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무당개구리(사진)의 피부를 감염하는 항아리곰팡이들이 1990년대 말 이래 세계 각지에서 양서류 집단폐사를 일으키는 항아리곰팡이병의 근원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유전체 비교 분석에서 나타났다. 서울대 행동및집단생태학 실험실(박정배) 제공
북중미,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개구리를 비롯해 양서류의 집단폐사를 일으키는 심각한 질병인 항아리곰팡이병의 발원지가 한반도인 것으로 보인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세계 각지의 항아리곰팡이들을 채집해 그 유전체(게놈) 전체를 분석한 광범위한 연구의 결론이다.
유럽 중심으로 북중미, 오스트레일리아, 한국 등의 연구자 58명이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각지의 양서류를 감염한 항아리곰팡이(
Batrachochytrium dendrobatidis) 177개를 채집해 전체 유전체를 해독하고 총 234개 유전체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각 계통의 유래를 따지는 일종의 ‘유전체 계보’를 추적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그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공동연구에는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브루스 월드만 교수 연구진(3명)도 참여했다.
항아리곰팡이는 개구리나 도룡뇽 등 양서류의 피부에 감염해 케라틴 조직을 파괴하며 심장마비, 호흡곤란 등으로 집단폐사를 일으키는 심각한 감염병으로 알려져 있다. 항아리곰팡이병은 1990년대 후반 처음 보고된 이래 북중미,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감염 지역에서 양서류의 절반 가까운 종들에서 집단폐사와 멸종 위기를 초래해 세계동물보건기구도 이 곰팡이병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질병으로 지정했다.
그동안 항아리곰팡이병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파악하기는 힘들었는데, 이번 공동연구에서는 각 지역의 개구리들을 감염한 항아리곰팡이들의 유전체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비교해 유전체 수준에서 계통의 계보를 추적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한반도에 있는 항아리곰팡이의 한 계통이 동물병 대유행의 씨앗을 뿌린 오래 전 개체군의 유전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유전체 분석에서는, 한반도의 항아리곰팡이 계통이 해외 다른 지역의 계통들보다 훨씬 더 큰 유전적 다양성을 지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결과는 달리 말하면, 한반도의 항아리곰팡이 계통이 훨씬 먼저 존재했다는 것이고, 곧 한반도의 개구리들이 오래 전부터 이 곰팡이에 감염되어 왔음을 뜻한다.
하지만 국내 개구리들에서 항아리곰팡이병에 의한 피해는 상대적으로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한반도 양서류들이 오래 전부터 이 곰팡이에 감염되었으나 그동안 면역적 저항성(내성)을 갖추며 진화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월드만 서울대 교수 연구진은 “일찍이 1911년에 북한 원산 지역에서 채집돼 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개구리에서도 항아리곰팡이가 발견된 적이 있다는 점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면서 “아마도 1950년대에 해외 교역이나 군수물자 수송 과정에서 곰팡이가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1964년 6월 한 일간신문에 냉동수출용 개구리를 ‘매일 10만 마리씩 살아 있는 상태로 납품할 수 있는 업자’를
모집하는 광고가 실린 적도 있는 것으로 보아, 한때 국내 개구리들을 대량으로 수출했던 것도 이런 확산의 배경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유전체 분석에 쓰인 한반도 곰팡이들은 무당개구리, 황소개구리에서 채집한 것인데, 연구진은 이중에서 특히 무당개구리를 감염시킨 항아리곰팡이 계통이 세계 각지 병원균 계통의 발원일 것이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결론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분석한 대상 중에서 무당개구리를 감염한 곰팡이가 질병의 기원으로 추정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연구에서 무당개구리 곰팡이보다 더 오래된 기원이 발견되는 일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항아리곰팡이의 현미경 영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현재의 연구와 증거를 종합하면, 한반도 무당개구리를 감염하던 항아리곰팡이에서 기원해 퍼져나가면서 해외 각지에 있는 다른 항아리곰팡이 계통과 만나 유전형질 교환을 일으키며 각 지역에 전염병으로 퍼졌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논문에는 실리지 않았으나 월드만 교수 연구진은 앞서 2015년에 한반도 개구리들이 항아리곰팡이병에 대한 저항성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면역세포의 차이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항아리곰팡이병의 항원을 인식하는 면역세포의 수용체가 한반도 개구리들에서는 아주 흔하게 발견돼 곰팡이에 감염되더라도 병을 막는 면역 저항성을 갖추게 되지만, 감염 피해가 큰 해외 지역의 개구리들에서는 면역세포에 이런 수용체가 없어 발병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이 면역세포 수용체를 지니는 해외의 개구리 종들은 항아리곰팡이병에 걸리지 않았다.
개구리 행동생태를 연구해온 장이권 이화여대 교수는 “야외관찰 때에 보면 우리나라 양서류는 항아리곰팡이에 감염되고도 멀쩡히 살아가는데 이번 연구결과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면서 “오랜 동안 항아리곰팡이병에 노출되면서 병에 대한 내성을 갖출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과거 빙하기 때에 우리나라가 ‘레퓨지아’(일종의 생물종 피난처) 구실을 하여 항아리곰팡이병도 우리나라에 계속 존재했던 같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열대지역에 비해 우리나라의 생물다양성이 높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번 국제 공동 연구진은 논문 말미에서 “세계 교역이 크게 규제 받지 않을 때에 병원균이 새로운 지역으로 옮겨지고 새로운 숙주를 감염시키고 병을 일으킨다는 병원체 계통학의 오래된 패턴에 의해서, 양서류의 새로운 곰팡이병 대유행이 일어났음을 우리 연구는 확인해준다”면서 “이런 점에서 볼 때 야생 양서류의 생존을 위해 ‘대륙간 생물안전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문 초록 (우리말 번역)
지구화한 전염병들 때문에 세계 생물종 수가 줄고 있지만 그 원인은 여전히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우리는 전체 유전체 해독 방법을 사용하여, 지구 양서류 감소의 가장 가까운 원인인 항아리곰팡이에 의해 초래된, 현재까지 가장 파괴적인 동물병 대유행의 시공간적 기원을 풀고자 한다. 우리는 항아리곰팡이의 근원이 한반도에 있음을 추적해냈다. 그곳의 한 가지 계통인 BdASIA-1은 동물병 대유행의 씨앗을 뿌린 오래 전 개체군의 유전적 특징을 보여준다. 우리는 20세기 초가 이 병원체의 등장 시기임을 밝힌다. 그 시기는 양서류의 상업 교역이 지구 차원에서 팽창하던 때와 일치한다. 또한 우리는 대륙간 전염이 현재도 진행 중임을 입증한다. 우리 연구결과는 동아시아가 항아리곰팡이 생물다양성의 지리적 관심지역(hotspot)이며, 지금 세계 양서류에 기생하는 (항아리곰팡이) 계통들의 원천지역임을 보여준다.
[Science(2018),
http://science.sciencemag.org/cgi/doi/10.1126/science.aar1965]
오철우 조홍섭 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