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해시 한 야산에서 복수초 꽃망울들이 입춘 무렵 미처 녹지 않은 눈을 이겨내고 노랗게 피어나고 있다. 동해/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국내 연구진이 추위에 노출된 식물이 염색체 구조를 변화시켜 저온 스트레스에 견디는 과정을 밝혀냈다.
건국대 의생명공학과의 윤대진 교수 연구팀은 30일 “식물이 노출되면 이를 인지하고 반응하는 단백질을 발견하고, 이 단백질이 디엔에이를 감싸고 있는 염색질의 구조 변화를 유도해 냉해 저항성 유전자들의 발현을 증가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 논문은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식물의 식량생산 잠재력을 100으로 볼 때 실제로 생산에 쓰이는 능력은 5분의 1 수준인 2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능력은 가뭄, 냉해, 염해 등의 환경 스트레스에 의해 사라진다. 기후변화로 온난화가 진행되지만 사막화, 급격한 기온 변화 등은 식량생산 측면에서 인류가 극복해야 할 도전이다. 과학자들은 환경 스트레스에 저항성을 부여하는 유용한 유전자를 확보하고 이를 이용한 재해저항성 작물체를 개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윤대진 교수는 2004년부터 미국 퍼듀대에 현지 연구실을 두고 퍼듀대의 세계 최대 온실 시설을 이용해 환경 스트레스 저항성에 이상을 보이는 돌연변이체를 대량 확보해 연구해오고 있다. 이 돌연변이체를 이용해 냉해 저항성 단백질을 발견하고 호스15(HOS15)라고 이름지었다. 호스15는 식물이 추위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이를 알아차려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디엔에이와 디엔에이를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 복합체인 염색질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식물들이 온난한 날씨(22도 안팎)에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추위가 왔을 때 호스15 단백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 돌연변이체(아래)는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건국대 제공
구체적으로 염색질을 둘러싸고 있는 특정 단백질(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를 분해하는 것이다. 추위가 없는 평소에는 디엔에이-히스톤 복합체인 염색질이 단단하게 뭉쳐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 이 상태에서는 주위 저항성에 관여하는 콜(COL) 유전자 주변에 유전자 발현을 돕는 인자들이 접근할 수 없다. 하지만 호스15 단백질이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를 분해하면 콜 유전자가 이들 인자와 결합해 활발히 발현하면서 식물이 추위를 견디게 된다.
연구팀은 “연구에서 밝혀낸 원리를 원용하면 식물생육 북방한계선과 관계 없이 추운 지방에서 다양한 식물 재배가 가능해져 미래 식량문제 해결에 큰 이바지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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