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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IPCC 참여 여성 과학자들 “성·인종 차별 겪는다”

등록 2018-02-14 07:00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팀 인터뷰 조사
IPCC 평가보고서 작성 참여 여성 비율
1차 때 2%에서 5차 때 22%까지 증가해
하지만 여성 14% “성·인종 차별 겪어”
영어 능력+인종+국적 삼중고 여성 많아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과학자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지구 온난화 관련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과학자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지구 온난화 관련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기후변화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는 여성과학자들의 비율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성 차별이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팀은 13일(현지시각)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한 논문에서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에 참여하는 여성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젠더 문제 등에 대한 인터뷰 조사를 한 결과 참여 과학자들 사이에 성 차별이 존재할 뿐더러 젠더 문제가 인종, 국적, 영어 구사 능력 등과 결합해 차별이 복층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의 기후변화에 대한 보고서는 권위가 있고 영향력이 크며 보고서의 주저자들에는 전세계 과학자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그동안 IPCC 보고서가 특정 분야에 의해 독점되고 북반구 학자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이 문제로 제기돼왔다. 연구팀은 나아가 지금까지 조사된 바 없는 IPCC의 젠더 문제에 대한 분석을 했다”고 설명했다.

IPCC의 여성 참여는 최근까지 계속 증가해왔다. 1990년 IPCC 1차 보고서 때 여성 저자는 10여명에 불과해 전체의 2%에 그쳤으나 1997년 2차 보고서 때는 26명으로 5%, 2001년 4차 때는 100명 가까이 돼 21%까지 늘어나고 2013년 5차 때는 182명으로 22%가 됐다. IPCC 안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워킹 그룹의 의장이나 부의장 자리에 과거 여성이 단지 3명뿐이었던 것이 가장 최근의 6차 평가에는 선출된 의장단 32명 가운데 8명이 여성이다.

연구팀은 여성의 대표성이 조금씩 개선됐음에도 성 차별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조사하기 위해 IPCC 참여 여성 과학자 111명을 대상으로 인터뷰 조사를 진행했다. 인터뷰 응답자 국적은 미국(28명)과 영국(11명)이 가장 많았다. 자신이 속한 학문 분야에 대해 51%는 자연과학, 24%는 사회학, 21%는 양쪽 분야 모두라고 답변했다. 72%가 백인이고 대부분 56살 이상으로 40살 이하는 4%뿐이었다.

연구팀이 인터뷰 대상자들한테 왜 그들이 선정됐는지, 그들은 존중을 받는지, 그들의 얘기는 경청되는지 등을 물었을 때 대부분의 여성과학자는 IPCC에 기여하는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 확신이 있었고, 그들과 다른 의견을 보이는 선임연구자들에 도전할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82%는 그들 의장한테서 존중을 받는다고 했고 87%는 동료저자들한테 인정을 받는다고 답변했다. 대부분이 자신의 분야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 반면 많은 사람들은 전체 보고서에 끼치는 영향력은 작다고 응답했다. 60%는 IPCC 보고서의 토론과 작성이 몇몇 과학자들에 의해 통제되고 50%는 일감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특히 자유토론 방식 인터뷰에서는 차별 문제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응답자들 몇몇은 남성에 비해 여성들한테 일의 하중이 정당한 대가 없이 더 많이 부여된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소외되고 무시되는 느낌을 받는다고도 했다. 한 응답자는 “나한테는 IPCC 과학자들이 소규모 폐쇄집단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IPCC 진행은 남성들, 특히 나이 많은 유력 인사들의 지배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참여에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결정은 일방적이고 불투명하며, 일부 과학자가 보고서 저술을 통제한다”고 했고, 다른 응답자는 “우리 부문 남성 리더는 오만하고 포용적이지 않다. 그는 아이비리그 출신에 백인 남자 교수라야 그 사람 의견에 관심을 보인다. 특히 개발도상국 출신 연구자들은 그에 의해 배제된다고 느낀다”고 했다.

연구팀 설문조사에서 젠더, 인종 또는 민족, 언어, 나이, 국적 등이 자신에게 IPCC 참여의 장벽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14%는 젠더, 14%는 인종이 장벽이라고 답변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질문에서는 75%가 영어 능력을 다른 사람의 장벽으로 꼽았고, 37.5%는 젠더를, 28%는 인종 문제를 장벽으로 보았다. 인터뷰 조사에서는 많은 응답자들이 개발도상국 출신 여성들이 소외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응답자들은 IPCC에서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영어 구사 능력을 들었다. 한 과학자는 “나는 영어권 국가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영어 말하기와 쓰기를 잘 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많이 좌절했을 것 같다. 실제로 나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여성 동료들이 좌절하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여성문제는 리더십에서도 드러났다. 한 응답자는 “우리 부문에서 일부 남성들은 여성이 상사라는 점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성의 말은 거의 경청되지 않고, 여성의 제안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나는 젠더+나이+영어 구사 능력이 복합적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면서 키가 크지 않고 목소리도 작은 나는 회의 때 선임연구자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사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교차 평가 조사를 통해 개인들이 사회적 지표들 곧 젠더, 인종, 계급, 성적 취향 등에 뿌리를 둔 차별을 얼마나 겪는지 드러났다고 밝혔다. 유색인종 여성이면서 왜소하고 개발도상국에서 온 연구자는 중층적인 차별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 조사에서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인종 차별은 거의 없다고 답변했지만, 유색인종 여성의 35%는 그들이 참여하는 데 인종 차별이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보고했다. 한 아프리카 여성은 “내가 팀에서 필요없는 존재로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아프리카 여성이어서일 것이다. 내 영어 실력은 뛰어나고 다른 사람들만큼 유능하고 또한 자긍심도 있지만 나는 한번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응답자의 3분의 1은 육아와 가사 문제 또한 IPCC 참여의 장벽이라고 답변했다. 여성이 아이가 있다면, 특히 독립여성이라면 육아 책임이 가장 큰 장벽이다. 일부 응답자는 육아 책임이 IPCC 활동 기간에 성취를 이루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 응답자는 “나는 지난 IPCC 평가 활동 때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행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나는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었지만 회의 때마다 큰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종종 집중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응답자의 3분의2는 시간 부족을 장벽으로 꼽았다. 21%는 본국이나 소속 기관의 부족한 재정지원을 꼽았다. IPCC 저자들은 과욋일과 장거리 여행, 생활리듬의 파괴 등을 감내해야 한다. 보고서는 여름휴가철 중이나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겨울휴가철 끝무렵에 전달된다. 한 여성은 그의 소속기관 상사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고 IPCC에 참여하기 위해 휴가를 써야 했다. 한 응답자는 “참여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굉장한 압박감이 있었다. 내 스스로 참여를 선택했기 때문에 직장 동료들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다”고 했다.

IPCC 저자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다. 일부 여성들은 IPCC 참여가 상당한 수입 감소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들은 일상적인 업무와 병행할 수 없거나 상사의 이해를 구하지 못해 휴가를 이용해야 했다고 했다. 연구팀은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겪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2시간 이상 일을 더 하고, 프랑스는 1.5시간 이상, 멕시코는 4.3시간 이상 일을 더 많이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사와 직장일 외에 IPCC와 같은 자원봉사에 쏟을 시간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이 기후과학자로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물었을 때 41%는 젠더를 성공의 장벽으로 인식한다고 답변했다. 43%는 여성 기후과학자들이 기후과학 공동체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뷰에서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여성 과학자가 있음에도 남성들은 다른 남성을 승진시킨다. IPCC에는 단지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차별을 하는 남성 과학자들이 많다”고 한 여성 과학자도 있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여성은 위원회에서 경청되지 않아왔다. 한 남성 과학자는 내가 말한 것을 바로 반복했고 결국 (보고서에는) 내가 아닌 그가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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