물론 사람마다 실제 서식하는 입안 미생물 종수는 훨씬 적다. 국중기 교수는 “개인 입안에는 200종 안팎의 미생물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인을 조사한 우리 연구에서도 대략 150~180종에 달하는 미생물 종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음식이나 공기에 섞여 온갖 미생물 종이 입안으로 들어오지만 대부분은 정착하지 못한 채 소화기관으로 사라지지만 입안 환경에 적응해 사는 미생물들은 독특한 구강 생태계를 이룬다.

한국인에게만 발견되는 미생물도 있다. 2013년 문을 연 한국구강미생물자원은행은 현재 한국인의 입안에서 분리해 배양한 미생물 195종(1538균주)을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인한테서 처음 발견된 균종도 3종이 있으며 그중 일부는 조상 대대로 이어진 우리의 고유한 식습관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은행장인 국 교수는 말했다.

구강 미생물은 침, 혀, 점막, 그리고 잇몸 틈새 등에서 주로 군락을 이루어 산다.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은 치태(플라크)다. 치태는 다양한 미생물이 다량으로 사는 서식지다. 침 1㎖에는 1억마리가 사는데, 치태 1g엔 100억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장내 미생물 중에는 장 건강에 도움을 주는 유익균(프로바이오틱스)으로서 유산균이 꼽히는데, 입안 미생물 중엔 아직 뚜렷하게 유익균이라 불릴 만한 세균이 규명되지는 않았다. 입안은 훨씬 역동적인 변화와 복잡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최영님 교수는 “몇 가지 유익균이 동물실험이나 임상시험을 통해 연구됐지만 아직 그 효능이 충분히 검증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장내·구강 미생물들, 멀어도 상호 영향

요즘에는 장내 미생물 연구자들도 구강 미생물 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심각한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을 악화시키는 데 구강 미생물이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보고는 많은 관심을 끌었다. 최근 일본 게이오대학 등 공동연구진은 입안에 흔히 사는 특정 미생물 종이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 장내 환경에서 정착해 증식해 면역반응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염증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실험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보고했다(bit.ly/2z5xkj2).

장내 미생물 연구자인 천재희 연세대 의대 교수(소화기내과)는 “장질환 환자의 대변에 구강 세균들이 자주 발견돼 둘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건 알려져 왔는데, 이 연구에선 크론병의 유전적 소인을 지닌 사람의 장에선 구강 미생물이 쉽게 정착해 질환 발병에 관여한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근래에는 입안 미생물 군집의 상태를 관찰하면 특정 질환을 진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천 교수는 “어떤 질환이 발병하거나 건강을 회복하면 입안 미생물 군집의 구성도 달라진다”며 “어떤 질병에 어떤 세균 종이 번성하는지 그 연관성이 밝혀지면 입안 미생물은 장이나 다른 질환을 진단하는 간편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광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장내 미생물과 구강 미생물을 연계하는 연구가 앞으로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입안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이 중요하다면 이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은 없을까? 아쉽게도 현재로선 신통한 방법이 없는 듯하다. 잇몸에 침투한 세균이나 유해균만을 없애는 방법도 없을뿐더러, 생태계 균형에 무엇이 중요한 요인인지도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양치질이 효과적이다. 최영님 교수는 “치주염을 예방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하루에 최소 두 번 이상, 그리고 한 번은 정확하고 꼼꼼하게 양치질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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