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군 월출산 천황봉 자락에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2017년 기상사진전에서 계절사진상을 받은 정홍선씨의 작품이다. 기상청 제공
서울대 연구팀이 과거 80여년 동안의 서울지역 기온과 봄꽃 개화시기를 조사해보니 개나리와 진달래 꽃 피는 날짜가 10년마다 2.4일씩 앞당겨졌다. 이 속도로 개화시기가 빨라지면 세기말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눈 속에서 피어 봄을 알리는 전령인 복수초가 올해는 여느 해보다 늦게 피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복수초의 개화일 표준으로 삼는 홍릉숲 복수초는 지난달 19일에 꽃망울을 터뜨려 평균 개화일(2월5일)보다 보름가량 늦었다. 이상한파가 왔던 2010년의 2월21일에 이어 두번째로 늦은 기록이다. 산림과학원 생물계절조사팀의 김선희 연구관은 “올해 1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1.5도 낮고 강수량도 평년의 39%에 불과한 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2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1.3도 낮고, 겨울철(12월~2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1.4도 낮았음에도 개나리는 부산에서 15일, 목포에서 19일에 피어 평년보다 각각 2일과 5일이 빨랐고 대구에서도 20일에 피어 평년(19일)과 비슷했다. 김 연구관은 “복수초의 개화는 개화 전 20일간 일평균기온의 누적온도와 상관관계가 높다”고 말했다. 개나리의 경우도 2월 하순과 3월 상순의 기온이 평년보다 높게 유지되고 2월말 많은 비가 내리면서 개화 전 기간의 일평균기온이 높아 개화가 평년과 비슷하거나 빨라진 것으로 해석된다.
온대지방에서 봄철에 피는 꽃은 가을철에 내생휴면(살아 있지만 생육을 멈춘 상태·겨울잠)에 들어간 꽃눈이 저온에 일정 기간 노출돼야 휴면이 해제되고 이후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 내생휴면의 시작과 종료, 발아, 개화를 식물계절이라 한다. 기상청은 유인기상관서에서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꽃, 복숭아, 배, 아까시나무 등 꽃나무와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을 관측한 식물계절 자료를 기록하고 있다. 1923년 서울 지역에서 개나리는 4월13일, 벚꽃은 4월24일에 피었으나, 지난해에는 개나리는 3월30일, 벚꽃은 4월6일에 피었다. 연구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봄꽃의 식물계절은 10년마다 1~4일 앞당겨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개나리와 벚꽃이 활짝 핀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시민들이 봄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희대 윤진일 교수 연구팀이 1951~2010년 60년 동안의 봄꽃 개화일 관측자료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보면, ‘봄꽃전선’은 부산에서 시작하는 남동부 해안을 따라 대구를 거쳐 서울로 북서진한다. 같은 위도라도 서해안 지역은 개화 시기가 늦어 목포는 대구와 비슷하거나 늦는 경향을 보이고, 이 추세는 전주~인천으로 이어진다. 부산~대구~서울로 이어지는 동부경로가 선행하고 목포~전주~인천으로 이어지는 서부경로가 뒤를 잇는 형국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개화일 변동은 꽃마다 다른 경향을 보여, 벚꽃은 모든 지점에서 앞쪽 30년(1951~1980년)에 비해 뒤쪽 30년(1981~2010년)에 평균 3~7일 일찍 폈는데, 개나리는 부산에서는 변화가 없고 목포에서는 오히려 늦게 피었다. 반면 대구에서는 열흘이나 일찍 피었다. 또 부산에 벚꽃이 피기 시작한 뒤 인천에서 벚꽃이 피기까지 앞쪽 30년에는 평균 20일을 기다려야 했는데, 뒤쪽 30년은 변동폭이 4일 단축됐다.
윤진일 교수팀이 지난해 기후변화에 따른 봄꽃 개화일 전망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런 변동은 더욱 가속화해 아까시나무의 개화 시기가 현재 벚꽃 개화 시기인 4월로 앞당겨지고 개나리의 경우 부산보다 오히려 목포에서 먼저 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팀은 기후변화가 상당히 진척돼 한계선을 넘으면 기후가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현상을 ‘기후이탈’이라는 개념으로 추산했다. 구체적으로는 서울·인천·대구·전주·부산·목포 6개 지점에 대해 1905년부터 2005년까지 기간에 연평균기온의 최고값을 변동범위로 설정하고, 2006년부터 2100년까지 추산한 연평균기온 값이 이 변동범위를 연속적으로 넘어서는 때를 기후이탈이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기후변화 추산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14년에 발간한 제5차 평가보고서에서 제시한 온실가스 대표농도경로(RCP) 8.5 시나리오 자료가 사용됐다. RCP 8.5는 2100년까지 온실가스 저감 노력을 시행하지 않아 온실가스가 현 추세대로 배출된다고 간주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한반도 평균기온은 6.0도 이상 높아지고 강수량은 20.4%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이탈은 5곳에서 2036년 처음 일어났고 전주는 2년 늦은 2038년에 시작됐다. 기후이탈이 끊이지 않고 계속 나타나는 ‘완전한 기후이탈’은 6개 지점 모두 2048년 이후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후이탈 시점이 이르면 2042년, 늦어도 2067년에는 나타난다는 다른 연구 결과들과 비슷한 분석이다.
연구팀은 또 과거 기간(1905~2005년)에 개화일 예측에서 얻어진 기준온도와 생장도일(GDD)을 기후 시나리오에 적용해 미래의 개화일을 추정했다. 식물은 생장 기준온도 이상의 온도가 일정 시간 누적된 생장도일에 도달해야 꽃을 피운다. 기후이탈과 마찬가지로 과거 기간 개화일 중 가장 낮은 값을 변동범위로 설정하고 분석해보니 2100년까지 부산에서는 모든 꽃들이 계속해서 과거 가장 일찍 핀 날짜보다 일찍 피는 ‘완전한 개화 시기 이탈’이 나타났다. 대구에서는 배나무를 제외한 5종, 전주와 목포에서는 벚꽃, 아까시, 복숭아 3종, 서울과 인천은 벚꽃과 아까시에서 완전한 개화 시기 이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개나리의 경우 기후이탈이 시작되는 2048년이 포함된 2041~2070년 기간에는 평균 개화일이 평균 8일 단축되고 2071~2100년에는 평균 개화일이 평균 16일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70년대 후반에 이르면 대구·부산·목포에서는 3월 상순에, 서울·인천·전주에서는 3월 중순에 개나리꽃을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개나리와 벚꽃, 아까시, 복숭아 등은 부산보다 목포에서 먼저 꽃이 피는 개화경로 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견됐다.
윤진일 교수는 “개화경로의 역전 현상이 예상되는 것은 식물의 개화가 같은 온도라도 수종간 차이가 있고, 기후변화에 따른 지역별 온난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온도뿐만 아니라 강수량이나 일조시간 등 다른 요소들도 미래를 전망하는 모델에 반영해야 미래의 변화 모습을 정확하게 예측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희 연구관은 “선형적인 온난화보다 기후 변동폭이 커지는 쪽으로 기후변화 영향이 나타나고 있어, 이에 따른 생물계절 현상의 변이폭도 커져 생태계의 안정성과 생물다양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