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연구의 초파리로 불리는 대표적 연구 모델 식물 ‘애기장대’.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구 동·식물은 ‘산소 생태계’에 속한다. 산소는 생명체의 에너지 활동에 필수요소다. 하지만 산소 역시 과유불급이다. 생명체의‘산소 엔진’이 과열되면 부산물인 활성산소가 나온다. 인간의 노화와 질병은 활성산소에서 비롯한다. 식물의 노화도 마찬가지다. 국내 연구진이 식물 잎의 노화를 일으키는 활성산소 발생 원리를 밝혀냈다.
기초과학연구원(IBS)는 19일 “애기장대 모델 식물을 이용해 잎의 노화 과정을 조절하는 활성산소의 발생이 세가지 단백질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분자 수준의 규명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원 산하 식물노화·수명연구단이 수행한 연구 성과는 과학저널 <셀 리포트> 19일(현지시각)치에 게재됐다.
보통 공기 중 산소 분자는 삼중항 산소(3O₂)로 2개의 홀전자를 가지고 있어 안정한 편이지만 산소가 변해 불안정한 상태 곧 활성산소가 되면 세포에 손상을 입힌다. 대표적 활성산소에는 과산화수소(H₂O₂)와 초과산화 이온(O₂?), 수산화 라디칼(?OH) 등이 있다. 식물이 태양 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만드는 광합성 과정에도 활성산소가 생성된다. 활성산소는 식물의 성장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유전자나 단백질의 기능을 저해하거나 정상 세포를 죽게 만든다. 잎이 노래지는 등의 노화를 촉진하는 원인인 것이다. 그러나 활성산소의 생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자 수준에서의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아왔다.
왼쪽 그림은 RPK1 유전자 발현 유도제를 처리하지 않은 경우(DMSO)이고, 오른쪽 그림은 RPK1의 발현을 유도제(MOF)로 유도한 경우이다. 좌우를 비교해보면, 왼쪽 대조군은 처리 용액에 따라 차이가 없는 반면, 유도제에 의해 RPK1 발현이 되도록 설계된 오른쪽의 iRPK1 모델 식물(가운데)은 MOF 처리가 있는 경우 RPK1 유전자 발현이 유도돼 잎이 노랗게 변하는 노화가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MOF 처리로 RPK1 유전자 발현을 유도하더라도 활성산소 생성 효소인 RbohF 유전자가 망가진 경우 (오른쪽 세번째 식물·iRPK/rbohF)에는 활성산소를 만들지 못해 노화가 진행되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연구팀은 우선 애기장대 잎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노화될 때 유전자 발현이 증가하는 세포막 단백질 ‘아르피케이1’(RPK1)을 집중 연구했다. RPK1은 노화뿐 아니라 다양한 스트레스 조절과 관련된 식물 호르몬인 앱시스 산(ABA) 관련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RPK1 단백질이 활성산소의 생성을 조절해 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RPK1 유전자를 많이 발현시키면 활성산소의 생성이 증가하고 식물 세포가 죽어 잎이 노랗게 변하는 노화현상이 촉진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또 실험 과정에서 RPK1에 의한 활성산소 조절에는 활성산소 생성 효소인 ‘아르비오에이치에프’(RbohF)가 관여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RbohF 유전자가 망가진 형질전환 식물에서는 RPK1이 작용해도 식물의 노화가 촉진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두 단백질이 직접 결합하지 않고 칼슘결합 단백질인 ‘시에이엠4’(CaM4)가 이 연결고리 구실을 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곧 RPK1이 CaM4 단백질을 인산화하고, 인산화된 CaM4가 다시 RbohF에 결합해 활성산소가 생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세 가지 단백질 RPK1-CaM4-RbohF의 트리오 결합이 활성산소 생성을 증가시키고 생성된 활성산소가 세포 안으로 전달돼 세포 사멸 유전자 발현을 촉진한다는 것을 밝힌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분자 수준에서 활성산소와 식물 노화와의 관계를 밝혔다는 점에서 노화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활성산소에 대한 식물의 복잡한 대응 전략 가운데 세포 사멸로 이르는 메커니즘을 명확히 규명한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또 “RPK1은 노화뿐 아니라 추위나 가뭄 등 식물이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스트레스 신호전달 과정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 연구가 향후 식물의 스트레스 및 노화 연구에 밑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