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이효창 선임연구원이 플라스마 측정을 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국내 연구팀이 첨단 반도체 제작에 쓰이는 플라스마가 외부 전력의 변화에 일관되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현상의 원인을 밝히고 제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 50년 동안 풀리지 않은 학계의 난제인 ‘플라스마 히스테리시스’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12일 “반도체측정장비팀 이효창 선임연구원 연구팀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공정에서 품질을 떨어뜨리는 고질적인 문제인 플라스마 히스테리시스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플라스마는 전자, 이온, 중성기체(활성종)로 구성된 이온화된 기체로, ‘제4의 물질상태’라고 불린다.
이효창 연구원은 “사람을 알려면 과거 이력을 알아야 하듯이, 물질 세계에서도 거쳐 온 과거가 현재 상태에 영향을 주는 히스테리시스(이력 현상)가 발생한다. 외부에서 전력을 일정하게 올려가며 플라스마를 발생시켰다가 전력을 일정하게 내려도 플라스마 상태가 전력 조절에 일관되게 반응하지 않는 히스테리시스 현상을 일으킨다. 입력값과 출력값이 항상 일정하지 않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왔다”고 말했다. 히스테리시스는 정신학 용어 ‘히스테리’와는 관련이 없다.
플라스마는 전자, 이온, 활성종을 제어할 수 있어 핵융합에서부터 환경, 항공우주, 바이오·의학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이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데 소자의 정밀한 증착·식각·세정 등에 적용돼 반도체 집적도를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플라즈마 히스테리시스의 증명 결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산업에서는 주로 유도 결합 플라스마가 주로 쓰여왔다. 유도 결합이란 전기레인지의 인덕션처럼 직접 전력을 공급하지 않고 자기장을 이용해 무선으로 에너지를 전달시켜 플라스마가 발생하도록 하는 방식을 말한다. 1970년대에는 공기·수질 정화와 철강 공정에 쓰이기 시작하고 최근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솔라셀 제조 과정중 식각 공정에 쓰이고 있다. 플라스마에서 생성된 이온을 가속해 표면에 쬐어 식각을 하고, 특히 이온과 활성종의 시너지 효과로 식각률이 극적으로 증진되는 효과가 있어 첨단장비에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유도결합 플라스마 장비의 전력 외부 변수를 조절해도 플라스마 상태가 원하는 조건으로 바뀌지 않고 과거 이력에 따라 불균등하게 변하는 히스테리시스가 발생했다. 플라스마 히스테리시스가 발생하면 소자 성능이나 수율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온의 갯수가 원하는 만큼 발생하지 않아 식각이 덜 되거나 반대로 너무 많이 발생해 원하는 이상으로 깎여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어 현재는 원하는 플라스마 상태 및 공정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설정을 바꿔가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효창 연구원은 “대기의 온도란 공기 분자들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열이 평형 상태를 이룬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플라스마는 열역학적으로 평형 상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번에 연구팀이 플라스마의 비평형상태가 전자에너지 분포의 불균형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규명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헬륨 등 비활성 특정 기체를 주입하든지 추가로 적절한 외부 변수(전력)를 인가해주면 플라스마 안의 전자에너지 분포가 대기의 온도처럼 평형 상태를 이뤄 플라스마 히스테리시스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연구 성과는 응용물리분야 국제학술지 <어플라이드 피직스 리뷰>(APR) 최근호에 ‘초청 총설논문’으로 실렸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