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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종이접기 고수도 흉내못낼 집게벌레의 신통한 날개접기

등록 2018-03-28 17:35수정 2018-03-28 18:48

10배 길이 날개 차곡차곡 접어 간직
근육 없이도 펼치고 접고 ‘안정상태’
이음매의 탄성단백질이 중요한 역할
기존 종이접기 이론으로는 구현 못해
스위스 연구진, 새로운 접기 모형 개발
3차원 인쇄로 만든 집게벌레 날개 모사품. 출처: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3차원 인쇄로 만든 집게벌레 날개 모사품. 출처: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꼬리에 집게가 달린 집게벌레(수컷)는 주변에서 곧잘 볼 수 있는 비교적 익숙한 벌레다. 주로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곤 하지만 집게벌레들 중에는 어엿한 날개를 지닌 집게벌레들도 있다. 기어다닐 땐 등에 잘 접어 보관한다. 이런 집게벌레의 날개는 활짝 펴면 10배나 늘어난다고 한다. 차곡차곡 잘 접어 아주 작은 덮개 아래에 간직하다가 날아야 할 때에 활짝 펴서 퍼덕인다.

☞ ‘집게벌레목’ 참고 자료: ‘한국의 곤충’ 사이트, https://bit.ly/2pNi4Bd

그런 집게벌레 날개는 여느 날개와 달리 주목받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흔한 종이접기와 다른 방식으로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단계로 접히는 날개는 순간적으로 용수철처럼 펼쳤다가 접히는데, 그때 근육 작용은 따로 없다. 그러면서도 일단 펼쳐지면 펼친 상태로 안정적이며 접히면 접힌 상태로 안정적인 ‘쌍안정(bistability)’의 장점을 보여준다.

이런 색다른 날개 접기 방식이 공학자들한테 새로운 영감을 준 모양이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등 소속 연구진은 집게벌레의 날개 접고 펴기 방식의 특성을 분석해 이를 다양한 쓰임새로 응용할 수 있는 ‘용수철 같은 탄성 종이접기(spring origami)’ 모형을 개발했다고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밝혔다.

종이접기의 원리를 응용한 이른바 오리가미 공학은 최근에 서울대학교 기계공학부 연구진이 종이접기 원리를 이용해 손쉽게 접었다 폈다 하며 물체를 집을 수 있는 ‘드론 로봇 팔’을 개발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종이접기 원리는 나노공학에서도 자주 애용되곤 한다.

집게벌레.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집게벌레.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집게벌레가 날개를 접는 과정. 출처: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사이언스 (자료변형)
집게벌레가 날개를 접는 과정. 출처: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사이언스 (자료변형)
집게벌레 날개의 접기 원리를 연구한 연구진은 집게벌레가 근육 없이도 날개를 쉽게 펼쳤다가 접을 수 있는 데에는 용수철처럼 당김 상태를 늘 지니는 독특한 탄성 구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접히는 부위인 이음매에는 탄력이 강한 단백질인 레슬린(resilin)이 배열되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또한 이음매 부분에서 접면들은 총 360도보다 작은 각도로 연결돼 늘 미리당김(prestretch)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한 번의 작은 힘으로도 안정적인 접힘 상태와 펼침 상태가 자동으로 전개된다. ‘원 터치로 감기는 손목시계’의 띠와 비슷한 원리다.

https://youtu.be/oNQ_nn3VLiY

“스스로 접히고서 잠김 상태를 유지하는 집게벌레 날개의 능력은 레슬린 단백질에 기반을 둔 이음매 덕분이다. 레슬린은 자연계에서 일반적으로 에너지 저장과 관련이 있는 탄성이 있는 생물고분자물질(biopolymer)이다. 그것은 집게벌레 날개의 이음매들에서 비대칭적이며 또한 대칭적인 배열 상태로 발견된다. 이음매 부위에 있는 이런 두터운 레슬린 분포에 따라 탄성 유형이 결정된다. 대칭 분포는 펼쳐짐 탄성과 관련되며, 반면에 비대칭 분포는 회전 탄성과 관련된다. 두 형태의 조합도 가능하다.”(논문에서)

집게벌레 날개의 생물학적 작동 과정이 이번 연구에서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연구진은 그 날개의 특성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형으로 개발했으며, 이를 통해 기존의 종이접기 모형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탄성 종이접기’ 모형을 새롭게 구축했다. 연구진은 집게벌레의 날개 접기를 기존의 종이접기 모형에서 구현하면 다 접히지 않았지만 연구진이 개발한 탄성 접기 모형에선 완벽하게 다 접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집게벌레의 날개 잡기 방식을 모방해서 만든 ‘탄성 오리가미 집게’. 왼쪽은 편 상태, 오른쪽은 접힌 상태. 출처: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사이언스
집게벌레의 날개 잡기 방식을 모방해서 만든 ‘탄성 오리가미 집게’. 왼쪽은 편 상태, 오른쪽은 접힌 상태. 출처: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 사이언스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간단한 탄성 오리가미 집게를 만들어 시연했다(위 사진). 작은 에너지로도 작동하는 탄성 부분과 수동적으로 접히거나 펴지는 부분을 결합한 이 집게는 자기 무게의 물체를 집고서도 안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독특한 형상 구조 덕분에 접힘과 펼침를 바꿔가면서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장점 때문에, 탄성 종이접기 모형이 여러 용도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음은 논문의 마지막 대목.

“집게벌레 날개에서 영감을 얻어 펼침과 회전 이음매를 특징으로 하는 종이접기 구조물은 기존 종이접기 이론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자가 잠김, 빠른 형상화, 기하학에 얽매이지 않는 접힘 패턴들을 보여준다. 재료 설계와 더불어 형상화와 기계적 동작을 함께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덕분에…, 우리는 생물학적 자가형상 구조물의 절묘한 동역학을 구성하는 설계 전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환자 맞춤형 형상을 갖춘 의학 디바이스, 접을 수 있는 휴대용 디스플레이, 소프트 로봇, 펼칠 수 있는 우주선 모듈 등의 제작에 이용될 수 있다.”(논문에서)

훨씬 더 쉽게 접고 펴는 텐트도 새로운 종이접기의 상상 속에 있다. 연구진은 대학 보도자료에서 “접을 수 있는 텐트는 한번 펼치면 원래 그 형상으로 다시 접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게다가 텐트가 자동으로 다시 접힌다면 텐트를 펴고 접는 번잡함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언스>의 논문 소개 (우리말 번역)

단순한 접기 그 이상: 종이접기(origami)는 2차원 면을 접어 복잡한 3차원 대상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몇몇 형상은 표준적인 접기 방식으로는 만들 수 없다. 파버 등 연구진(Faber et al.)은 집게벌레 날개를 연구했다. 집게벌레는 종이접기 식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날개를 접어 비행을 위해 날개 형상을 바꿀 수 있다. 연구진은 변형과 다양한 강도를 지니는 막을 사용하여 집게벌레의 이런 능력을 재현했다. 사전당김(prestretching)으로 인해 쌍안정 상태의 종이접기 패턴이 역동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수동적인 자가 접기의 거동(passive self-folding behavior)을 보여준다.

논문 초록

종이접기는 예술, 공학, 생물계에서 대상물을 다양한 형태로 접어 만들어준다. 잘 알려진 종이접기 대상물과 달리, 집게벌레 날개는 현재의 종이접기 모델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방식의 절묘한 자연적 접기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례적인 생물학적 시스템은 비양립적인 접기 패턴을 보여주며, (펼침과 접힘 상태가 모두 안정적으로 잠겨 유지되는) 쌍안정적 잠금 메커니즘에 의해 비행 중에는 펼쳐진 상태를 유지하며, 근육 작동 없이도 빠르게 스스로 접힌다. 우리는 이런 주목할 만한 기능이 집게벌레 날개에 있는 단백질 풍부한 이음매 부위에서 생겨남을 보여준다. 그 이음매 부위는 접면들 사이에서 펼쳐짐과 회전의 스프링과 같은 구실을 한다. 이 생물학적 날개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는 탄성 종이접기(spring origami) 모델을 구축했다. 그 모델은 생물에서 영감을 얻은 형상화 기능들을 갖추고서 전통적 종이접기의 접기 디자인 공간을 넓혀주며 정밀 조정이 가능한 4차원 인쇄(3차원 공간과 시간 차원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유연한 형태의 대상물 인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의 대상물 제작을 가능하게 해준다.

[Science, DOI: 10.1126/science.aap7753]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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