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과학기술전당(사진)은 미래과학자거리와 더불어 ‘과학도시’의 면모를 보여주는 평양의 주요한 랜드마크가 되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향한 남북, 북-미 대화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당장엔 난기류도 있지만 남북 과학기술 교류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크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 과학기술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북한 과학기술 정보 데이터베이스 ‘엔케이테크’(www.nktech.net) 사업단장인 최현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정책기획본부장은 “북한 과학기술에 대해선,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으니 수준이 대단할 것이라는 시각과 연구개발 투자를 못해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대조적인 시각이 있다”며 “둘 다 맞기도 하지만 또한 틀리기도 하다”고 말한다. 북한 과학기술의 동향을 살펴온 몇몇 전문가에게 북한 과학기술에 관해 우리가 잘 모르거나 오해하는 것들을 들어 간추려본다.
‘과학기술 중시 정책’ 더욱 강화
북한 사회에서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과학기술 중시 정책’은 김정은 시대에 더욱 강화됐다.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강호제 소장은 2016년 제7차 당대회가 특히 중요했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사업총화보고를 하면서 과학기술을 군사와 사상 바로 뒤쪽에, 경제보다 앞서서 다룰 정도로 강조했다”며 “과학기술 중시 정책의 기본 틀은 사실 김정일 시대에 마련됐으나 이후 김정은 시대에 강조되고 실행되어 효과를 지금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은 과학도시의 면모를 부쩍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대동강변에 원자 모형을 본떠 지은 ‘과학기술전당’이나, 시내에 고층 건물로 이어진 ‘미래과학자거리’, 그리고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등은 이제 외국 언론도 화제로 삼는 평양의 랜드마크 구실을 한다. 최현규 본부장은 과학기술 논문의 양과 질로는 북한이 아직 우리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낮지만 ”북한의 발사체 기술이나 핵융합, 레이저 기술, 컴퓨터 수치제어(CNC) 공작기계 기술을 비롯해 일부 분야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북한 과학기술 전반을 이해하는 데엔 북한식의 특징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그중 하나가 북한 연구자들에게 강조되는 현지연구와 ‘과학자-기술자 돌격대’다.
강호제 소장은 “사업장에 어떤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과학자, 기술자들이 현지에 머물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데 지금도 남아 있는 오랜 전통”이라며 ‘문제해결형 과학기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경쟁력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2007년 북한 사회에서 큰 호평을 받은 영화 <한 녀학생의 일기>에서 다뤄진 실화의 주인공은 공장 실험실의 현지연구로 늘 바쁘게 사는 국가과학원 소속 과학자였다.
‘우리식’을 강조하는 ‘주체’의 과학기술은 북한 과학기술의 토대이다. ‘석탄화학’ 또는 ‘탄소하나(C1) 화학’은 그 사례다. 최 본부장은 “석유자원을 얻기 힘든 북한에선 석탄을 이용한 화학을 발전시켰는데, 이 때문에 석유화학이 주도하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선 석탄화학, 즉 ‘탄소하나 화학’이 주류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국제협력연구 2015년 이후 늘어
국제 교류가 드문 북한 과학기술에서도 최근 몇년 새 국제 협력연구와 공동논문 발표가 빠르게 늘고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의 최근 보도를 보면, 한해 10~20편에 불과하던 북한의 해외 출판 논문들은 지난해 100편 가까운 규모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이 수치는 잠정적이라 부정확하지만 국제 협력연구와 해외 출판을 늘려가는 북한 과학기술의 추세를 뚜렷이 보여준다.
국제 학술지에 실린 북한 과학기술 논문 318편(1988~2016년)을 분석해 지난해 발표한 허선 한림대 의대 교수(기생충학교실) 등의 논문을 보면, 국제 학술지에 출판된 북한 논문들은 주로 물리학(66), 수학(61), 재료과학(42), 화학(31) 등 분야에서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선 교수는 “한국의 해외 논문 출판이 한해 5만건 넘는 것과 비교하면 북한의 해외 출판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흔히 폐쇄 사회라 알려진 북한에서도 해외 교류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며 “극히 소수의 슈퍼엘리트는 인터넷을 이용해 해외 학술정보를 자유롭게 얻고 해외 출판과 교류에도 활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본부장은 “요즘엔 과학자들의 기초연구나 해외 논문 발표를 독려하는 분위기가 분명 있다”며 “해외 발표 논문은 북한 매체에도 보도되면서 예를 들어 레이저 분야의 한 과학자가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협력연구에선 중국의 비중이 매우 높고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비중은 줄고 있다. <네이처>는 극히 적지만 북한과 유럽의 협력연구도 일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를 보면, 화산 폭발 우려가 있는 백두산에 대한 연구, 가뭄 저항성 토마토 개발을 위한 유전자변형 연구, 태양전지 연구 등이 이뤄지고 있다.
IT 강세…인공지능, 나노 등 부쩍 관심
1961년 북한 최초의 컴퓨터로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를 개발한 이래 북한은 지속적으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 관심과 투자를 쏟아왔다. 북한정보기술 전문 칼럼니스트인 강진규씨는 “말레이시아에 세워진 북한 정보기술(IT) 기업이 주식과 비트코인 거래 서비스를 개발해준다는 홍보문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며 “인도 기업이 주관하는 국제코딩대회에서 1, 2위를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대 학생들이 차지한 소식을 접하고 기술 수준도 상당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북한 과학기술 전문 뉴스 사이트를 준비 중인 그는 북한 뉴스들에선 인공지능, 나노기술 같은 첨단 분야도 곧잘 다뤄진다고 전했다. 북한의 바둑 프로그램 ‘은별’에 인공지능이 적용되고 음성과 문자 인식, 다국어 번역 등에 인공신경망 기술이 적용된다는 소식도 있었으며 “김책공대에서 개발된 다국어인식 프로그램 ‘신동’은 문자인식률이 99.7%나 된다는 보도도 있었다”고 한다. 정부 조직으로 국가나노기술국이 창설됐으며 해마다 나노기술 전시회가 열린다.
‘시엔시’(CNC)는 북한에서 첨단 기술혁신을 상징하는 용어다. 강호제 소장은 “컴퓨터 수치제어로 정밀하게 기계를 만드는 기계(공작기계)의 핵심 기술을 가리키는데, 북한은 시엔시 공작기계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며 “시엔시는 혁신기술, 기술혁신의 상징어로도 폭넓게 쓰인다”고 말했다.
남북이 서로 만족할 교류는 어떤 모습일까? 최현규 본부장은 “10년 전 남북 협력에선 북한 과학기술에 대해 너무 몰랐고 준비도 부족해 ‘퍼주기’ 논란이 빚어졌다”며 “이젠 북한의 인적자원, 광물자원, 생물자원의 강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함으로써 서로 ‘윈윈’하는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