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엠(IBM) 완슨연구소의 양자컴퓨터센터. 양자컴퓨터는 절대온도 0도 부근까지 냉각시키는 극저온 탱크(맨오른쪽) 안에 있다. 아이비엠 제공
‘50’이라는 수는 양자 컴퓨터에서 국면을 바꾸는 숫자, 즉 ‘매직 넘버’로 흔히 통용된다.
0과 1 외에 또 다른 양자 상태를 연산에 사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양자 컴퓨터가 고전적인 디지털 컴퓨터의 성능을 마침내 앞서는 이른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가 50 큐비트에서 시작한다는 의미다. 큐비트는 디지털 컴퓨터의 데이터 연산과 기록의 단위인 ‘비트’에 대응하는 양자 컴퓨터의 단위를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양자 컴퓨터가 과연 언제 50 큐비트를 넘어설지에 많은 관심이 쏠렸는데, 최근엔 아이비엠(IBM)과 인텔이 각각 50 큐비트와 49 큐비트의 양자 프로세서를 개발했다는 잇따른 소식이 나와 주목 받았다.
이런 때에 일부에서는 근본적인 물음이 새삼 제기되고 있다. 50 큐비트는 양자 우위를 보증하는 매직 넘버로서 정말 충분할까?
특히나 ‘양자 우위’라는 말을 2011년 처음 사용한 저명한 물리학자 존 프레스킬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교수가 최근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양자 컴퓨터의 능력에 대한 당장의 기대를 경계하며 기술의 현주소를 평가하는 글을 발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 세계 유수 기업인들에게 한 강연을 논문 형식으로 써서 지난달에 물리학 공개저장소인
‘아카이브(arXiv)’에 올린 글이다. 그는 강연문에서 “세상을 바꿀 만한” 양자 컴퓨터의 시대가 언제일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수십 년이라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우리가 조만간 맞이할 50 큐비트에서 수백 큐비트 급의 양자 컴퓨터는 ‘오류 있는 중간 규모 양자 기술(NISQ: Noisy Intermediate-Scale Quantum)’에 머물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자신이 2011년에 제안해 널리 퍼진 용어인 ‘양자 우위’는 여전히 가치 있는 목표라고 말하면서도, 단지 몇 큐비트냐의 규모 문제가 아니라 양자 컴퓨터가 실제 상업적으로 유용한가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불완전성’을 지니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양자 장치가 할 수 있는 응용 분야는 심각하게 제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50 큐비트는 중요한 이정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강력한 현존 디지털 슈퍼컴퓨터의 대단한 성능이 해내는 시뮬레이션 그 이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NISQ라는 용어에서] ‘잡음이 있다(noisy)’는 표현은, 그런 큐비트를 제어하는 우리 능력이 아직은 불완전하며, 그래서 가까운 미래의 양자 장치가 이룰 수 있을 것은 심각하게 제한될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완전하게 격리된 채 연산을 실행해야 하는 매우 민감한 조건의 양자 프로세서 칩에서는 불가피하게 연산 오류가 생기는데 이런 양자 오류를 보정하는 데에는 또 다른 보정용 큐비트들의 기술과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
양자 컴퓨터 전문가들은 논리 연산에 쓰이는 큐비트 1개가 오류 없이 보호를 받으며 실행하는 데에는 양자 오류 보정용으로서 수백 내지 수천 큐비트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50 내지 수백 큐비트 규모의 시스템에서는 이런 오류 보정이 적절하게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양자 컴퓨터가 내놓은 답이 과연 정확한 답인가’를 확인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프레스킬 교수는 이번 강연문에서 만일 연산 알고리즘에서 오류를 보정하면서 수천 큐비트를 연산에 쓰려면 수백만 개의 큐비트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양자 컴퓨터에 쏠린 과장된 기대를 지적해온 물리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필립 볼도 최근
미국 비영리 과학잡지 <양자 매거진>에 쓴 글에서 양자정보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1 큐비트를 순수하게 연산에만 쓰려면,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양자 오류 보정용으로 수백~수천 큐비트가 따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립 볼은 이 긴 글에서 ‘양자 우위’라는 표현 자체에도 많은 비판적인 지적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어떤 문제 풀이에서 양자 컴퓨터가 우위에 있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며, 양자 컴퓨터가 내놓은 답이 정확한지를 평가하는 방법과 기술도 아직은 불분명하기 때문에, ‘양자 우위’보다는 ‘양자 이점(quantum advantage)’라는 표현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양자 컴퓨터의 성능을 나타낼 때에 단지 몇 큐비트인지 그 규모만을 따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측면을 종합하는 수치가 사용되어야 한다고 필립 볼은 지적했다. 즉, 큐비트의 규모와 연결성이 어떠한지뿐 아니라 양자 오류를 어떻게 보정하고 처리하는지, 사용된 알고리즘은 어떠한지, 양자 게이트의 특성은 어떠한지 등을 반영해 “양자 체적(quantum volume)”으로 표현되는 수치가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프레스킬 교수는 강연문에서 “[곧 등장할] NISQ 그 자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없다. 그보다 NISQ는 미래의 더욱 강력한 양자 기술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발걸음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백 큐비트에서 수백만 큐비트로 그 ‘양자 간극’을 건너는 일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에는 이뤄질 것”이라며 이를 위해 필요한 “새로운 통찰과 발전, 혁신”이 양자 컴퓨터의 장래 모습을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양자 오류를 완화하거나 근사값을 활용하려는 기술 개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현재 개발되는 양자 컴퓨터들은 당분간 디지털 컴퓨터가 수행하기 어려웠던 양자정보와 양자역학 등 분야의 기초 연구에서 주로 장점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음은 프레스킬 교수가 마무리에서 정리한 강연문의 요약이다.
- 지금은 과학과 기술의 역사에서 특별한 시대다. 우리는 ‘오류 있는 중간 규모 양자’라는 NISQ 시대의 개막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NISQ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NISQ 기술을 실험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아마도 NISQ를 통해 우리는 가까운 장래에 폭넓은 관심 문제들을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 우리는 최적화 문제를 풀기 위한 혼합형 양자-고전 알고리즘을 비롯해 시도해보고자 하는 몇 가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 일단 우리에게 실험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가 생기면 양자 알고리즘의 발전은 가속화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적어도 당장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유용한 문제를 푸는 새로운 발견법(heuristic)을 찾을 것이다. 그런 발견법이 잘 들어맞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그런 발견은 이뤄질 수 있다.
- 우리가 NISQ 장치에서 잡음을 차단하는 양자 오류 보정 기술을 충분히 사용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잡음 탄력성을 염두에 두면서 단기적인 양자 알고리즘을 설계해야 한다. 잡음에 탄력적인 훌륭한 알고리즘의 설계가 이뤄지면 NISQ 장치의 연산 능력은 확장될 수 있다.
- 고전적인 디지털 컴퓨터는 고도로 얽혀 있는 양자 다체계의 동역학을 시뮬레이션 하는 데에는 특히나 취약하다. 따라서 양자 동역학은 고전적인 컴퓨터에 비해 양자 컴퓨터가 두드러진 이점을 누릴 수 있는 특히나 유망한 분야다.
- 우리는 게이트 오류율이 더 낮은 양자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야 한다. 양자 게이트의 정확도 향상이 마침내 실현되면 양자 오류 보정의 추가 비용이 줄어들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더욱 정확한 양자 게이트가 실현되면 우리는 더 큰 양자 회로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NISQ 기술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 NISQ는 그 자체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이뤄질 양자 플랫폼이라는 일차적 목표는 더 큰 성과로 나아가는 길을 닦을 것이며, 그 성과는 양자 장치들에 의해 실현될 것이다.
- 세상을 바꿀 만한 진정한 미래 양자 기술은 (결점을 견뎌내는) 내결점성을 갖춰야 할 것이다. 양자 오류 보정의 엄청난 추가 비용 때문에 내결점성 양자 컴퓨터의 시대는 아직 멀어 보일 수 있다. 거기에 도달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양자 연구자들은 조만간 NISQ 장치를 갖고서 실험할 기회를 갖게 될 터이며, ‘내결점성 시대의 시작을 앞당겨야 한다’는 근본적인 장기 목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