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은하들. 허블상수는 은하가 더 먼 곳에 있을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는 속도 값을 보여준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67’인가 ‘73’인가?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숫자일까? 우주 관측과 이론을 종합한 체계인 현대 우주론은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주 공간은 얼마나 팽창하고 있을까?
가속팽창 우주론을 대표하는 숫자 중 하나인 우주팽창속도, 즉 ‘허블상수’는 여전히 하나로 수렴되지 못한 채 크게 다른 수치들이 평행선을 그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런 상황이 천체물리학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거기에는 관측과 이론의 정밀성이 점점 높아지는데도 왜 우주팽창속도 값은 서로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걸까라는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대전 한국천문연구원의 작은 회의실에서도 연구자들이 30명 가까이 모인 가운데 이런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중력파와 허블상수를 주제로 열린 토론에서, 발표자인 이형목 연구원장은 천체관측과 우주이론 분야 사이에서 생겨난 서로 다른 허블상수의 ‘긴장’이 좀체 수렴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상황을 돌아보면서, 2015년부터 관측되기 시작한 중력파 신호가 이런 논쟁을 풀어줄 수 있을지에 기대를 나타냈다.
미국물리학회(APS)도
지난달 열린 학술대회에서 엇갈리는 허블상수 값이 지속되는 상황을 ‘우주론의 위기’로 표현하면서 정밀한 허블상수 값을 찾는 방법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때맞춰
과학저널 <네이처>도 중력파 신호가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의 병합 사건을 관측하는 데 쓰일 뿐 아니라 허블상수를 비롯해 우주론의 문제를 푸는 데도 이용될 수 있다는 기획보도를 내보냈다.
허블상수가 뭐기에…우주론의 위기?
공간이 팽창하는 우주에서 은하들은 서로 멀어진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허블상수는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1889~1953)의 이름을 딴 용어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값이다. 1929년 허블은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며, 특히 관측자한테서 멀리 있을수록 더 큰 속도로 멀어진다는 ‘허블의 법칙’을 세워 팽창 우주론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허블상수의 단위(㎞/sec/Mpc)는 ‘1메가파섹(Mpc: 천문학의 거리 단위로 326만 광년)마다 일정하게 커지는 속도’를 뜻하는데, 예컨대 허블상수가 70이라면 ‘1메가파섹 떨어진 곳이 초속 70㎞로 멀어짐을 의미한다. 10메가파섹(3260만 광년) 떨어진 곳은 초속 700㎞로 멀어진다.
허블상수는 초기엔 500이 넘는 수치부터 50가량의 작은 수치까지 매우 큰 폭으로 들쭉날쭉하게 제시됐지만, 관측과 이론이 정밀해지면서 2000년 이후에는 65~75의 범위로 압축돼 왔다. 이런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이 허블의 이름을 딴 허블 우주망원경이었다. 천문학자들은 허블 망원경을 통해 더 먼 곳의 우주를 광범위하게 관측해 2001년에 72라는 허블상수를 발표했다.
이형목 연구원장은 “하지만 이것으로 허블상수 논란의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았다”며 “전에는 관측 천문학자들 사이에 허블상수 논쟁이 벌어졌는데 이제는 관측에 기반을 둔 허블상수와 우주론에 기반을 둔 허블상수 사이에서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블의 법칙. 관측자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큰 속도로 멀어진다.
2013년 전 우주에 퍼진 온도 분포(우주배경복사)를 매우 정밀하게 관측한
플랑크 위성의 자료를 기반으로 우주론 연구자들은 허블상수를 새로 계산해 ‘67’이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우주론 연구자인 송용선 천문연 이론천문센터장은 “우주배경복사의 밀도 분포를 보여주는 관측 자료에 바탕을 두고, 여기에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을 비롯해 여러 우주 이론을 종합해 얻은 정밀한 허블상수 값이 67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측 천문학 분야에서 다시 새로운 수치가 제시됐다. 201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애덤 리스 교수(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진은 18개 은하에 있는 초신성의 밝기를 정밀 관측해 얻은
허블상수로 73을 제시했다. 리스 교수 연구진은 지난 2월에도 비슷한 결과의 논문을 냈다. 이후 허블상수를 둘러싸고 관측과 이론 분야의 ‘긴장’이 본격화했다.
매우 높은 해상도로 전 우주를 관측한 플랑크 위성에서 얻은 우주배경복사(CMB) 지도. 우주대폭발 때의 빛이 우주 진화 과정을 거쳐 남은 현재의 우주 온도 분포를 보여준다. 이 관측 데이터를 현대 우주론 모형에서 해석해 정밀한 허블상수 값을 얻을 수 있다. 출처: 유럽우주국(ESA)
중력파 분석, 허블상수 해법 될까?
이런 가운데 중력파라는 전에 없던 새로운 관측 데이터가 허블상수 논쟁의 해결사가 될 수 있을지에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형목 연구원장은 “중력파의 파형을 분석하면 그 중력파를 생성한 천체의 질량을 계산할 수 있고, 중력파의 세기를 분석하면 중력파가 날아온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며 “거리를 안다면 다른 관측 자료를 이용해 허블상수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8월 1억3000만 광년 떨어진 중성자별들의 충돌로 생겨 날아온
중력파(GW170817)를 검출했을 때, 중력파 연구자들은 그 신호의 파형과 세기를 분석해
허블상수 값을 새롭게 제시한 적이 있다. 과연 중력파에서 나온 허블상수가 관측천문학 그룹이 제시하는 73에 가까울지, 우주론 그룹이 제시하는 67에 가까울지는 큰 관심사였다. 하지만 중력파 신호 1건을 분석해 얻은 허블상수는 중간값인 70으로 나타났고, 게다가 오차범위도 너무 커서 현재로선 신뢰도가 떨어졌다. 허블상수 논란에서 판정승은 어디에도 돌아가지 못했다.
이형목 연구원장은 “중력파 1건을 사용한 이 연구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고, 앞으로 중성자별 충돌의 중력파처럼 허블상수 연구에 적합한 중력파의 사례가 30건가량 축적된다면 신뢰도 높은 허블상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력파에서 나온 허블상수가 67 쪽에 가깝다면, 73의 값을 제시하는 관측천문학 그룹은 기존의 관측 기법에 한계나 문제가 없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반면에 그것이 73 쪽에 가깝다면 우주 팽창을 이끄는 힘인 암흑에너지에 대한 해석 모형을 현재 우주론이 채택하는 것과는 다르게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
송용선 센터장은 “우주 가속 팽창을 이끄는 암흑에너지에 관한 이론 모형으로는 몇 갈래가 있는데, 현재 채택되는 것은 우주 저변에 진공에너지가 깔려 있으며 그 에너지의 총량이 우주 공간 팽창으로 인해 더 커지면서 다시 가속 팽창의 힘이 된다는 것”이라며 “허블상수가 73쪽에 가깝다면, 우리 은하 주변의 우주가 저밀도의 특이한 공간일 수도 있으며, 그것도 아니라면 ‘수정중력이론’을 비롯해 다른 가능성에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의 나이와 관련해선, “우주 나이는 이미 많은 데이터에 기반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허블상수가 수정된다 해도 우주 나이 계산이 달라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중력파 검출 시설인 미국의 라이고(LIGO)와 유럽의 비르고(Virgo)가 내년부터 1년 동안 중력파 검출에 다시 나설 예정이라 허블상수 계산에 쓸 만한 중력파 신호도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전/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