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구팀이 6500만 광년 떨어진 저밀도 은하 NGC1052?DF2에는 암흑물질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일대 제공
동료들을 ‘둥근 잡종’(공이 어디를 봐도 둥근 것에 빗댄 말)이라 모욕하던 ‘괴짜 과학자’ 프리츠 츠비키는 초신성과 중성자별을 예측한 것으로 이름을 남겼다. 츠비키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1933년 ‘암흑물질’의 존재를 예견했다는 점이다. 츠비키는 은하단을 이루는 은하의 속도를 측정하다 은하가 가진 질량으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리온(일반물질)에 기인한 중력보다 더 큰 중력을 만드는 이 관측되지 않는 물질을 그는 암흑물질이라 불렀다.
암흑물질은 중력렌즈 효과 등으로 존재가 간접적으로 확인됐지만 빛을 내지 않아 아직 직접 관찰된 적이 없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의 존재를 믿고 이를 발견하려 애쓰고 있다. 다른 한편의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을 도입하는 대신 암흑물질처럼 보이는 현상을 순수하게 중력적인 효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수정뉴턴역학’(MOND)이라고 하는 이 이론은 매우 먼거리의 질량 사이에서는 만유인력이 다르게 작용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적절히 적용하면 은하에서 항성의 속도 분포 문제와 같은 이상현상들을 암흑물질 없이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검증된 바 없다는 것이다.
이들 암흑물질 이론가와 수정뉴턴역학론자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연구 논문이 <네이처> 최근호에 실렸다. 미국 예일대 연구팀은 이 과학저널에 6500만 광년 떨어진 곳의 ‘NGC1052-DF2’라는 은하에 암흑물질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 은하는 우리 은하와 비슷한 크기이지만 극도로 성겨서 포함된 별이 우리 은하의 1%밖에 안 된다. 이렇게 별이 성글다는 것은 전형적인 나선형 은하라기보다 가끔 별이 포함된 가스와 먼지들이 느슨하게 결합돼 있는 형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도 크기의 은하에 전형적인암흑물질이 포함돼 있다면 이 암흑물질의 중력은 주변의 별 무리의 운동을 가속시킬 것이다. 그러나 연구팀은 NGC1052-DF2 주변의 별 무리들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은하 안에 암흑물질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것은 암흑물질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일반 물질뿐만 아니라 은하 자체와도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현상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예일대 연구팀은 여러 개의 캐논렌즈로 구성된 ‘드래곤플라이 텔레포토 어레이’ 망원경으로 NGC1052-DF2 은하를 관찰했다. 예일대 제공
이를 놓고 과학자들 사이에 의견은 분분하다. 우선 연구의 정밀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오스틴 텍사스주립대의 마이클 보일란 콜친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의 인터뷰에서 “측정이 잘못됐을 수 있다. 연구팀은 구상성단이라고 믿고 있는 천체들이 전체 질량인지, 구상성단들이 실제 은하의 질량을 따라 움직이는지가 확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연구팀은 애초부터 암흑물질이 없는 은하를 찾아낸 것이 아니다. 연구팀은 오히려 2015년에 발견한 이 은하가 암흑물질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암흑물질이 별을 구성하는 성분이 별로 없는 이 은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연구팀은 뉴멕시코에 ‘드래곤플라이 텔레포토 어레이’라는 망원경을 구축해 이 은하를 정밀 분석했다. 연구팀은 애초 다른 은하를 연구했는데 그것은 엄청난 규모의 암흑물질을 포함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NGC1052-DF2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연구팀을 이끈 예일대의 천문학자 피터 반 도컴은 “우리의 기대와 반대로 암흑물질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 발견한 것과 모순되지만 데이터는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드래곤플라이 이미지에서 NGC1052-DF2은 전형적인 저밀도 은하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구팀이 슬로안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의 이미지와 비교해보니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이 차이를 확인하려 연구팀은 허블우주망원경, 하와이 마우나케아에 있는 더블유 엠 켁천문대와 제미니천문대 망원경으로 정밀 관찰했다.
연구팀은 이 은하에 구상성단(별 집단)이 존재하고 은하 중심을 공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발견한 10개의 구상성단으로 은하 전체의 질량을 계산해냈다. 켁 망원경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구상성단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느리게, 시간당 2만3천마일 이하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반 도컴은 “느린 운동을 설명하려면 이 독특한 은하의 ‘장막’ 뒤에 암흑물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번 발견이 암흑물질 이론에 힘을 실어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국립로런스버클리연구소의 캐트린 주렉은 <라이브 사이언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암흑물질의 부재는 암흑물질과 일반 물질이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수정뉴턴역학’ 이론이 틀렸다는 반증이다”라고 주장했다. 암흑물질이 없는 은하가 존재한다는 것은 반대로 암흑물질이 실재한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암흑물질이 없고 현 물리법칙이 잘못된 것이라면 물리법칙이 다른 곳에서처럼 잘못된 것처럼 (암흑물질이 없는) NGC1052-DF2에서도 잘못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논문의 결론이 암흑물질 이론을 완벽하게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립 페르미가속기연구소의 물리학자 댄 바우어는 <라이브 사이언스>에 “암흑물질의 중력이 일반물질을 끌어들여 은하를 형성하는 것이 지금의 이론이다. 암흑물질이 없다면 어떻게 NGC1052-DF2 은하가 형성됐는지 과학자들은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