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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뇌과학 협력과 공유” 지구촌 프로젝트 시동

등록 2018-02-26 07:01

[미래&과학]
작년 12월 구성, 한국서 5월 첫회의
미국 유럽 한국 일본 호주 등 참여
집단지성의 빅사이언스 전략 추진
기술·데이터의 ‘국제뇌정거장’ 구상

게놈 지도보다 더 복잡하고 방대한
뇌 활성 지도 작성이 핵심 협력사업
뇌 프라이버시 등 신경윤리도 부각
2016년 발표된 뇌 기능의 구획 지도. 현재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상세하게 180개 구획으로 뇌를 구분했다.  미국 워싱턴대학 의대(매슈 글래서 등) 제공
2016년 발표된 뇌 기능의 구획 지도. 현재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상세하게 180개 구획으로 뇌를 구분했다. 미국 워싱턴대학 의대(매슈 글래서 등) 제공
“뇌는 온몸의 신경을 지배하는데, 흔히 추산할 때 사람 뇌에는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신경세포 하나가 평균 1000개의 연결(시냅스)을 지녀 신경세포 연결은 100조개나 된다고 합니다. 우주의 별을 흔히 100조개로 추산하기에 뇌를 ‘작은 우주’라고도 비유하지요. 게다가 뇌는 부위별로 사유, 감정, 기억, 지각, 운동처럼 다르게 기능해 복잡성은 더 커집니다. 뇌를 이해하려면 이렇게 복잡한 빅데이터를 다뤄야 하기에 여러 나라가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협력과 공유의 길을 모색하고 나선 겁니다.”(정성진 한국뇌연구원 뇌연구정책센터장)

지난해 12월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서는 미국, 유럽연합,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의 뇌과학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종의 ‘뇌과학 연합전선’을 구축한다는 ‘캔버라 선언’을 발표했다. 아직 사무국 조직도 없고 웹사이트도 없는, ‘국제 뇌과학 이니셔티브’(IBI, 아이비아이)라는 이름의 이 기구는 오는 5월 활동 방향을 구체화하는 첫번째 정식 회의를 한국에서 연다.

“‘작은 우주’ 뇌 협력연구 절실” 인식

2013년 이래 국가 규모의 뇌과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나라별로 뇌과학 프로젝트가 잇따라 생겨났다. 하지만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뇌질환에 대응하는 연구는 한 나라 수준에서 도약을 이루기에는 너무 거대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2016년부터 미국 카블리재단과 유엔의 중재에 힘입어 뇌과학의 공동연구 전략을 모색하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뇌과학 연합전선’의 시동을 알린 캔버라 선언에는 미국의 브레인 이니셔티브, 유럽연합의 인간뇌 프로젝트, 한국의 뇌과학 이니셔티브, 일본의 뇌/마인즈 프로젝트, 오스트레일라아의 뇌과학연합이 참여했다. 중국, 캐나다, 이스라엘도 곧 합류하기로 해 지구촌의 주요한 뇌과학 프로젝트들은 거의 모두 참여하는 셈이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 열쇳말은 ‘협력과 공유’였다. 이들은 ‘캔버라 선언’에서 “공공과 민간의 전례 없는 노력과 자원을 갖추더라도 한 나라의 뇌과학 프로젝트로는 뇌를 더 이해하려는 도전을 감당할 수 없음을 인식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연구자들이 인식하는 뇌과학의 도전과제는 “너무도 거대하며 복잡하다”는 얘기다.

캔버라 회의에 참석했던 정성진 한국뇌연구원 센터장은 “연합전선이라는 표현이 지나치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뇌과학의 협력은 절실한 목표로 인식되는 분위기”라며 “수명이 늘면서 뇌질환도 늘었지만 많은 경우에 여전히 그 원인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는 수준인데다 뇌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한눈에 보여주는 뇌 지도를 그리는 목표가 한 나라의 노력만으론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협력과 공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업은 기술과 데이터를 공유하자는 이른바 ‘국제뇌정거장’(TIBS, The International Brain Station) 설립 구상이다. 아직은 합의된 목표일 뿐이지만, 아이비아이는 새로운 뇌연구 기술을 서로 교육하며 확산시키는 ‘기술공유 정거장’이라는 현실공간, 그리고 지구 전체와 동네 골목길을 다 보여주는 ‘구글 어스’ 같은 뇌 지도를 지속적으로 완성해가는 ‘데이터 정거장’이라는 가상공간의 구축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정성진 센터장은 “중력파 검출을 위한 라이고(LIGO) 연구단이나 힉스 입자 등을 발견한 거대강입자충돌기(LHC) 연구단, 우주과학에 크게 기여한 허블 우주망원경 연구단 같은 거대과학(빅사이언스)의 모델을 참조해 협력과 공유의 뇌 연구 모델을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구글어스 같은 뇌지도’ 공동구축 도전

아이비아이 출범의 배경이 된 2016년 국제회의 이후에, 모임에 참가한 12개국 과학자 60여명은 보고서에서, 강력한 컴퓨터가 많은 데이터, 전력, 하드웨어를 써야 가까스로 구현하는 인지 기능을 생물학적인 뇌는 매우 뛰어난 연산으로 처리하는데, 풀기 힘든 이런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는 협력 연구가 절실하다며 ‘국제뇌정거장’ 설립을 처음 제안했다.

국제뇌정거장의 핵심으로는, 뇌의 구조와 기능을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는 뇌 지도의 구축이 야심찬 사업으로 제시되고 있다. 2000년대 초에 인간 유전체(게놈) 정보를 해독한 게놈 지도가 작성되면서 생명과학이 급속한 발전을 이뤘듯이, 뇌 지도를 지속적으로 완성해간다면 뇌과학 도약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촌 연구자들이 집단지성으로 뇌 지도를 완성해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단일한 플랫폼과 연구기법의 표준이 마련돼야 한다. 김경진 뇌연구원장(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은 “게놈 지도는 분석 대상인 염색체들을 나라별로 나누어 작성할 수 있었지만 뇌 지도는 양상이 다르다”며 “무엇보다 대용량 고속분석의 연구기법을 표준화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담을 컴퓨터 시설과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며, 각지의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지도 정보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단일한 플랫폼을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이런 뇌 지도 작성 사업에는 신경과학 연구자뿐 아니라 수학, 컴퓨터과학, 물리학 등 분야 연구자들의 협력도 필수적이다.

정성진 센터장은 “또한 뇌기능 자기공명영상(fMRI)은 거시적인 지도 데이터를 생산하고 전자현미경은 미시적인 지도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는데, 그 중간 영역의 지도 데이터는 현재 크게 부족해 앞으로 중간 영역의 기술 개발과 데이터 축적 및 분석에 큰 노력이 기울여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경윤리는 아이비아이 프로젝트에서 유난히 강조된다. 뇌 프라이버시의 보호, 데이터의 적절한 사용, 인공지능 윤리 등은 중요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김경진 뇌연구원장은 “정부와 국회에서, 신경윤리 국가위원회의 구성이나 신경윤리 관련 조항을 담는 뇌연구촉진기본법의 개정 문제가 논의되는 중”이라고 전했다.

뇌과학 분야에서 처음 시도되는 협력과 공유의 ‘빅사이언스’가 어디까지 나아가 무엇을 해낼지, 그 활동의 방향은 5월 국내에서 열리는 첫 공식 회의에서 가닥을 잡고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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